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03 16:49:57
이 글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10주년이 되던 작년, 2007년 6월에 쓴 글입니다.
요즘 계속되는 촛불시위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처럼 대내외적인 어려움에 직면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다시 글을 올립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어디까지 왔나?
-87년 이후의 민주화 평가와 앞으로의 과제- 2007-6
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1: 1987년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 역사에 하나의 큰 분수령이다. 권위주의적 지배가 끝나고 민주주의적 지배가 시작되는 대변화의 시기였다. 그리고 약 20년이 흘렀다. 그 동안에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여 오고 있다. 지난 20년간의 민주주의의 변화와 발전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어떻게 평가하여야 할까? 어떠한 새로운 문제점들을 등장시켜 왔는가? 더 나아가 앞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의 과제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 과제들을 풀어나가야 하는가? 본고는 이러한 문제에 답하려 한다.
2: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1987년에 민주주의 발전의 제1 단계를 지나 이제 제2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제 2단계는 아직 완성되지 아니했다. 제 1단계는 [民主化의 단계]이고 제 2단계는 [自由化의 단계]이다. 민주화란 국민들이 투표를 통하여 정권을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왕, 독재자 등의 [소수의 지배]에서 [다수의 지배]즉 [국민의 지배]로 넘어 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국민주권이라고 한다. [절차적 민주주의(협의의 민주주의)]라고도 한다. 그러면 자유화란 무엇인가? 자유화는 그렇게 뽑은 정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 생명과 재산을 하늘처럼 떠받들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화라고 한다. 이 두 단계를 지나야 비로소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가 정착하게 된다. 소위 [실체적 민주주의(광의의 민주주의)]가 완성된다.
둘째, 이 제2단계라는 자유화의 단계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내지 못하고 실패하는 나라들이 의외로 많다. 그렇게 되면 소위 자유 없는 민주주의가 된다. 즉 非자유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 혹은 類似민주주의(sham democracy)가 된다. 예컨대 독일의 히틀러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히틀러는 분명 국민이 뽑은 지도자이지만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한없이 탄압하고 유린하였다. 남미의 많은 나라들이 아직 非자유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있다.
셋째, 제 2단계, 즉 자유화의 단계에 진입에 성공하는데 가장 중요한 조건이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성공시키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론 국가의 근본규범인 헌법에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명시하고 정부가 이를 함부로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은 천부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다수결 원리(majority voting)로도 이를 제약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점이 중요하다. 동시에 헌법 속에 삼권분립, 사법부의 독립 등을 규정하여 국가권력 들 끼리 서로 서로 견제하도록 함으로서 국민 개개인의 자유과 권리의 보다 확실한 보장을 제도화하고 있다. 이것을 소위 立憲的 自由主義(constitutional liberalism)라고 한다. 이러한 의미의 입헌적 자유주의가 정착하여야 민주주의 발전의 제 2 단계인 자유화 단계까지 성공했다고 볼 수 있고 비로소 자유민주주의가 만개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넷째, 민주주의가 제 2단계로 넘어가는 데 가장 위험한 장해가 바로 포퓰리즘(populism)이다. 대중 영합적 지도자가 나와서 [煽動정치]를 시작하게 되면 법의 지배,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입헌적 자유주의가 어물어 지기 쉽다. 국민의 자유과 기본권리가 무시되기 싶다. 선동가가 나타나 [대중의 理性]이 아니라 [대중의 感性]을 자극하여, 일시적 다수의 지지를 얻어 내면, 소수의 자유과 기본권을 쉽게 무시하는 정부가 등장하기 쉽다. 그것을 [暴民정치]라고도 혹은 [愚民정치]라고 한다. 다수의 지배라는 민주적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폭민정치 우민정치가 날뛰게 되면(예컨대 인민의 이름으로 혹은 민족의 이름으로 등등) 국민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생명으로 하는 입헌적 자유주의는 파괴되기 쉽다. 그러면 무법과 무질서, 나아가 無政府의 상태로 빠지기 쉽다. 결국의 새로운 독재(좌파 내지 우파)가 나와 사회유리를 위하여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질서를 다시 회복하여야 무정부상태가 종료한다.
