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02 12:12:36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강석훈 (한선재단 금융정책팀장,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고전 홍길동전에 보면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은 자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다.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강요받는다. 이 표현은 대입 관련 내신성적 논란에 대하여 교육 분야에 정통한 한 교수가 자주 사용하는 비유이다.
동일한 내신성적일지라도 학교가 다르면 현격한 실력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이 사실을 이야기하거나 입시에 반영하지 말라고 강요한다. 경우는 다르지만 마치 홍길동에게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강요하는 것과 유사하다.
사실 대부분의 모임에서 교육 문제가 화제가 되면 이는 곧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임을 의미한다. 모임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나름대로 교육 전문가들이고, 자칭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문제와 입시 문제에 대하여 논의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신판 홍길동전이 상식으로 판단할 때도 너무나 기가 막히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교육은 우리 미래의 먹거리를 담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모든 논의의 시작은 현실을 직시하는 데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학교 간 학업 성취도의 차이가 있음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청와대가 작년에 양극화 논의를 주도하면서 발표한 통계를 보면, 고등학교 졸업생 수에 비하여 흔히들 이야기하는 3대 명문대학 입학생 수의 비율은 서울 시내에서도 구(區)별로 최대 7.2배의 격차가 있다. 전국적으로는 이보다 훨씬 격차가 클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대학 입시에서 학교 간 학업 성취도의 차이를 인정하지 말라고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강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중단하겠단다.
대학에 대한 지원금은 교육부 직원들이 번 돈으로 주는 시혜성 자금이 아니다. 교육부의 지원금은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자금이고, 대부분 이공계열의 연구에 사용되는 재원이다. 중국에 쫓기고 일본에 뒤처지는 샌드위치 경제의 현실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 상황을 돌파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그런데도 학교마다 학업 성취도가 다른 것을 같다고 하지 않으면,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사용되어야 할 연구비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 과학기술 연구에 몰두하는 대학의 연구자들을 폄훼하는 일이다. 세금을 내는 국민들도 황당해한다. 국민들은 땀 흘려 번 돈으로 낸 세금이 불쌍한 홍길동을 만들어 내는 데에 사용되기를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
대학 교육에 대한 공공부담 규모는 외국에 비해 초라하다. 2005년 기준으로 대학에 소요되는 공교육비에서 공공부문이 부담하는 비율은 국민총생산 대비 0.3%에 불과하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 1.1%에 비하여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지금의 혼란은 보여주기조차 민망하다. 국가가 나서서 같지 않은 것을 같다고 강요하는 모습은 학생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이제 학생, 학부모, 대학, 그리고 나라의 미래를 위해 내신 관련 혼란을 조속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학교 간 격차가 있음을 인정하자. 그리고 학교 간 격차를 대학 입시에 반영하는 방법은 개별 대학에 일임하자. 과학기술 연구에 사용될 귀중한 연구비를 볼모로 사용하면서 대학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를 강요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자. 더 좋은 학생을 뽑아서 더 훌륭한 학생으로 키워내려는 대학의 노력을 믿어 보자. 대학의 노력 여하에 따라 훌륭한 인재의 양성 여부가 결정되고, 그 인재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된다.
교육부가 왜 대학들로 하여금 홍길동이 되기를 원하시는지 짐작은 하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교육부가 져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 이 글은 6월 22일자 조선일보 [경제 초점]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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