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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어떻게 볼 것인가
 
2007-07-23 17:24:48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어떻게 볼 것인가

이교관․한반도선진화재단 사무부총장

 
 미 민주당과 공화당 전당대회가 우리나라 정당들처럼 대통령 후보를 선출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이들 미국 정당의 전당대회가 구체적인 정강과 정책에 대한 각 정당 내 제 정파 간의 합의를 이뤄내는 일을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대선 후보 선출이라는 축제의 장이자 제 정파 간의 치열한 논쟁을 통해 국정 과제 별 비전과 정책을 확정하는 국가경영을 위한 담론(discourse)의 장이 바로 미국 정당의 전당대회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당들의 전당대회는 출신 지역과 인물 중심의 경쟁을 통한 대선 후보 선출 외에 제 정파 간 노선 투쟁을 통해 합의된 구체적인 정강과 정책을 제시하는 역할까지 수행해 오지 않았다. 모든 정당 내 제 정파의 목표는 자기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후보로 선출되도록 만드는 데에만 있을 뿐 그 정당의 공식 정책에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하려는 데는 관심이 없다. 이 때문에 선출된 후보의 정책이 당 공식 정책으로 전환돼 왔다. 이 점에서 우리 정당들은 정책에서도 승자 독식(winner-take-it-all) 구도가 관철되는 전근대적인 정당 체제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6월 28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후보들 간에 외교안보를 비롯한 각 분야 별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들 토론회가 개최되기 전 적지 않은 사람들은 한나라당의 이 같은 계획을 접하고 우리 정당들도 비로소 대선 후보 선출만큼이나 대선에 임하는 당 공식 정책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기대를 가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네 차례 토론회는 그 같은 기대를 보기 좋게 걷어차 버렸다. 후보들 간에 진지한 정책 토론 모습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그보다는 특정 후보에 대한 마타도어 성 질의를 퍼부음으로써 상대의 토론 의지를 죽이거나 상대가 답변을 하든 말든 여유를 갖고 들을 생각은 않고 자신의 입장만 웅변처럼 밝히는 등 교양이라고는 조금도 찾기 힘든 후보들이 많았다. 이는 보스 중심의 정치와 지역주의의 정치에 길들여진 나머지 자신의 정책을 설득력 있게 펴고 상대의 정책에 대해 교양 있게 질의하는 수양과 공부를 제대로 한 정치인을 찾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토론회의 이 같은 참담한 실상은 그래도 약과다. 토론회 밖에서는 같은 당 후보들 간 경쟁이 아니라 적대적 진영 간에 벌어지는 전쟁 같은 광경들이 벌어진 것이다. 특정 캠프들이 연일 네거티브 이슈로 험악한 말을 주고받았고 그 결과 토론회를 통해 후보들 간에 정책 경쟁을 유도해 국민들에게 정책 정당 이미지를 높이려던 한나라당의 계획은 충분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토론회에서의 일부 후보들의 교양 없는 질의 및 응답 모습과 토론회 밖에서의 특정 캠프 중심의 네거티브 캠페인은 지난 10년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지친 나머지 한나라당을 대안으로 생각해 온 적지 않은 국민들의 실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사실 지난 10년 간 연속해서 집권에 성공해 온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중심으로 한 햇볕정책 세력으로부터 국가경영의 기회를 되찾아 온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것은 정부가 갖고 있는 권력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집권 세력이 갖고 있는 권력은 조세권력, 재정권력, 금융권력, 검찰권력, 경찰권력, 방송권력, 정보권력 등 마음만 먹으면 국민적 여론을 순식간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되돌릴 수 있는 권력들이 하나둘이 아닌 것이다.
 
한나라당 후보들은 이 같은 엄중한 현실을 모르는 것일까? 만약 그들이 이런 현실을 알고 있다면 왜 이미 권력을 잡기라도 한 듯 오만하게 정책과 비전을 보여주는 노력보다 네거티브 캠페인에만 골몰하고 있을까? 국민들이 너무나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실망한 나머지 한나라당
후보들의 정책과 비전을 보지도 않고 표를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까?
 
