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03 09:46:56
한나라당의 ‘선청성 기억 상실증’
김형준(한선재단 정치개혁 팀장,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
4.25 재보선 참패의 책임과 관련해 거센 '퇴진 압력'에 직면했던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지난 30일 당 쇄신안을 발표하고 내홍 수습에 나섰다. 당의 부패를 획기적으로 척결하고 당이 중심이 되는 체제를 확립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특히, 강 대표는 문제가 되고 있는 '경선 룰'과 관련해 자신이 직접 나서 최고위원회에서 매듭짓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강대표는 “지금 사퇴하면 당이 깨질 수도 있다”는 논리로 ‘대표직 고수'의 정면 돌파 카드를 던졌지만 당내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일부 중진과 소장파는 “당 지도부가 당을 추스릴 동력을 이미 상실했다“고 대표의 퇴진을 압박했다. 당내에선 “설마”라며 입에 담기조차 싫어하던 ‘한나라당 분당’의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 데에는 한나라당에 내재된 ’선청성 기억 상실증‘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근본 원인은 ’분열, 부패, 오만‘이라는 3개의 실패 인자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97년 9월에 이인제가 민심과 당심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탈당했고, 2002년 2월에는 국민참여경선 방식에 이견을 보인 박근혜 부총재가 탈당했다. 당의 주류 세력이 비주류를 포용하지 못함으로써 탈당의 빌미를 제공했다.
더구나, 2002년 대선에서 보듯이 ’한나라당=차떼기 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정도로 부패했고, 구태의연한 조직에만 의존하면서 패배했다. 여기에 허황된 대세론에 도취되어 변화와 개혁을 거부한 채 오만한 자세로 일관한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한나라당 패배 과정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거기에는 ’한나라당 대선필패의 법칙‘이 작동하는 큰 흐름이 발견된다. 당 지도부가 초기에는 예외 없이 변화와 개혁을 부르짖다가, 정부 여당의 실정으로 반사이익이 커지면 개혁론이 대세론으로 변질되고, 곧 이어 실체 없는 허황된 대세론에 도취되어 수구 보수의 길을 걸음으로써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았다.
지금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04년 대통령 탄핵 후폭풍속에서 한나라당 지도부는 변화와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부패의 사슬을 끊어 버리겠다는 굳은 의지와 함께 천막당사로 이주하면서 기사회생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위한 ’반노 프리미엄‘으로 대세론에 불이 붙자 바로 공천 과정에서 돈이 오가고 후보를 매수하고 구태 정치와 여전히 반노 프리미엄의 반사이익에만 매몰되는 수구 보수의 길을 또 다시 걸었다.
이것이 한나라당이 50% 안밖의 지지를 받고 이명박-박근혜 두 유력 후보의 지지도를 합치면 60%를 넘는 상황에서도 재보선에서 참패한 근본 원인이다. 반성과 참회는 짧고 오만과 부패가 긴 정당이 패배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번 4.25 재보선은 한나라당의 집단 기억상실증에 대한 마지막 경고이다.
만약 한나라당이 집단 기억 상실증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한나라당 필패의 법칙은 또 다시 작동할 수 있다.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 입장을 보여 왔던 보수진영의 뉴라이트전국연합은 “한나라당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체질개선을 하지 않는다면 정권교체를 위해 독자적인 새 길을 모색하는 것을 포함한 모든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했다.
한나라당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마음속 깊이 새겨 볼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이 진정 정권교체를 원한다면 한국 사회의 심연에 흐르는 거대한 조류인 '메가트렌드'(Megatrends)를 제대로 읽어야 할 것이다. 당심의 우물속이 아니라 민심의 바다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야 한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이 ‘메가트렌드’라는 책을 발표한 이후 M은 가장 대중적으로 친숙한 미래학의 상징 기호가 되었다.
한나라당은 대선에서 세 번의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면 이번 재보선 참패를 계기로 집단 기억 상실증의 깊은 늪에서 깨어나야 한다. 더불어 “선진 한국을 위한 한나라당의 M은 무엇인가”를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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