다섯째, 포퓰리즘의 폐해는 입헌적 자유주의의 파괴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1) 국가운영의 전문성을 훼손하고 (2) 시대가 요구하는 개혁을 어렵게 만들어 결국 경제실패 나아가 국가실패를 결과할 위험을 증대시킨다. 왜냐하면 국가성공을 위하여서는 정치적으로 인기 없는 정책도 국정운영의 전문성이 요구하면 반드시 추진하여야 한다. 인기 없는 제도개혁도 시대가 요구하면 단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포퓰리즘적 지도자들은 결코 그러한 올바른 정책을 선택하고 필요한 개혁을 추진하지 않는다. 국민의 인기를 얻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나라는 (1) 입헌적 자유주의가 파괴되어 자유 민주주의가 실패할 뿐 아니라 (2) 국가정책을 수립 집행함에 있어 전문성에 기초한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대중인기에만 연연하다보면 국정운영이 혼란스럽고 그 결과 국가경제가 추락하고 종국적으로는 국가실패를 결과하기 쉽게 된다. 南美의 몇몇 나라들이 중진국까지는 성공하였으나 선진국 진입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주된 이유가 바로 포퓰리즘이다.
3: 歐美의 경우는 자유주의가 오랫동안 발전하여 온 다음에 민주주의가 들어 왔다. [先 자유화 後 민주화]였다. 그래서 민주화의 진행과정에서 포퓰리즘의 덫에 빠질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유럽에서는 즉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하는 자유주의 사상은 13세기 마그마 카르타(1215) 때까지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그 이후 오랜 기간 발전하여 왔다. 여러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거치면서 결국 국민의 자유를 위하여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법의 지배]라는 수단을 통하는 것이 가장 유효하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앞에서 본 [입헌적 자유주의]이다. 1776년의 미국의 독립선언 1787년의 미합중국헌법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 1791년 프랑스 헌법등이 대표적 예이다. 이렇게 구미에서는 지난 200여 년간 자유주의(입헌적 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발전하여 오고 있다.
반면에 민주주의(협의의 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의 역사는 짧다. 주지하듯이 미국에서 1820년대 대통령선거에서 투표권을 가지는 유권자는 국민의 5%미만 이였다. 그리고 1920년 초에도 50% 수준이었다. 1920년대 후반에 여성의 투표권이 인정되기 시작하였다. 많은 나라들이 사실상 1940년대 들어와서 모든 국민들에게 투표권을 인정하기 시작 했다. 그만큼 민주주의는 사실 지난 60-80년 이내의 현상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역사는 13세기 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길고 입헌적 자유주의가 제도화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200년 이상이 된다. 구미에서는 오랜 자유주의의 역사위에 민주주의가 도입되었기 때문에 둘이 결합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유민주주의(자유주의+민주주의)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이외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제2차 대전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되면서 서구식 민주주의가 들어 왔다. 자유주의의 전통이 별로 없는 나라에서 제도로서 민주주의가 먼저 들어 온 셈이다. 그래서 이들 나라에서는 제도 내지 절차로서의 민주주의가 들어온 이후부터 자유주의를 도입하고 실천하면서 민주주의를 실체화 제도화하여 나가야 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先 민주화 後 자유화]이다. 그래서 이들 나라에서는 외부에서 도입된 민주주의 위에 자력으로 자유주의(자유화)까지 성공하면 자유민주주의로 나아가게 되고, 만일 자유화에 실패하면 非자유민주주의로, 즉 자유민주주의의 실패로 나아가게 된다. 이 민주화에서 자유화로 나아가는 이 과도기에서 포퓰리즘의 덫에 결려서 [법의 지배][立憲主義(constitutionalism)]를 세우지 못하면 非자유민주주의로 나가가게 됨은 이미 앞에서 보았다.
