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규(한반도선진화재단 기획위원 , 한국정보통신대 교수)
미국 버지니아 공대의 참극은 그 비극성과 함께 우리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져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이 사건을 한국이란 집단 속의 한 개인이 저지른 사건으로 본 반면, 미국인은 이를 사회의 다양한 개인 중의 한 명이 저지른 사건으로 본 것이다. 이 시각의 차이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모든 것을 집단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규율하고 있느냐를 반영한다.
우리는 유독 다양성, 즉 다름을 인정하는데 인색하다. 역사적으로도 서로 달라지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였다. 가정에는 가부장 질서가, 가문에는 항렬의 질서가, 마을에는 장유유서의 질서가, 나라에는 반상의 질서가 명확하였다. 그래서 획일성은 강하나 다양성은 만들어내지 못하였다. 산업화, 민주화로 급속한 사회적, 계층적 이동이 진행되면서 그 형식과 질서는 무너졌으나 그 의식은 아직 남아있다. 극심한 물적 경쟁 속에 놓이면서 사람들의 그 집단의식은 연고 소집단간 경쟁으로 전환되었다. 다양한 개인을 포용하는 공동체로서의 집단의식은 없고 정서적, 이기적 집단행태만이 남게 되었다. 다시 말해 집단주의가 좋은 공동체주의로 발전되지 못하고 지역, 학교, 가정과 같은 연고 소집단주의로 축소된 것이다.
이런 천박한 소집단 문화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지금 상황은 더욱 우리에게 이에 대한 경계심을 갖게 한다. 근래 진보적 정권의 등장으로 이념적 대립과 갈등도 증대되었다. 이런 갈등 증가가 가져오는 문제는 서로에 미움이 커지고 상대에 마음을 닫는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과거 독재 권력에 저항하였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나 피억압자는 억압자를 미워하며 닮아간다고 한다. 탄압이 심할수록, 저항의 역사가 길수록 그렇다. 우리의 일부 진보주의자들이 갖는 문제의 하나도 그들의 그 닫힌 마음이다.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고, 기득권을 응징하고, 상대를 닦달하여야 풀릴 마음의 응어리들이다. 지난 10년간 여권의 정치적 실패는 그 마음의 응어리를 풀지 못해 생긴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보수 세력이 갖는 마음의 응어리이다. 진보주의자들이 보여준 독선과 오만에 대한 분노로 보수주의자 또한 마음을 닫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진리는 닫힌 마음은 결국 실패한다는 것이다. 자비와 사랑은 그래서 인류에게 불멸의 진리로 남아 있는 것이다. 보수의 목표가 이 사회를 새로운 도약과 발전의 선순환 궤도로 돌리려 함에 있다면, 설혹 진보의 독선과 실정이 잘못됐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마음을 닫아서는 안된다. 진보의 전철을 다시 밟는다면 보수도 실패하기 마련이다.
마음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바른 마음이 있어야, 바른 견해가 나오고, 바른 대안이 나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힘은 다양성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고, 그 출발점은 열린 마음이다. 보수의 열린 마음이야말로 이 사회에서 대립과 갈등의 악순환 고리를 끊는 단초이다. 한국의 경쟁력은 이 마음에 달려 있다. 장수 기업조직의 성공요인을 연구한 Arie De Geus는 정체성과 함께 외부에 대해 열려있는 유연성을 들고 있다. 열린 마음이야말로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의 민주화 장정에 남겨진 가장 중요한 숙제이다. 버지니아 대학 교정에 세워진 범인의 추모석, 그리고 그 옆에 놓인 편지들이 보여주는 미국 사회의 지성과 성숙함을 이제는 우리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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