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교과서는 이념논쟁 대상 아니다
안종범 (한선재단 조세재정팀장,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
‘경제학은 재미없고 어렵다!’ 한때 우리 대학생들이 갖고 있던 생각이다. 당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대응은 ‘그래도 중요하니 열심히 공부하라’라는 것이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경제학이 비인기 전공으로 추락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계에서는 철저한 자기반성이 이뤄졌다. 당시 개최된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는 ‘경제교육’을 핵심주제로 선정,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경제학 교수들은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려는 부단한 노력을 시작했다. 영화를 보여주면서 경제논리를 설명하기도 하고,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을 재미있게 경제논리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제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경제학의 인기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대학가에서 벌어진 경제학의 따돌림 현상이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그리고 대입에서 벌어지고 있다. 현재 고등학교 2, 3학년 때 경제를 선택하는 학생이나 수능에서 경제를 택하는 학생이 극소수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교육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나서 차세대 고교 경제 교과서 모형을 개발했다. 시장경제 논리를 학생들이 늘 접하는 현실 문제에서부터 출발해서 피부에 와닿게 쉽게 설명하는 노력을 담아서 전혀 다른 차세대 경제 교과서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전교조와 민주노총 등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분배의 중요성 등이 빠졌다면서 교육부를 압박했다. 급기야 교육부는 10개의 읽기 자료를 추가하겠다는 통보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익히 보아온 이념논쟁이 차세대 경제 교과서를 두고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학문이다. 경제주체들의 행동과 이를 통한 시장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데는 이념이 필요 없다. 경제학에 진보 이념을 포함시키려는 시도는 마치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 경제 교과서에 기업과 가진 자의 윤리를 포함시키는 것은 마치 수학 교과서에 수학 문제 풀 때 바람직한 자세를 포함시키는 것과 같다. 이런 것들은 경제 교과서가 아니라 윤리 교과서에 포함시키면 된다.
중·고등학생들에게 비정상적인 기업이나 노조의 행태를 미리 설명할 필요는 없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경제가 어떤 원리에서 작동하는지를 쉽게 가르쳐서 깨닫게 하면 성공이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하게 되는 ‘선택’은 늘 ‘기회비용’이 수반되므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과정을 일상생활에서의 사례를 들면서 재미있게 설명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기업이, 그리고 정부가 하는 것이기도 하고 여기에는 반드시 기회비용이 수반돼 대가가 있다는 점도 깨닫게 하면 된다. 그래야 ‘떼법’이 통하지 않고 재원 마련 대책없이 무조건 혜택을 늘려 달라는 집단 이기주의가 성행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올바른 경제교육이 건전한 시민의식을 만들어내는 핵심 역할을 하는 셈이다.
교과서를 바로잡는 노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교사들의 강의법 개발이다. 교과서에 담긴 내용을 흥미를 유발하면서 쉽게 가르치는 노하우는 교사 개인의 노력에 맡겨서는 안 된다. 수많은 경제논리와 경제 개념들을 학생들에게 최대한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방법론이 끊임없이 개발돼야 하고 이를 모든 학교 교사들이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경제 개념을 가르치는 방법을 초등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학년별로 구분해서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강의법을 소개하는 수많은 경제 교육 웹사이트가 운영되고 있을 정도이다.(예: http://ecedweb.unomaha.edu)
경제 교과서를 더 이상 심각하게 만들지 말자. 교과서를 더 재미있게 만들고 더 쉽게 가르치는 방법을 개발하자. 이를 위해 경제학을 가르치는 모든 사람이 모여 함께 고민하자. 그래서 떠났던 학생들을 경제로 다시 불러모으자.
♧ 이글은 2007년 5월 9일자 문화일보 [포럼] 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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