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18 11:37:06
‘우리은행’을 어찌할꼬
강석훈 (한선재단 금융정책팀장,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우리은행. 참 특이한 이름이다. 이 은행은 외환위기 이후 무려 12조원이 넘는 국민 세금이 투입된 금융회사다. 현재 정부(예금보험공사)가 72.97%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정부 소유의 은행이며, 향후 민영화가 예정되어 있는 은행이다. 문제는 민영화와 함께 누가 이 은행을 경영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최근 우리은행의 민영화와 관련하여 국민연금이 우리은행을 인수하는 방안이 제기된 바 있다. 이 방안에 대해서는 정부 내부에서조차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총리실과 보건복지부는 찬성인 반면, 금융감독위원회와 기획예산처는 반대 입장인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한 번만 다시 생각해 보면 결론은 명확해진다. 정부기관끼리 주식을 사고파는 것은 민영화가 아니다. 국민연금이 은행 경영에 전문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국민연금에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이 공적 자금의 회수를 극대화하는 최선의 방법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공적 연금이 운영하는 또 다른 공적 은행의 탄생이 은행산업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국민연금의 은행 경영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은행 경영권문제 논란의 배경에는 금융과 산업의 분리원칙, 보다 정확하게는 산업자본의 은행 경영을 제한하는 은·산(銀·産) 분리원칙이 있다.
은·산 분리의 논리는 명확하다. 기업이 은행을 경영하는 경우, 기업이 부실화되면 은행도 부실화된다. 또 고객들이 은행에 맡긴 돈을 기업들이 마치 자신들의 사금고(私金庫)처럼 사용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 기업들이 기본적으로 부도덕하며, 위법과 탈법을 일삼는 늑대처럼 묘사되면서, 은·산 분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수하여야 할 경제정의의 상징으로 둔갑한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도 몇몇 은행의 경영권은 외국자본에 넘어갔다. 경영권이 넘어가지 않은 다른 은행들도 외국인 지분이 60~85%에 달한다. 은·산 분리를 외치는 동안 우리의 은행산업은 외국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과거 정부의 보호 아래 정부 주도로 운영되던 시중은행들은 대부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초토화되었다. 구조조정 이후에 새롭게 부상한 현재의 시중은행들이 보여주는 모습도 실망스럽다. 한동안 주택을 담보로 가계대출에 ‘올인’하더니, 이 부분을 막으니까 이제는 중소기업 대출에 올인하고 있다.
우리 경제규모에 걸맞게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은행을 찾을 수가 없다. 이러는 동안 세계무대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벌이는 우리 대기업들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다른 나라의 대형은행들에게 중요한 은행서비스를 의존하게 되었다.
이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우리 기업들은 외환위기 전후에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경쟁력을 키워온 기업들이다. 이러한 기업들의 전면적인 부실화 가능성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다. 지금의 금융감독당국과 금융시장은 옛날과 다르다. 사금고화 문제는 감독당국의 정교한 감독기능과 시장에서의 감시기능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이제는 과거 은·산 분리의 배경이 되었던 논리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은행산업은 국부를 창출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 될 수 있다. 이제는 은·산 분리 원칙을 완화하고, 은행에 가해지고 있는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며, 책임 있는 은행 경영 주체를 만들어서 우리 은행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물론 대주주 적격심사제도, 지배적인 주주에 대해 내부 견제가 가능한 지분구조, 금융감독의 선진화 및 정교화 방안 등에 대해서는 충분한 사전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은행산업을 통째로 외국에 넘겨주지 않으려면, 그리고 은행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서 미래의 먹거리를 확보하려면, 은·산 분리 원칙을 완화하는 역발상이 요구된다.
♤ 이 글은 2007년 7월 12일자 조선일보 [경제초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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