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24 09:24:11
헌재 위헌결정 또 폄훼한 盧대통령
강경근 (한반도선진화재단 감사, 숭실대 법학과 교수)
제17대 대통령 선거일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정권이 교체되건 승계되건 제16대 대통령은 갑(甲)의 자리에서 을(乙)로 옮겨야 한다. 재임중의 공과가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재단되는 자리에 서서 그저 바라만 봐야 한다는 말이다. 권력이 주는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는 그 자리에서 과연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일 충남 연기군 중심행정타운 예정지에서 열린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기공식에 참석, 축사에서 “행정수도가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축소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 했다. 또 “청와대와 정부, 정부 부처 일부가 공간적으로 분리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결과이며,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라면서 “꼭 행정수도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정부 부처는 모두 이곳(행정중심복합도시)으로 오는 것이 순리”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 스스로 “재미 좀 봤다”고 말한 바 있듯이 수도이전공약은 제16대 대선에서 특정 지역의 몰표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어쨌든 그 공약을 지키겠다고 한 것이 2004년 1월에 공포한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었다. 하지만 이 법은 그해도 넘기지 못한 10월21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재판관 8 대 1의 다수 의견으로 위헌결정이 내려져 그 효력을 잃었다.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은 관습헌법으로 인정되는 만큼 수도이전은 국민이 결정하는 헌법 개정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그 절차 없이 바로 국회의 법률로 이를 행하는 것은 규범의 역전, 즉 법률의 하극상이 되기 때문이다. 수도이전은 선거 전략으로, 또는 정치적 계산만으로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 보다 폭넓은 국민적 이해와 합의와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위헌결정의 뜻이었다.
그랬더니 부처의 3분의 2만 이전하면 수도이전이 아니지 않으냐고 강변하면서 수도 분할을 강행했다. 헌법재판소가 간곡하게 말한 그 헌법의 뜻을 노 대통령은 그렇게 무시했다. 해가 바뀐 2005년 2월,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주축으로 한 국회의원 151명이 발의한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도시 건설 특별법안’의 명칭에, 헌재가 위헌이라 하여 무효화시킨 ‘신행정수도’라는 이름을 굳이 붙이고 그 ‘후속 대책’을 위한 법이라 한 것을 보면, 당시 대통령과 집권당이 국민이 위임한 행정권과 입법권을 얼마나 오만방자하게 행사했는지 알 수 있다. 스스로 갑의 자리에서 권력을 휘둘러 국민과 헌법을 갑의 위치에서 을의 자리로 밀어넣은 것이다.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에서 그 명칭을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으로 변경하고 이전 대상에서 제외되는 중앙 부처를 규정하는 등의 내용으로 수정·의결하고 3월 국회 본회의가 이 법안을 통과시켜 공포, 시행한 것은 사실 헌재가 밝힌 헌법의 뜻을 잠탈(潛脫)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 전원재판부가 위헌심판에서 7 대 2의 각하 결정을 한 이유는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수도로서의 지위를 획득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이전하는 기관의 질과 양이 수도가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이전한다거나 분할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결정이었다. 그 점에서 노 대통령의 20일 발언은 헌재가 밝힌 헌법의 뜻에 정면으로 반한다. 이것도 자연인으로서 한 발언이라고 비켜가지는 못할 것이다. 노 대통령은 2단계 균형발전정책을 곧 발표할 예정이라면서 “대선 후보들이 지금은 일치해 행정중심도시 건설과 균형발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이명박과 박근혜 두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자가 그러한지 확인해야 한다. 국토균형발전이 필요하다 해서 꼭 행정중심도시가 연결돼야 하는지는 국민적 재검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을의 자리에서 권력을 너무 즐기는데, 그 갑의 자리에는 항상 국민과 헌법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이 글은 7월 23일자 문화일보 [포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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