그 까닭은 두 가지로 살펴 볼 수 있다. 첫 째는 한나라당이 지난 4년간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이 매우 깊다고 판단하고 이번 대선에서는 누굴 후보로 내보내더라도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한나라당은 그런 판단의 근거로서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의 지지율 합계가 70% 안팎에 달한다는 것을 들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지난 2002년 대선 경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에 국민들 사이에 김대중 정부에 대한 반감, 이른바 ‘반DJ 정서’가 많이 확산됐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그 해 12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들떠 있었으나 결과는 패배였다. 물론 여당의 노무현 후보가 무소속 정몽준 후보와 후보 단일화라는 흥행을 통해 지지율 제고에 성공하는 등 여당의 대선 전략이 먹혀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큰 패배 원인은 한나라당 내부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 당시 한나라당은 마치 DJ가 여당 후보로 다시 나오는 듯 여기고 국민들의 반DJ 정서에만 기댄 채 여당에서 누가 후보로 나오더라도 이길 수 있다고 오판했다. 여당에서 뉴 페이스가 나오면 그 같은 반DJ 정서가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아니 대선 국면의 시간과 공간은 예측할 수 없다는 기초적인 사실조차 이해 못했던 것이다. 한나라당은 ‘네거티브 한 방이면 이길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에 의존해 대선 직전까지 네거티브 이슈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결국 가슴에서 우러나온 정책과 비전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제시해보지도 못하고 대선에서 지고 말았다.
 
지금 목도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모습은 5년 전과 결코 다르지 않다. 국민들의 ‘반노무현 정서’에 기대, 어떤 네거티브 캠페인에 골몰하더라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오판하고 있는 일부 후보들의 인식이 2002년 당시 반DJ 정서를 전가의 보도처럼 여겼을 때와 무엇이 다른가?
 
한나라당이 네거티브 캠페인에나 몰두한 나머지 정책과 비전 제시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두 번째 까닭은 상당수 구성원들이 밤을 새워가며 국가 경영을 위한 정책을 개발해 본 경험을 거의 갖고 있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경영의 기회를 햇볕정책 세력에게 넘겨주기 전까지 한나라당과 그 이전의 신한국당이 대선에 들고 나간 상당수의 정책은 제 정파가 난상토론 끝에 합의한 것이 아니라 관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더구나 한나라당에 충원된 의원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출신 분야에서 엘리트로 성장을 했을지언정 그들이 국가와 민족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가슴과 머리로 고민한 시간을 많이 갖지는 못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들이 적지 않다.
 
사실 따지고 보면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것은 김대중 정부 5년 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겉으로만 보면 김대중 정부가 IMF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안전망 확충에 노력한 것처럼 비쳐졌으나 정확히 들여다보면 DJ 정부 집권 5년 동안 기업의 투자의욕은 위축되고 신 빈곤층이 양산됐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2002년 대선에 들고 나온 DJ정부에 대한 비판적 의제라는 것은 고작 ‘부패정권 심판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한나라당이 DJ 정부 5년의 국정 결과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보여준다.
 
한나라당이 2007년 대선에서만큼은 그 같은 무지를 주장하지 않기 위해서는 노무현 정부의 5년간의 국정 결과에 대해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 이는 특정 후보 캠프 단독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같은 연구가 되어 있지 않으면 두 가지 참혹한 결과를 피할 수 없다. 하나는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정권 교체의 근거로 제시하는 의제가 엉뚱한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민들의 반노무현 정서를 희석시킬 수 있는 여권의 뉴 페이스가 등장해 한나라당의 준비돼 있지 않은 정책과 비전을 공격할 경우 한나라당으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앞으로 12년 뒤에는 고령사회가 도래해 우리 경제의 잠재 성장률이 1-2%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본다면 향후 12년 안에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하면 영원히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지난 100년 동안 선진국으로 도약한 나라는 일본과 아일랜드 등 두 나라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아일랜드처럼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지 여부는 차기 정부 5년 안에 판가름 날 것이다. 차기 정부를 누가 구성하느냐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햇볕정책과 분배 우선주의 정책 세력에게 국가경영을 맡긴 결과 이들 세력으로는 선진국 도약을 이루기가 어렵다는 데 많은 국민들이 인식을 함께 하고 있다.
 
최근 프랑스 국민들이 대선에서 좌파인 루아얄 후보대신 우파인 사르코지 후보를 선택한 것처럼 많은 나라에서 세계 변화를 읽어내고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정당으로 우파 정당을 주목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한나라당에 기대를 거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답은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대선 후보 경선 과정을 정권 교체를 희망하는 국민이라면 모두 흥겹게 참여하는 축제로 승화시킴과 동시에 차기 정부 5년 동안 대한민국을 어떻게 선진국으로 도약시킬 수 있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보여주는 것이 한나라당의 할 일인 것이다.
 
 
* 이글은 한국발전연구원에서 발행하는 월간 리뷰지(誌)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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