4: 민주주의의 발전의 역사를 보면 항상 두 가지의 힘이 서로 경쟁하고 긴장한다. 하나는 大衆민주주의(mass democracy)의 힘이고 다른 하나는 專門家 혹은 엘리트 민주주의(elite democracy)의 힘이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하방이동이다. 소수의 지배에서 다수의 지배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그런데 대중민주주의는 권력의 무제한 하방이동을 지지한다. 대중이 권력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善이라는 주장이다. 대중의 의사가 국정에 보다 많은 영향을 직접적으로 미치면 미칠수록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래서 대중민주주의자들은 대의민주주의 즉 의회제도에 대하여도 회의적이고 비판적이다. 대의제가 사실 상 전문가 민주주의를 강화하여 대중의 의사를 국정에 직접적으로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본다. 그래서 의회제를 통한 간접민주주의 보다는 가능한 한 국민소환 등 직접민주주의(direct democracy)적 요소가 보다 많아야 한다고 주장하다. 우리 사회에 유행하는 [참여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대중민주주의자들이다.
반면에 전문가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중민주주의에 대하여 비판적이다. 권력이 소수의 지배에서 다수의 지배로 하방 이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과도한 하방이동이 진행되면 국가운영의 전문성이 크게 훼손된다고 주장한다. 다수의 지배, 즉 [양(量)의 지배]가 반드시 [질(質)의 지배]를, 즉 진리의 지배나 이성의 지배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다수의 의견 즉 대중의 의견은 감성이나 일시적 정서에 흔들릴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중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 공동체의 발전을 위하여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특히 대중들이 소수의 선동가들에 의하여 이용되면 소위 폭민정치 내지 우민정치도 등장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소위 과잉민주주의(too much democracy)는 과소민주주의 못지않게 해로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代議民主主義를 통하여 즉 국정운영에 보다 전문성이 있는 대표들을 통하여 대중의 견해를 한번 걸러내어 국정에 반영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본다. 즉 걸러낸 민주주의(fettered democracy)가 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는가? 생각건대 정답은 두 가지 주장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대중 민주주의와 전문가 민주주의가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나가면 그것이 [선진 자유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 어떠한 의미에서는 민주주의의 역사는 대중민주주의와 전문가 민주주의와의 갈등과 대립 긴장과 화해의 역사였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경우도 독립선언은 대중 민주주의의 주장이 상대적으로 승리한 역사였고 미국의 연방헌법은 전문가 민주주의의 관점이 상대적으로 승리한 역사(예컨대 상원제도)라고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 측면이 어떻게 잘 조화 균형 하느냐 가 그 나라의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결정한다.
5: 이상의 논의를 배경으로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고 성공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보도록 하자. 민주주의의 제 1단계인 민주화에 성공한 우리가 제2단계인 자유화를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이 된다.
첫째, 법의 지배(물론 입헌주의를 포함하여 광의의 법의 지배)가 확실하게 정립되어야 한다. 법의 지배는 민주화이후 자유화로 나가가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법의 지배가 정착하지 못하면 민주화는 포퓰리즘, 과잉민주주의, 폭민정치, 우민정치의 덫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면 도대체 법의 지배란 무엇인가? 법의 지배(rule of law)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법을 지켜야 한다는 단순한 법률주의(rule of legislation)와는 크게 다른 개염이다. 법의 지배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권력과 여론]의 압박과 침해를 막는 것을 생명으로 한다. [정치적 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여론](언론, NGO)과 같은 [다수자의 횡포]로 부터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 특히 [소수자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이러한 의미의 법의 지배가 성립하여야 비로소 개인의 자유과 권리가 확실하게 보장된다. 즉 민주화를 넘어서 자유화가 실현되는 것이다.
둘째, 자유주의적 헌법제도가 제대로 작동되어 소위 입헌적 자유주의가 정착되어야 한다. 개개인의 자유과 권리를 보호하는 방법으로 우리나라의 헌법은 통치구조부분에서는 권력분립(3권 분립)에 의한 견제와 균형,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사법권의 독립 등의 제도를 두고 있다. 그리고 헌법의 기본권부분에서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헌법규정, 행복추구권, 신체의 자유, 재산권, 언론출판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 개개인의 자유과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규정을 두고 있다. 문제는 이들 자유주의적 헌법제도와 규정이 현실 속에 명실상부하게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민주화에는 성공하였지만 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이 얼마나 제대로 되고 있는가? 그리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 과연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가? 사법부의 독립은 확실한가? 국민개개인의 재산권은 정말 제대로 보호받고 있는가? 신체의 자유에 대한 경찰이나 검찰로부터의 부당한 침해는 과연 없는가? 언론출판의 자유는 제대로 향유되고 있는가? 등등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아직 고치고 개선하여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 헌법제도와 헌법현실간의 괴리를 줄여나가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 발전의 제2 단계인 자유화에 성공할 수 있다.
