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선 칼럼

  • 한선 브리프

  • 이슈 & 포커스

  • 박세일의 창

꼬박 15년 걸린 ‘로스쿨’ 여정
 
2007-07-09 10:17:25

 꼬박 15년 걸린 ‘로스쿨’ 여정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지난주 로스쿨(전문법과대학원)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1995년 2월 김영삼 정부 때 ‘세계화추진위원회’가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한 로스쿨이 드디어 2009년부터 개교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근대적 사법제도가 1894년에 도입되었고 그 100주년을 기념하는 1995년에 시작된 사법개혁이 15년이 지나 비로소 그 핵심부분의 하나가 실현되는 셈이다. 그만큼 로스쿨 도입은 큰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본래 1995년 사법개혁은 국민에게 양질의 전문 법률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변호사수는 턱없이 부족하였고 수임료는 한없이 비쌌다. 인구 1만 명당 변호사수가 미국의 41분의 1, 영국의 17분의 1, 독일의 9분의 1, 일본의 1.7분의 1이었다. 수임료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변협에서 형사사건 착수금은 500만원 이상, 성공보수는 1000만원 이상을 받지 말라는 규칙을 정할 정도였다. 우리와 유사한 법제를 가진 독일의 변호사 수임료의 3~6배 수준이었다. 그러니 민사사건의 경우 62.4%는 변호사 없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변호사들은 민·형사 사건만으로 수입이 좋으니 국제화와 전문화가 필요 없었다. 그래서 국제거래 변호사가 전국에 214명(송무 포함)뿐이었고 세무전문 변호사는 전국에 35명 수준이었다.
 
행정부 전체에서 일하는 변호사도 10명에 불과하였다(법무부 제외). 그런데도 당시 법대 학생 수가 7000명, 사시 응시자수가 1만6000명인데 사시정원은 290명으로 묶여 있었다. 엄청난 교육낭비와 법조인 부족 속에서도 법조계는 정원을 더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당시 사법시험제도는 ‘법조특권세력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제도였다. 법률소비자인 국민들은 안중에 없었다. 사법개혁 추진인사들을 사법오적(司法五賊)이라고 공격하던 때였다.
 
사법개혁의 제1과제는 법조인 수를 늘리는 것이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 세계화추진위원회는 법조계의 반발을 누르고 대법원을 설득하여 사시합격정원을 2000년부터 1000~2000명으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사법개혁의 제2과제는 늘어나는 법조인의 질을 높이는 문제 즉 법조인 양성제도의 개혁이었다. 세계화시대에 맞는 다양한 양질의 법조인(국제거래, 지적소유권, 환경 등)을 양성하기 위하여 로스쿨제도를 도입하는 문제였다. 이것은 법조인 양성제도를 종래의 ‘시험을 통한 선발’에서 ‘교육을 통한 양성’으로 바꾸는 혁명적 전환을 의미했다. 그러나 로스쿨 제도가 법조인수를 늘릴지 모른다는 이유로 법조계 반발은 강력했고 결국 개혁은 좌초되었다. 그리고 사법개혁은 표류하기 시작하여 지난 10여 년을 허송했던 것이다.
 
일본은 우리가 1995년 사법개혁을 추진할 때 한국에 와서 “당신들은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일을 하는가?”라고 부러워하면서 우리가 구상하던 로스쿨 안을 가져갔다. 그러더니 1997년 7월 사법제도개혁심의회를 만들어 우리의 안 중 하나를 참고하여 자신들의 로스쿨 안을 만들고 2002년 법안을 통과시키고 2004년 개교했다. 우리는 법안통과에 12년이 걸린 일을 그들은 5년 안에 해낸 셈이다.
 
왜 우리는 국민과 나라를 위하여 반드시 하여야 할 개혁이 이리 더디고 느린가? 그 이유는 우리 사회에는 공(公)이 너무 약하고 사(私)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공공선(公共善)과 공익보다, 개인과 집단이기주의가 너무 앞서기 때문이다. 특히 이 나라에 힘 있는 사람, 돈 있는 사람, 지식 있는 사람들이 ‘공익과 미래’를 위한 양보와 희생에 너무 인색하고 기득권유지에 너무 급하기 때문이다. 이래선 안 된다. 사회지도층의 선공후사(先公後私)와 솔선수범이 있어야 나라가 발전하는 법이다. 그래야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와 개혁’을 제때에 성공시켜, 나라를 상등(上等)국가로 만드는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이루어 낼 수 있다.

 
♤ 이 글은 2007년 7월 8일자 조선일보 [아침논단]에 실린 글입니다.
  목록  
번호
제목
날짜
166 [이교관]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어떻게 볼 것인가 07-07-23
165 몽양, 어떻게 볼 것인가 07-07-23
164 [이창용] 30년 배워 20년 써먹는 나라 07-07-23
163 [조순] 개혁, 선진화와 인물찾기 07-07-20
162 [강경근] 국정원은 ‘심부름 센터’ 아니다 07-07-20
161 [강석훈] ‘우리은행’을 어찌할꼬 07-07-18
160 [이홍구] 이준 열사 순국 100주년에 부쳐 07-07-18
159 [김영봉] 공무원도 내신으로 뽑는다면 07-07-12
158 꼬박 15년 걸린 ‘로스쿨’ 여정 07-07-09
157 [강석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07-07-02
156 [유호열]전략과 일관성 부재로 변죽만 울린 노태우·김영삼 정부의 대북정책 07-06-28
155 [조영기] 한·미 FTA 추가협상과 ‘이익의 균형’ 07-06-26
154 [강경근] 6월 국회, 사학법 재개정 관철하라 07-06-26
153 [황성돈] 차세대 전자장부, 인적 역량이 관건 07-06-21
152 [강경근] 法비웃는 대통령 07-06-20
151 [이인호] 지각의 실종 07-06-20
150 왜 공동체 자유주의인가? 07-06-19
149 지역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 07-06-19
148 [안종범] 수도권 규제, 전면 재검토해야 07-06-18
147 [이홍구] 6·25를 잊지 말라 07-06-18
121 122 123 124 125 126 127 128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