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선 칼럼

  • 한선 브리프

  • 이슈 & 포커스

  • 박세일의 창

독재자보다 선동가가 더 위험하다
 
2007-08-06 11:47:36

독재자보다 선동가가 더 위험하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민주주의에는 두 가지 적이 있다. 하나는 독재자이고 다른 하나는 선동가이다. 독재자는 보이는 외부의 적이고 선동가는 보이지 않는 내부의 적이다. 그래서 사실 독재자보다 선동가가 더 위험하다. 이를 경계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내부로부터 붕괴된다. 선동가가 정치를 주도하면 폭민(暴民)정치, 즉 ‘자유 없는 민주주의’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87년 민주화시대가 시작된 이후 이미 20년이 지났다. 과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어디쯤 와 있는가? 과연 성공하고 있는가?
 
본래 민주주의는 ‘민주화’와 ‘자유화’의 두 단계를 지나며 발전한다. ‘민주화’란 국민이 투표를 통하여 대통령을 뽑고 정부를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화’란 그렇게 뽑힌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의 자유과 권리, 생명과 재산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화와 자유화 모두에 성공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라고 한다.
 
민주화가 되었다고 해도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을 하늘처럼 섬기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래서 요즈음 ‘자유 없는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 혹은 ‘유사(類似) 민주주의(sham democracy)’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왜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가 자유화에 실패하는가? 한마디로 선동가들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선동가들이 나와 대중의 정서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적 구호와 정책을 남발하며, 국민을 속이고 오도하면, 정치는 우민화(愚民化)하고 폭민화(暴民化)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민생파탄, 국정실패, 법치파괴, 자유와 권리의 실종이 된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성공을 위해선 선동가를 조심하여야 한다. 선동가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 모든 국정과제를 극도로 단순화시킨다. 사물의 인과관계를 왜곡하고 호도한다. 예컨대 지방이 발전 못하는 것은 서울이 비대하기 때문이다. ‘양극화가 일어나는 것은 부자들이 세금을 적게 내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을 가지려는 것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때문이다’ ‘아프간의 인질석방이 안 되는 것도 미국이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등이 그 예이다. 이들은 선동정치를 통해 허구의 논리를 끊임없이 반복 선전하여 대중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둘째, 국민을 선(善)한 집단과 악(惡)한 집단으로 양분시킨다. 그리고 정치를 선과 악 간의 ‘도덕전쟁’으로 만든다. 예컨대 서울은 악이고 지방은 선이다. 부자도 미국도 모두 악이라고 하는 식이다. 이렇게 일반 대중의 정서와 편견을 자극, 조작, 선동하며 국민을 분열, 대립, 갈등하게 만든다. 그리고 자기들은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고 규정하며, 마녀사냥하듯 달려든다. 한마디로 ‘권선징악적 드라마’를 연출한다. 그러면 우중(愚衆)은 흥분한다. 헌법을 욕하고 법치를 무시해도 박수를 치고, 수도 이전과 연합사 해체 같은 국익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해도 박수를 친다. 이렇게 되면 민주주의는 내부의 적 때문에 서서히 붕괴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튼튼한 놋쇠그릇이 아니라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이다. 독재자와 싸워서 민주화를 쟁취했으니 이제는 아무렇게나 해도 민주주의가 발전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민주주의 성공을 위해선 실은 ‘민주화 이후’가 더 어렵고 중요하다.
 
금년은 대선이 있는 해이다. 무엇보다 정치적 변신과 화려한 수사에 능한 선동가들을 경계하여야 한다. 창조, 미래, 중도, 통합, 평화 등 그럴듯한 구호와 말장난에 능한 ‘말꾼’들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사랑하고 헌법을 존중하고 국가정책을 소중히 하는 ‘일꾼’을 뽑아야 한다. 묵묵히 법과 원칙을 지키며 일 잘하는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그래야 이 땅에 민생이 다시 살아나고 자유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필 것이다.
 
 
♤ 이 글은 2007년 8월 5일자 조선일보 [아침논단]에 실린 글입니다.
  목록  
번호
제목
날짜
186 [유호열] 요란한 정상회담, 국민은 차분하다 07-08-16
185 [이창원] 철밥통과 보은 인사의 만남 07-08-14
184 [김승욱] 매사에 때가 있다 07-08-14
183 [안세영] ‘제3의 외국인 물결’ 활용하자 07-08-14
182 [홍규덕] 北核문제 국제적 조망 필요하다 07-08-13
181 [이홍구] 이휘소 박사를 그리며 07-08-13
180 독재자보다 선동가가 더 위험하다 07-08-06
179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어디까지 왔나? 07-08-03
178 [신도철] 지역균형 이념화, 비효율 낳는다 07-08-03
177 [이교관] 북한의 2.13 합의 2단계 이행 전망 07-08-02
176 [황성돈] `u-시티`와 데팡스 07-08-01
175 [유호열] 남북정상회담의 환상 07-07-30
174 [남성욱] 갈길 먼 북핵 불능화 실천 가능한가 07-07-30
173 [안세영] 韓ㆍEU FTA, 유럽형 협상전략 세우자 07-07-27
172 [조희문] 무한경쟁 시대의 한국영화 07-07-26
171 [박영범] 노동시장 유연화가 제2 이랜드사태 막는다 07-07-26
170 대한민국의 선진화 어떻게 할 것인가? 07-07-25
169 [김형준] 한나라당 경선 관전법 07-07-25
168 [김민전] 한나라당이 갈라지면 범여권은 합친다 07-07-24
167 [강경근] 헌재 위헌결정 또 폄훼한 盧대통령 07-07-24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