셋째, 選擧職 국정운영자(elected officials)와 非선거직 국정운영자(un-elected officials) 사이의 힘의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정운영을 맡는 공직자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선거직이고 다른 하나는 非선거직이다. 선거직은 국민의 신임이 그 정당성의 기초가 된다. 반면에 비선거직은 그 사람의 전문적 능력이 국정운영을 맡는 정당성의 기초가 된다. 선거직 공직자로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이 있다. 非선거직 공직자는 공무원과 법관 등이다. 前者는 국정운영에 국민의 의사를 반영해야 하는 직책이다. 반면에 後者는 국정운영에 국가경영의 전문성을 반영해야 하는 직책이다. 전자는 국정운영에 [大衆性]을 후자는 [專門性]을 반영하야야 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가 서로 균형과 견제와 조화를 이루어야 민주주의가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국정운영의 대중성이 너무 과도하여 전문성이 무시되면 대중 영합적 포퓰리즘적 정책이 난무하여 올바른 국가발전이 어렵게 된다. 반면에 국정운영의 전문성만이 강조되고 대중성이 무시되면 기술관료 지배의 권위주의체제로 가 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이 두 가지는 서로 균형 조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민주화 과정에서 즉 권력의 하방이동의 과정에서, 국가운영의 전문성이 무시되는 면이 많았다. 전문가들을 기득권층으로 비판하고 폄하하는 경향까지 발생하였다. 그 결과 아마추어리즘이 국정운영을 장악하게 되어고 정책실패가 많아졌다. 결국 국정운영에서 [過多 대중성]과 [過小 전문성]의 문제가 등장했던 것이다. 따라서 민주화가 선거직 공직자의 목소리를 키우는 경향이 있는 것은 좋으나 그렇다고 非선거직 공직자를 전문성을 무시하거나 그들의 목소리를 나추도록 해서는 그 나라는 발전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선거직은 표를 얻어야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포퓰리즘에 약한 내재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한계를 非선거직들이 그들의 전문성을 가지고 견제하고 보완하여 주어야, 그 나라의 국가운영이 제대로 된다. 그러하지 못하면 포퓰리즘적 정책실패의 축적으로 결국은 민주주의 자체가 실패하고 유사민주주의를 결과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과거 산업화 시대의 經濟企劃院이 정치적 압력을 배제하면서 경제적 논리를 지켜 대한민국에 균형예산의 전통을 세웠던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넷째, 국민들이 共和主義적 시민의식(civic republicanism)을 가져야 한다. 소수의 지배에서 다수의 지배로 넘어갈 때, 즉 민주화의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다수결 원리]라는 선거제도가 가지고 있는 함정이다. 주지하듯이 선거에서는 후보들에 대한 올바른 정치정보를 얻기 위한 비용은 큰데 그러한 비용을 지불하여 투표권자 개인이 얻는 이익은 대단히 작기 때문에 투표권자들이 합리적으로 無知(voters' national ignorance)를 택하는 경향이 있다.
조금 상론하면, 많은 비용을 들여 올바른 정치정보를 얻어 그에 기초하여 올바른 투표(보다 훌륭한 후보자에게 투표)를 하였다 하여도 자기의 한 표가 투표결과에 주 영향은 대단히 미미하고, 설사 작은 영향이라도 주어서 훌륭한 대표가 뽑혔다 하여도 그로 인하여 그 개인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대단히 작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러한 이유로 투표권자들은 합리적 계산에 의하여 올바른 정치정보를 얻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한마디로 대중들은 정치에 대한 무지 내지 무관심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투표라는 것이 이와 같이 투표권자의 무지 내지 무관심한 상태에서의 선택이기 때문에 그 선택이 즉흥적이고 감성적일 수 있고 그 결과는 최선의 선택과는 거리가 먼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선거제도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약점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포퓰리스트들이다. 인기영합적 정책과 대중 친화적 이미지 만을 창출하여 득표를 노린다.
