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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돈] 전자정부 신뢰 구축하기
 
2007-05-07 10:35:45

 

전자정부 신뢰 구축하기

 

 

 

황성돈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화싱크탱크 팀장,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아파트를 새로 사거나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으러 은행에 가면 고객용 컴퓨터를 볼 수 있다. 부동산등기부를 열람할 수도 있고 인터넷검색도 할 수 있다.
 
법원 등기소에 가서 열람하거나 등본을 떼어 보던 시절에 비하면 세상 정말 좋아졌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두꺼운 돋보기 안경 너머로 모니터를 보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전자정부가 모든 국민들의 삶 속에 자리잡아 가는 것 같아, 전자정부를 소개하고 정부를 열심히 도와 온 10여년이 스스로 대견하게 여겨진다.
 
전자정부는 여기서 더 진화하고 있다. 이제는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거나 대출을 받을 때 주민등록등본이나 초본 등을 떼어서 갖다 주는 일도 없어진단다. 사실, 나에 대한 정보를 정부가 갖고 있고, 이걸 내가 증명서로 떼어서 다시 은행에 갖다 주는 일이었으니 그간 내가 은행이나 정부의 심부름을 한 셈이다. 이제 이런 심부름을 안 해도 되는 것은 정부가 갖고 있는 나에 대한 행정정보를 은행과 공동으로 이용하면서 더 이상 나를 심부름꾼으로 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란다.
 
그간 행정기관 내부에서만 공유하던 행정정보를 공공기관과 금융기간까지 확대한다는 것이 참여정부의 야심찬 계획이고, 상당한 정도의 시스템도 갖추었다. 행정자치부는 이런 행정정보공동이용 정책과 사업의 근거를 명확히 정리하기 위하여 행정정보공동이용법의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행정정보공동이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나에 대한 정보를 내가 모르는 사이에 공무원도 아닌 공공기관의 직원이나 은행의 직원까지도 볼 수 있다고 생각을 하니, 편리함도 좋지만 뭔가 꺼림칙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심심찮게 터지는 개인정보침해사고를 떠올리면 걱정은 더욱더 커진다. 전자정부에 대한 우려의 대부분은 대량의 행정정보가 과연 안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1997년의 전자주민카드 반대운동, 2003년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른바 NEIS) 반대운동 등은 모두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불신이 전자정부를 못미더운 정책으로 이끈 사례이다.
 
행정자치부는 개인정보의 안전한 관리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보호되고 투명하게 관리되기 때문에 믿고 맡겨달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걸 정부의 말대로 믿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행정정보공동이용법안에 대한 국회 공청회에서도 이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가 우선적으로 신뢰할 만한 조치를 취해야한다. 그리고 법률의 제정에서도 순서가 바뀌었다. 우리 사회 전반에서 개인정보에 대한 사고는 반복적으로 야기되지만 사회적 대응체계는 늘 호들갑 수준에서 머물고 만다. 이제는 개인정보관리 행정의 시스템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믿을 만한 조직체계를 갖추고 여기에서 국민들의 우려를 씻을 만한 정책적, 제도적 대응책을 만들도록 하면 된다. 전자정부에 대한 객관적 검증도 여기서 맡으면 된다. 국민들은 누군가 내 편에 서서 내 이익을 지켜줄 시스템을 원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03년 NEIS 문제가 불거졌을 때 개인정보보호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상정을 하였지만 여태 낮잠만 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정보보호법을 체계화하는 노력은 뒤로 한 채 정부가 먼저 하고 싶은 것만 들고나오니 전자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전자정부를 이용해 본 국민은 그 편리함과 빠름에 깊이 빠져든다. 한 번 써 본 사람은 그 이전으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으로 전자정부의 신뢰가 확보되었다고 보면 큰 오산이다.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 전자정부의 미래는 불행하다. 언제든지 국민적 저항에 부닥칠 수 있다.
 
이제라도 전자정부의 신뢰를 먼저 구축하기 위하여 정부와 국회가 법률안의 심사에서 개인정보보호법을 우선하거나 적어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객관적이고 투명한 감시체제가 없는 전자정부는 늘 걱정거리다.
 
♤ 이 글은 2007년 5월 7일자 디지털타임즈 [DT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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