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01 10:21:23
`u-시티`와 데팡스
황성돈(한반도선진화재단 정부개혁팀장, 한국외대 행정학과 교수)
프랑스 파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의례 세 가지에 감탄한다.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는 중세의 고풍스러운 파리의 구 시가지 모습이 그 첫 번째요, 미술관과 박물관마다 차고 넘치는 세계적인 예술품과 유물, 문화적 분위기가 그 두 번째다. 그리고 도시나 건물의 모습, 인간의 삶의 방식에 조금이나마 관심있는 사람들의 몸과 맘을 사로잡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초현대식 파리, `라 데팡스'(La Defense)다. 이 지역엔 모든 차들과 기차가 지하로 다니고, 지상에는 21세기의 걸출한 세계적 건축가들의 실험적인 초현대식 건물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거리를 가득, 그러나 대단히 아름답게 메우고 있다. 오늘날 건축과 도시 설계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성지처럼 순례해야 할 곳이 바로 라 데팡스라고 할 정도로, 이제 이 곳은 전 세계 건축과 도시 공학의 중심으로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우린 지난 10년간 정보통신분야에서 세계 초일류 국가라는 찬사를 세계로부터 받아가며 지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선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과 이동통신 서비스가 상용화되었고, 세계 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다양한 전자정부 서비스들이 실제로 구현되었다. 미래의 큰 먹거리를 일찍이 찾아내어 과감하고 꾸준하게 투자하고 선택한 기업과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 덕이다. 하지만 지난 수 년 간 또 다시 우리의 기업들과 정부는 정보통신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전략적 먹거리를 찾기에 부심해 오고 있다.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의 결론 중 하나가 바로 정보통신 분야의 최첨단 미래 기술인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을 도시 개발에 활용한다는 `u-시티' 사업이다. 당초 이 사업은 기존에 투자된 정보통신 시설을 백분 활용하면서도 새로운 다양한 대규모 수익 모델들이 창출되는 전형적인 블루오션 개척 사업으로 인식되며 중앙 정부와 기업들이 활기차게 달려들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사업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u-시티'사업을 기존의 인터넷 사업이나 이동통신 사업의 연장선 상에서 이해하고 달려든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기존의 인터넷 사업이나 이동통신 사업은 단품 메뉴 사업이다. 이에 비해 `u-시티' 사업은 종합 메뉴 사업이다. 기존의 인터넷 사업과 이동통신 사업에선 단말기나 개인 PC, 서버와 유ㆍ무선 통신망, 그리고 콘텐츠만 있으면 성립할 수 있었다. 건물과 도로, 각종 가구나 냉장고, 자동차 같은 모든 물건과 병원이나 은행, 약국, 백화점, 상점, 교통신호, 전기, 수도, 도시 가스 같은 사람들의 일상 삶과 직결된 편의 시설들을 재설계하는 일은 사업자들이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일들이었다. 그러나 `u-시티' 사업에선 이런 모든 것에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이 함께 성공적으로 적용되어야 도시 전체가 제대로 작동하고 그 효과를 일반인들이 체감하여 궁극적으로 사업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도시의 수많은 기능 중 어느 한 가지만 또는 어느 몇 가지만 `유비쿼터스적'으로 잘 만들어지고 나머진 기존의 방식대로 되어 있는 u-시티는 사업적으로 무용지물이다. 그런 도시가 사람들에게 기존의 도시를 뛰어 넘을 정도로, 또한 값비싼 비용을 지불할 정도로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없기 때문이다.
`u-시티'의 이런 종합성은 사업의 추진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수많은 `관계자들'의 관여가 불가피하여 이해 갈등과 조정, 협력의 난제가 사업 과정 곳곳에서 발생한다. 단일 회사나 단일 정부 부처가 결정할 수 있는 차원을 벗어난다. 또한 종합적으로 개발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투자비용 또한 어느 단일 기업이나 정부 기관, 기초자치단체들의 감당 능력을 벗어날 정도로 장기에 걸쳐 거대한 규모로 들어간다.
이런 점에서 볼 때 `u-시티'사업은 몇몇 기초자치단체나 기업, 중앙 부처들이 나선다고 될 일이 애초에 아니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답은 바로 라 데팡스처럼 구축하는 것이다.
도시로서의 전형적인 기능들이 종합적으로 들어 있는 지역으로서, 사업비용이 가능한 적게 들어갈 작은 지역을 고르되, 완성도와 집적도, 실효성과 상징성, 향후 파급성이 큰 곳을 전국적으로 한 두 곳을 우선 선정하여 이곳을 세계 최고 수준의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이 적용된 `u-시티'로 집중 개발하는 것이다. 이 때 라 데팡스 개발에서 배워야할 것이 두 가지다. 내국인으로만 하지말고 `u-시티'분야 세계 최고 고수들과 세계적 기업들이 마음껏 그들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참여 기회의 문호를 세계를 향해 활짝 개방하는 것이고, 이 지역에는 기존의 것들과는 전혀 다른 도시 개발 및 운영 법제를 원점에서부터 새롭게 수립ㆍ적용하는 것이다.
♤ 이 글은 2007년 7월 30일자 디지털타임스 [DT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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