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26 09:49:38
노동시장 유연화가 제2 이랜드사태 막는다
박영범(한반도선진화재단 노동경제팀장,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이랜드사태로 대표되는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노사정 간의 갈등으로 시행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비정규직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시장논리에 따르면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처우 차이에 관한 입증 책임을 지게 된 기업들은 정규직이 될 만한 자격과 능력을 갖춘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계속 고용할 것이나 그러한 자격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근로자는 새로운 곳에서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이랜드 측도 시장논리에 따라 비정규직 근로자 중 일부는 정규직화하고 일부는 외주화하는 조치를 시행하고자 했고 이에 대해 근로자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면서 문제가 복잡하게 된 것인데 어느 측면에서는 노동계는 이랜드사태를 촉발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랜드는 평상시에도 노조에 대한 배타적인 입장으로 인해 종종 사회문제를 야기해 왔고 우리나라에서 철수한 외자기업인 까르푸의 노조를 포함하는 이랜드노조는 민주노총 노조 중에서도 강성으로 알려져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자들의 전향적 자세와 신뢰에 기초한 노사 간의 긴밀한 대화와 협의가 필요한데 애초부터 이와 같은 조건이 갖추어지지 못한 이랜드는 노동계로 볼 때 비정규직법의 구조적 모순을 극대화시켜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이고 노동계는 이를 활용했다고 본다.
특히 이랜드는 중저가품을 주로 취급하는 쇼핑몰임을 고려하면 은행권과 같이 비정규직이 대폭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비정규직법이 민주노총이 주장하듯 대량해고 사태를 가져 온 것은 아니다. 최초로 비정규직 근로자 전부를 정규직화한 우리은행을 비롯해 신세계, 외환은행, 현대자동차 등 많은 기업에서 상당수의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화했다.
그렇다면 제2의 이랜드사태를 예방할 대책은 무엇인가. 우선 법적 규제를 통해서는 제2의 이랜드사태를 예방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노동계가 주장하듯 예외적인 경우에만 비정규직을 쓰도록 허용한다 해도 기업들이 근로자를 고용하도록 법으로 강제할 수 없음으로 비정규직 일자리도 줄어들고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일자리 자체가 많이 없어질 것이다. 기업들도 우리나라보다 외국에 투자를 더 많이 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법의 개정에 대한 논의는 시작부터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번 비정규직법의 제정에도 2001년도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를 시작한 이후 5년여의 세월이 걸렸다. 법 개정 논의는 민주노총, 경총 그리고 정부 등 대리인 간의 백해무익한 소모전으로 귀결될 것이다.
제2의 이랜드사태를 막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동맥경화증에 걸린 우리나라 대기업 정규직 노동시장을 치료하는 것이다. 정규직 근로자를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와 관행을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
물론 우리은행처럼 정규직 근로자의 양보도 필요하다. 한때 노조병으로 고전했던 영국은 비정규직에 대한 어떠한 법적 보호도 없으나 비정규직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7%에 불과하다.
정규직에 대한 고용조정이 용이하도록 노동시장 개혁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인력이 필요하면 기업들이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결과적으로 소수의 근로자만이 비정규직이 되고 차별도 없게 된다. 우리나라의 노사정도 정치논리에서 탈피해 정규직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풀려고 해야 한다.
♤ 이 글은 2007년 7월 24일자 세계일보 [기고]에 실린 글입니다.
번호 |
제목 |
날짜 |
---|---|---|
186 | [유호열] 요란한 정상회담, 국민은 차분하다 | 07-08-16 |
185 | [이창원] 철밥통과 보은 인사의 만남 | 07-08-14 |
184 | [김승욱] 매사에 때가 있다 | 07-08-14 |
183 | [안세영] ‘제3의 외국인 물결’ 활용하자 | 07-08-14 |
182 | [홍규덕] 北核문제 국제적 조망 필요하다 | 07-08-13 |
181 | [이홍구] 이휘소 박사를 그리며 | 07-08-13 |
180 | 독재자보다 선동가가 더 위험하다 | 07-08-06 |
179 |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어디까지 왔나? | 07-08-03 |
178 | [신도철] 지역균형 이념화, 비효율 낳는다 | 07-08-03 |
177 | [이교관] 북한의 2.13 합의 2단계 이행 전망 | 07-08-02 |
176 | [황성돈] `u-시티`와 데팡스 | 07-08-01 |
175 | [유호열] 남북정상회담의 환상 | 07-07-30 |
174 | [남성욱] 갈길 먼 북핵 불능화 실천 가능한가 | 07-07-30 |
173 | [안세영] 韓ㆍEU FTA, 유럽형 협상전략 세우자 | 07-07-27 |
172 | [조희문] 무한경쟁 시대의 한국영화 | 07-07-26 |
171 | [박영범] 노동시장 유연화가 제2 이랜드사태 막는다 | 07-07-26 |
170 | 대한민국의 선진화 어떻게 할 것인가? | 07-07-25 |
169 | [김형준] 한나라당 경선 관전법 | 07-07-25 |
168 | [김민전] 한나라당이 갈라지면 범여권은 합친다 | 07-07-24 |
167 | [강경근] 헌재 위헌결정 또 폄훼한 盧대통령 | 07-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