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은 YS와 DJ의 최후 승부처인가?
김일영 (한선재단 외교안보통일 패널 위원,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2007년 대선은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최후의 승부처가 될 것 같다. 올해 대선을 바라보는 관전 포인트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야권을 중심으로 보면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 중 누가 경선을 통과할지가 관심사다. 여권만 놓고 보면 단일 후보가 나올 수 있을지가 주목되는데, 그 열쇠를 김대중 노무현 전·현직 대통령이 쥐고 있다는 점에서 둘 사이의 관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여야를 함께 놓고 보면 이번 대선은 이명박 후보를 지원하는 김영삼과 여권후보 단일화에 올인하고 있는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이 최후의 승부를 벌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지하듯이 김영삼 김대중 두 정치인의 경쟁과 갈등은 지난 반백년 동안 이어졌다. 출발은 김영삼이 화려했다. 그는 1954년 자유당 후보로 출마해 약관 26세의 나이로 금배지를 달았다. 김대중도 이 선거에 출마하지만 낙선하고 말았다. 1955년 통합야당인 민주당이 출범했고 두 사람 모두 그 당에 몸담으면서 한솥밥을 먹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신구파로 나뉘어 파벌싸움을 벌였고, 김영삼은 구파에, 김대중은 신파에 몸담으면서 두 사람의 ‘한 지붕 두 가족’ 관계가 시작되었다.
김대중의 초년 불운은 그 후로도 이어졌다. 그 후로도 두 번 더 낙선한 그는 1961년 5월 강원도 인제의 보궐선거에서 마침내 당선되지만 곧바로 터진 5·16 쿠데타 때문에 의정 단상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금배지를 날리고 말았다. 같은 기간 김영삼은 약관의 나이에 원내부총무, 대변인 등을 거치며 의정활동을 하고 있었다.
뒤집기 기회는 1970년에 왔다. 1963년부터 늦깎이 의정생활을 시작한 김대중이 신민당 대통령 후보경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김영삼을 꺾었기 때문이다. 이후 두 사람은 외부에 강한 적(박정희나 전두환)이 있을 때는 협력하지만 그것이 사라지면 곧바로 경쟁과 갈등관계에 접어드는 행동을 반복했다.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기 위해서는 협력했으나 그가 서거하자 분열해 전두환에게 권력을 헌납했고, 전두환 정권에 저항하는 동안은 협력했으나 그가 물러나는 게 확실해지자 분열해 노태우에게 권력을 헌납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볼 때 1987년 대선은 일단 2위를 차지한 김영삼의 승리였다. 하지만 이듬해 총선에서 김대중의 평민당이 2위를 차지함으로써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에 대해 김영삼은 3당 합당으로 응수했고, 그 덕에 1992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김대중이 정계를 떠나면서 둘 사이의 승부는 끝난 듯 보였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말기 IMF 위기가 닥침으로써 그에 대한 평가는 곤두박질쳤고, 이 틈을 노려 김대중은 1997년 대선에서 4수 끝에 대권 고지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집권 중 노벨상까지 받으면서 승승장구했고, 노무현을 내세워 정권재창출까지 함으로써 그들만의 리그에서 승리를 이어갔다.
지난 10년 절치부심하던 김영삼에게 올해 대선은 마지막 남은 설욕의 기회로 비쳐질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죽는 줄 알고 발악하고 있다”고 상대편에게 독설을 퍼붓는 데에서 이번 대선을 바라보는 그의 심중이 잘 드러나고 있다. 김대중에게 이번 대선은 지난 10년간 이어져온 승리에 쐐기를 박을 수 있느냐의 여부를 결정짓는 것이다. 그는 이런 절박한 심정을 “대통합이든 후보단일화든 간에 사생결단까지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번 대선은 한국이 한 단계 도약하느냐 이대로 주저앉느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선거이다. 그런데도 김영삼 김대중 두 ‘구(舊)정치인’에게는 이것이 사감(私感)을 푸는 장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것 같다. 모든 직종에 정년이 있는데, 유독 정치인에게만은 그것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 본 칼럼은 2007년 6월 3일자 조선일보 [시론]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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