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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 무한경쟁 시대의 한국영화
 
2007-07-26 09:56:58

무한경쟁 시대의 한국영화

 
조희문(한반도선진화재단 문화예술팀장, 인하대 예술체육학부 교수)
 
 

멀티플렉스 시대를 열었던 극장체인 메가박스의 매각 소식은 한국영화 시장이 무한경쟁 체제로 진입했다는 구체적인 신호다. 2000년 5월, 서울의 코엑스점 개관 이래 10개 직영관을 포함, 전국에 150여개의 스크린을 확보한 메가박스는 업계 3위의 극장 체인이다. 지금은 매각 논란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메가박스 등장 자체가 한국영화계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대기업 자본이 영화 사업에 구체적으로 참여한 경우인데다 본격적인 멀티플렉스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뒤이어 CJ엔터테인먼트, 롯데시네마 등이 극장 사업에 뛰어들면서 영화시장은 대기업들의 각축장처럼 변했다. 이 과정에서 588개(1999년)이던 스크린 수는 1847개(2006년)로 급증했고, 프로그램 확보를 위해 제작에 참여하는 범위도 넓어졌다. 개인이 운영하던 극장들은 대응할 틈도 없이 줄어들었고, 영화제작도 이들의 영향권 안으로 흡수됐다. 그러나 멀티플렉스의 등장은 고급스러운 소비와 새로운 관객 개발의 전환점이기도 했다.
 
지난 몇 년 사이 한국영화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원하는 시간에, 보고 싶은 영화를 마음대로 골라볼 수 있는 멀티플렉스를 빼놓을 수 없다. 메가박스의 매각 이유가 치열한 경쟁 구도에 밀려나기 때문인지, 그룹 내부의 구조조정에 따른 전략적 조치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실제 배경이 무엇이든, 영화 사업에 뛰어들었던 유력한 기업이 사업적 판단에 따라 영역을 조정한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유사한 사례는 반복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미 유수의 이동통신 회사들이 영화계의 새로운 투자자로 등장하고 있으며, 흥행작을 만들었던 영화사가 회사를 매각하거나 경영자가 바뀌는 경우도 빈발하고 있다.
 
메가박스를 매입한 회사는 호주계 은행 자본이 투자하고 있는 신설 법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흥행 사업에 나설 것인지, 투자를 통한 위탁운영을 할 것인지, 이익을 붙여 다른 기업에 다시 매각할지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 어느 경우든, 주목할 부분은 외국자본이 국내 영화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대목이다. 우리 영화시장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몇 년 사이 한국영화 시장은 연간 11억7700만달러로 세계 9위 규모다(2000∼2005년 평균, 영화·비디오시장 포함. 영화진흥위원회 자료). 미국 영화계가 세계 첫 시사회 장소로 한국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도 국내 영화시장의 위상을 반영하는 사례다.
 
그동안 호황을 누리던 한국영화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춤거리는 현상을 보이자 곧바로 ‘위기론’을 들먹이지만 수년간의 호황에 따른 필연적 조정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다. 과열 분위기를 진정시키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메가박스의 매각 결정이 난 후 주식시장에서는 해당 기업에 대한 사업적 평가 전망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나타난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영화를 보고 즐기는 것은 문화지만 그것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일은 득실을 다투는 치열한 사업이다. 이익이 나는 곳에 투자가 모여들고, 성과는 문화적 활력으로 연결된다. 가시화하고 있는 한국영화의 위축은,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되돌려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관객과 투자자 양쪽으로부터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한국화 108편 중 수익을 낸 경우는 10편 안팎이라고 한탄하지만, 그만큼 상품성이 떨어지는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투자를 끌어내고, 그것이 영화계에 머물도록 하는 것은 결국 영화인들의 몫이다. 무엇보다 관객의 신뢰와 지지는 필수다. 영화사의 경영자가 누구로 바뀌든, 영화업계의 지형이 어떻게 바뀌든 핵심은 많은 관객이 지지하는 영화,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돌려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 이 글은 2007년 7월 24일자 문화일보 [포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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