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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연금개혁법 소신 필요
 
2007-04-09 11:00:18
 

                 연금개혁법 이끌 소신파 의원 없나

이창용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화싱크탱크팀장,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관료와 정치인 중 누구를 더 믿을 수 있을까. 금주에는 이에 대해 확실한 답을 보여 준 두 소식이 있었다. 하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이고 다른 하나는 연금개혁법의 부결 소식이다. 두 문제 모두 승자와 패자를 동반하기에 이를 추진하려면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FTA 협상은 미래를 내다본 정부의 뚝심 덕에 좋은 결실을 본 반면, 연금개혁법은 여야의 담합으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한국 경제에 미칠 효과를 비교하면 연금개혁도 FTA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다. 국민연금은 보험료보다 급여 수준을 높게 책정한 선심성 구조에다 고령화 문제가 겹쳐 연금기금이 고갈될 위험에 처해 있다. 800억 원의 잠재부채가 매일 쌓여 2040년대가 되면 기금이 바닥난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더 내고 덜 받는 쪽으로 개혁이 필요한데 유권자가 좋아할 리 없으니 여야 모두 눈치만 본 지 오래다.

성장보다 복지를 중시하는 진보 정당만 개혁법에 반대했다면 실망이 덜했을 것이다. 참여정부가 추진한 사회복지 서비스 지출을 재정 건전성을 문제 삼아 비판해 온 보수 정당도 개혁법에 반대했으니 국회의원의 위선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


하루 800억씩 기금은 고갈되는데


복지 지출은 성격에 따라 사회보험과 사회복지 서비스 지출로 구분된다. 이 중 장애인 지원, 빈곤 노인층 지원과 같은 사회복지 서비스 지출은 사업 수가 많고 빠르게 증가하는 문제가 있으나 재정에 주는 부담은 크지 않은 편이다. 복지 지출의 80% 이상이 국민연금, 의료보험과 관련된 사회보험 지출이며 20%만이 사회복지 서비스 지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푼돈을 아끼자고 사회복지 서비스 지출에 인색하던 국회의원이 목돈이 사라질 위험을 무시하고 연금개혁법에 반대했으니 얼마나 큰 위선인가.

연금제도 개선을 5년마다 재검토하기로 했으니 나중에 해결하자는 주장도 너무 안이한 말이다. 국민연금제도는 재정 건전성 문제 외에도 적립금의 효율적 운용이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기금은 장기적으로 고갈될 위험에 처해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빠르게 늘고 있다. 연금 가입자가 본격적으로 노령화되기 전까지는 매년 20조 원의 보험료가 추가로 유입되기 때문이다. 현재 190조 원 수준인 적립기금은 2015년에는 국민소득 대비 40%인 57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큰 규모의 자금이 하나의 공적 기관에 집중되면 국민경제 전체의 자산배분 비율을 왜곡해 성장 동력을 훼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민 중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사람이 60%, 위험투자를 선호하는 사람이 40%라고 하자. 이들이 스스로 투자 대상을 결정한다면 국민경제 전체의 안전자산 대 위험자산 비율은 6 대 4가 된다. 이들의 저축을 연금기금으로 흡수한 뒤 다수결로 투자 대상을 결정하면 연금기금은 모두 안전자산에만 투자된다. 즉 국민연금의 투자가 안전자산에 집중되는 현상은 미시적으로 노후 소득을 보장받기 위한 합리적 선택이다.

그러나 거시적으로는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국민연금기금이 민간 저축을 흡수해 민간보다 위험 기피적인 투자만 고집한다면 중소기업과 신(新)성장산업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고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면 노인층을 보호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유권자 눈치 보며 반대하는 위선

이 문제를 해결하자면 개개인이 연금보험료 중 일부에 대해 투자 결정을 하고 실현된 수익률에 따라 급여를 받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현행 제도하에서 이런 자산운용 제도개선은 불가능하다. 어떠한 위험 자산에 투자할 때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장받는데 구태여 자산운용 수익률을 높이려 노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연금개혁법 통과는 재정 건전성 확보뿐만 아니라 기금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서도 선결돼야 할 과제다. 답답한 것은 FTA를 성사시킨 소신파 관료는 있지만 연금개혁법을 끌고 갈 소신파 국회의원은 찾기 어렵다는 현실이다.


♧ 이 글은 4월 6일자 동아일보 [동아광장]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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