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28 10:26:00
공기업은 정권의 놀이터인가
김영봉(한반도선진화재단 지도위원,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노무현 후보의 도(道) 조직특보, 도 추대위고문, 지역 선대위원장, 열린우리당의 전략기획실장, 도 여성위원장, 시 창당위원, 군 국회의원후보, 새천년민주당의 지역 선대위원장, 시의원, 민주평통 자문위원, 평통 군 협의회장, 지역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지역 정치개혁추진위 대표, 대통령직 인수위원, 청와대 비서….
이상은 남미출장을 떠났던 공기업 감사들의 전직(前職)이다. 21명 중 공인회계사, 연구원본부장과 기술연구원 검사역 출신이 한 명씩 끼어 있는 게 신통할 지경이다. 공기업 감사란 어떻게 임명되는지, 그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짐작하게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들을 모아 놓고 “여러분이 책임을 지시오” 하고 야단쳤다고 한다. 정말 대통령은 이 인물들이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을 막을 파수꾼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단 말인가. 이과수폭포 아니라 기업의 시퍼런 혁신 현장을 방문한들 무엇을 보고 배울 수 있었을까. 책임은 그런 그릇을 임명한 사람이 져야 할 것이다.
공기업에는 나름대로의 존립 이유가 있다. 국가적으로 필요한 사업이지만 사기업이 못하는 경우, 공공성과 외부효과가 큰 경우, 국가재정수입을 늘리기 위한 경우 등인데, 때가 되면 이런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광업이 자취를 감춘 오늘날까지 광업진흥공사와 석탄공사가 버젓이 살아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중요하지만 밝히고 싶지 않은 이유, 곧 정권의 놀이터가 되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기업의 높은 자리는 고위층 연고자나 정치꾼들의 차지가 되어 왔다. 이들은 정치에는 이력이 났지만 경영에는 까막눈이다. 기업 경영을 위해서는 이들이 안에서 작당(作黨)하고 간섭하느니 차라리 국가 돈으로 일 년 내내 여행 나가 있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된다. 그 때문에 지난 5공(共) 때의 공기업 개혁에서는 이사장 직을 새로 만들어 월급, 비서, 자동차를 대 주되 경영은 보고만 받도록 했다. 낙하산 수요를 충당하되 그 부작용은 최소화하자는 궁여지책인 것이다.
그런데 DJ 정권이 들어서서 이사장 자리를 옥상옥이라 하여 경영 혁신한다고 없애 버렸다. 그 뒤 사장, 감사 이하 책임 직책을 정치꾼들이 점령하기 시작했다. 이 정권 들어서는 과거 운동권 동지, 총선 낙선자와 당료들을 터놓고 밀어넣으며 ‘공기업의 개혁’을 위해서는 낙하산 인사, 코드 인사도 옳은 일이라고 가르치는 지경이 됐다. 이것은 공기업을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고 국토균형의 이름으로 지역에 나누어주고 친(親)정권 세력을 전리품으로 꾀는 ‘정치적 개혁’을 의미한다. 과거의 개혁이 걱정했던 예산 낭비, 경쟁력 하락, 국민 불편같이 ‘사소한 것’은 이제 잊어버리라는 것이다.
2005년도 금융기업을 제외한 중앙정부의 32개 투자·출자기관의 총자산 규모는 417조원, 고용은 11만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60여개의 자회사를 거느린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수많은 지방 공기업을 운영한다. 이 거대한 한국의 공기업부문이 오랫동안 진정한 기업 개혁의 무풍지대가 됐다. 사기업들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며 직원들을 혹사하고 자르고 하지만 공기업들은 정부가 자리를 더 만들라 하면 더 채용하고, 이사를 가라면 간다. 과도한 임금인상, 무분별한 자회사 확대, 분식회계 등의 행위가 노상 감사원에 적발되며, 낙하산 인사로 노조에 발목을 잡혀 정부 기준의 4배가 넘는 노조 전임자를 고용하기도 한다. 638억원의 적자를 낸 공영방송이 80여억원 예산을 직원들끼리 나눠먹고 회사가 국민연금을 대납해 준 사례도 있다.
이런 공기업에도 언젠가 구조개혁의 철퇴가 날아와야 경제도 살아나고 사회정의도 실현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날이 과연 언제 올 것인가. 공기업이 존재하는 한 어떤 정권도 유혹에 빠질 수 있고, 다음 대통령 역시 참여정부처럼 전리품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번 대선후보들은 공기업을 모두 민영화할 것인지도 반드시 공약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2007년 5월 25일자 조선일보[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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