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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韓ㆍEU FTA, 유럽형 협상전략 세우자
 
2007-07-27 11:37:18

韓ㆍEU FTA, 유럽형 협상전략 세우자 
 
안세영(한반도선진화재단 국가경쟁력팀장,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글쎄요. 일본 기업엔 별 영향이 없을 겁니다." 지난 몇 달간 와세다대학에 머물며 만난 일본 관료와 경제계 인사들의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시큰둥한 반응이다. 미국 시장이 이미 개방돼 있고 한국 시장에서도 미국 제품과의 경쟁에서 자신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한ㆍEU FTA 협상에 들어가면 바싹 긴장하는 눈빛이 보인다. 유럽에서 우리 기업에 밀릴 분야가 많다는 걱정이다. 사실 현지에서 두 나라 기업이 박빙의 승부를 겨루는 자동차, 전자 등의 평균 관세는 미국보다 훨씬 높은 10~14% 수준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도 이와 비슷한 경계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한ㆍ미 FTA 타결의 기세를 그대로 유럽 대륙으로 몰아 전광석화와 같이 협상을 해치우는 한국의 돌파력에 주변 경쟁국은 속으로 경악하고 있다. 사실 지난주에 브뤼셀에서 있은 2차 협상을 보면 확실히 빠른 속도로 치닫고 있다. 몇 차례의 끈질긴 탐색전을 벌인 미국과의 협상과는 달리 두 번째 만나자마자 양측이 보따리를 활짝 풀었다.
 
무척 고무적인 현상이다. 잘하면 연말까지 타결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우리가 들어 보지도 못하던 추급권 공연보상권을 상대가 요구하고, 자동차 금융 정부조달 등이 뜨거운 감자로 달아오르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한ㆍ미 FTA에서 쌀 개방과 같이 협상 자체를 깰 수 있는 `딜-브레이커`는 아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있다. 양측이 너무 의욕적으로 본게임에 들어가다 보니 `약간 실타래가 엉킨 것` 같다. EU가 7년 안에 모든 상품 관세를 철폐해 버리자는 파격적인 카드를 던졌는데 우리가 제대로 맞받아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250개 품목에 대한 양허 일정조차 가지고 가지 않은 한국에 실망한 EU가 기존 양허안을 후퇴시키겠다는 볼멘소리를 했다고 한다. 언뜻 보면 우리가 유리한 협상고지를 선점한 것 같다.
 
그런데 만약 EU가 소위 말하는 `저우언라이(周恩來)식 협상`을 하려 했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이 전략은 아예 초기에 크게 양보하는 빅카드를 던져 신뢰를 형성해 협상을 조기에 마무리지어 버리는 것이다. 끈질기게 밀고 당겨야 하는 FTA 협상에선 다소 예외적인 협상전략이다.
 
지금 우리는 `왜 EU가 이 같은 전략을 선택했을까?`를 차분히 생각해 봐야 한다.
 
지난 5월 1차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열린 한ㆍEU 통상장관 회담에서 EU 측은 쓸데없는 블러핑(bluffing) 등을 하지 말고 보다 건설적인 협상을 하자고 제의했다고 한다. 우리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상대를 헷갈리게 하는 블러핑 전술로 상당히 재미를 본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협상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성공의 환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재미를 본 전략을 그대로 재탕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간 한ㆍ미 협상을 면밀히 관찰한 EU가 그리 만만히 넘어갈 리가 없다. 그리고 같은 서양인이라도 미국과 달리 유럽 협상 문화에서는 상당히 `인간적인 냄새`가 난다. 상대가 바뀌면 당연히 협상전략도 바뀌어야 한다.
 
유럽과의 FTA 협상의 밑그림은 이미 그려져 있다. 어차피 한ㆍ미 FTA의 ±5% 수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양측이 마지막에 내놓을 최종 카드를 서로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럴 바에야 쓸데없이 질질 밀고 당기는 것보단 서로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의 국익을 최대한 반영하는 방안으로 협상을 진전시키는 것이 낫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다음 협상에서 내놓을 양허안에 대한 내부 조율이 시급하다. 이는 장관이나 수석대표의 힘으로는 안 된다. 총리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이 양허안은 EU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과의 협상을 모두 고려한 큰 그림 속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앞으로 진행될 협상의 전례가 돼 이들 FTA가 서로 그물처럼 얽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내부 입단속부터 단단히 해야겠다. 일개 분과장이 단독 언론플레이를 하고 부처 간 갈등이 언론에 노출되는 해프닝이 다시는 벌어져선 안 된다. 통상협상에선 수석대표만이 대외적인 입을 가지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한ㆍ미 FTA 협상에서 얻은 노하우를 한단계 응용ㆍ발전시킨 `유럽형 협상전략`을 만들어 내야 한다. 특히 이번 협상에서 실망한 EU가 강경으로 돌아서지 않게 3차 협상부터는 보다 상호 신뢰에 바탕을 둔 윈윈 게임을 해나가도록 노력해야겠다.
 
 
♤ 이 글은 2007년 7월 22일자 매일경제 [테마진단]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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