이러한 위험을 줄이는 노력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으나 그 중 중요한 방법의 하나가 국민들의 민주시민의식을 높이여 특히 공화주의적 시민의식을 높이여 선거제도가 가지고 있는 약점을 보완하는 방법이다. [이미지 정치] [인기영합의 정치][지역주의] 등이 힘을 덜 발휘하도록 하려면 결국 [깨여 있는 국민]들이 많아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공화주의적 시민의식이란 간단히 이야기 하면 개인의 이해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해를 중시하며 가능한 개인의 이해와 공동체와의 이해를 조화하려는 노력이라고 보면 된다.
6: 우리 사회에 일각에서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아직 좀 더 대중 속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소위 정치에의 대중의 참여가 아직 부족하고 권력의 하방이동이 아직 불충분하다는 주장이다. 아직 대중의 이익을 대면하는 조직된 대중의 목소리가 크게 부족하다고 보는 견해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우리의 민주화가 [노동 없는 민주화]라고 비판하고 있다. 나도 우리사회에 아직 권력의 하방이동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 (과소 대중민주주의)고 생각한다. 특히 官과 民의 관계, 정부와 기업 간의 관계 등을 보면 아직 관료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면이 많이 남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나라에도 이미 과잉민주주의(과잉 대중민주주의)가 가지는 문제점들이 많이 들어나고 있다. 특히 현 노무현 정부 등장이후 특히 그러한 경향이 뚜렷하다고 본다. 선동가적 정치와 포퓰리즘적 정책과 담론의 난무(예컨대 햇볕정책, 행정수도이전, 평준화 정책, 양극화논쟁 등등)가 그것이다. 조직된 이익집단들의 공권력 무시와 불법 및 탈법적 행위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잘못하면 [자유 없는 민주화]될 위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대중 민주주의]의 강조 못지않게 이제는 [전문가 민주주의]도 보다 많이 강조되어야 한다. 국정운영에서 비선거직 공직자의 전문성이 좀 더 존중되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공직자들의 공직윤리도 함께 강화되어야 하고 동양의 전통사상에 있는 民本主義( 以百姓之心 觀天下之事)의 가치가 보다 많이 강조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 전통사상에는 修己治人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공직자의 윤리 및 정신규범이 있었다. 이를 다시 살려내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종합적으로 이루어 질 때 우리나라 민주주의도 민주화의 단계를 넘어서 자유화의 단계로 성큼 나아갈 수 있고 대한민국 나름의 성숙한 자유민주주의의 개화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번호 |
제목 |
날짜 |
---|---|---|
186 | [유호열] 요란한 정상회담, 국민은 차분하다 | 07-08-16 |
185 | [이창원] 철밥통과 보은 인사의 만남 | 07-08-14 |
184 | [김승욱] 매사에 때가 있다 | 07-08-14 |
183 | [안세영] ‘제3의 외국인 물결’ 활용하자 | 07-08-14 |
182 | [홍규덕] 北核문제 국제적 조망 필요하다 | 07-08-13 |
181 | [이홍구] 이휘소 박사를 그리며 | 07-08-13 |
180 | 독재자보다 선동가가 더 위험하다 | 07-08-06 |
179 |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어디까지 왔나? | 07-08-03 |
178 | [신도철] 지역균형 이념화, 비효율 낳는다 | 07-08-03 |
177 | [이교관] 북한의 2.13 합의 2단계 이행 전망 | 07-08-02 |
176 | [황성돈] `u-시티`와 데팡스 | 07-08-01 |
175 | [유호열] 남북정상회담의 환상 | 07-07-30 |
174 | [남성욱] 갈길 먼 북핵 불능화 실천 가능한가 | 07-07-30 |
173 | [안세영] 韓ㆍEU FTA, 유럽형 협상전략 세우자 | 07-07-27 |
172 | [조희문] 무한경쟁 시대의 한국영화 | 07-07-26 |
171 | [박영범] 노동시장 유연화가 제2 이랜드사태 막는다 | 07-07-26 |
170 | 대한민국의 선진화 어떻게 할 것인가? | 07-07-25 |
169 | [김형준] 한나라당 경선 관전법 | 07-07-25 |
168 | [김민전] 한나라당이 갈라지면 범여권은 합친다 | 07-07-24 |
167 | [강경근] 헌재 위헌결정 또 폄훼한 盧대통령 | 07-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