2007-08-13 09:44:01
이휘소 박사를 그리며
이홍구(한반도선진화재단 고문, 전 국무총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소설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졌던 이휘소(李輝昭) 박사가 세상을 떠난 지 꼭 30년이 되었다. 한국이 배출한 세계 최고의 이론물리학자였던 그의 삶과 죽음을 이제는 차분히 회고하고 추념할 시간이 된 것 같다. 지난달 이휘소의 미망인이 넘겨준 그의 유품과, 유학 중 어머님께 올린 편지 90통이 고려대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한편 그로부터 직접 박사학위 지도를 받았던 고려대 강주상 명예교수가 세심한 자료 수집과 균형 잡힌 해석을 토대로 완성한 『이휘소 평전』이 마침 출판되어 그의 학자적 업적과 인간적 면모를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
강 교수도 지적했듯이 이휘소의 죽음이 한국의 핵 개발과 연관되었다는 소설적 환상은 오직 허구일 뿐 이제는 말끔히 지워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휘소는 소립자물리학의 권위자였지 핵물리학자가 아니었다. 그가 몸담았던 프린스턴 고등연구원의 오펜하이머 원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핵무기 개발의 책임자였으며, 특히 그가 이론물리학부장으로 근무했던 페르미연구소는 세계 최초로 핵분열을 성공시킨 페르미의 이름을 따랐다는 것이 소설가의 상상력을 발동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재체제하의 개발도상국에서 핵무기 개발은 안 된다”고 단언한 이휘소를 1970년대 핵 개발 프로젝트와 연관시키는 것은 상상의 비약일 뿐이다.
지난 반세기의 세계사를 돌이켜볼 때 민족주의의 불길이 핵 개발이란 야심과 접합되면 정치적·군사적으로 상당한 폭발력을 발휘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핵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사태도 예외는 아니다.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인 이휘소 박사의 사고사에 대한 논란도 그러한 역사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휘소와 소년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들은 비록 그의 물리학적 업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를지라도 그의 연구에 힘입어 여덟 명의 물리학자가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의 학문적 위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고, 그러기에 42세에 요절한 그의 죽음을 못내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이번에 기증된 유품 전시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어려운 수식(數式)이 적혀 있는 연구노트나 오펜하이머 박사의 메모보다도 그가 어느 곳에서든 어머님께 수시로 보낸 편지들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열린 물리학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그 진행 과정을 소상히 보고하는 내용을 어머님께서 모두 이해하셨을지는 모르지만 얼마나 흐뭇해하셨을까는 짐작할 수 있다.
이휘소의 아버님은 그가 열여덟 살 때 세상을 떠나셨다. 어릴 때부터 그의 교육에 모든 정성을 쏟으신 어머님은 이휘소에게는 일생 동안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그의 길잡이였다. 56년 여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고 난 그가 어머님께 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사정이 어쩌면 그렇게 한국의 수년과 똑같은지, 마치 저 자신의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꿋꿋이 싸워 오신, 그리고 아직도 굳건히 버텨 나가시는 어머님의 거룩한 모습은 저로서는 항상 자랑이요, 힘의 근원입니다···. 어머니, 6·25때 우리들이 광릉에서 지내며 똑같은 경험을 했던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아름답고 거룩한 어머님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이휘소는 위대한 물리학자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업적을 가능케 한 것은 역시 위대한 어머님의 힘이었다. 이휘소에게는 그의 천재적 재능을 일찍 꿰뚫어 보고 대성의 기회를 마련해 준 훌륭한 은사들을 만나는 행운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행운의 원천에는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인간적 소양과 근성을 철저히 심어준 어머님의 더없는 사랑과 냉엄한 훈도가 있었다. 그러기에 어머님과 아들이 함께 이룩한 업적의 의미를 이휘소 자신이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오늘 알아낸 지식은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이 될 것입니다. 누가 이러한 지식을 알게 되었는가는 세인의 기억에서 사라지겠지만 한 시대, 한 국가가 이룩한 영감과 그 결과는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오늘의 젊은 어머니들과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이야기다.
♤ 이 글은 2007년 8월 9일자 중앙일보 [이홍구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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