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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열] 2·13 합의 후의 정치권
 
2007-04-03 10:51:10

                   

                      '2·13 합의' 정치권의 호들갑

 
 
 
유호열 (한반도선진화재단 남북문제팀장, 고려대 행정대학원장·북한학과 교수)
 
 

2007년 3월 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요동치고 있다. ‘2·13 합의’ 이후 북미 관계정상화를 위한 뉴욕실무회담이 개최돼 수교를 향한 주요 현안과 일정에 대한 탐색전을 가졌다. 6자회담 산하 나머지 실무그룹도 약속대로 구성돼 해당 분야별 각국의 입장을 개진했다. 북한의 대외금융을 옥죄던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도 동결됐던 2500만달러 전액이 전격적으로 해제됨으로써 타결됐다. 2·13 합의의 여파는 남북관계에도 밀어닥쳐 제20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8개월 만에 재개됐다.

6자회담 참가국 사이에선 북핵 해결 초기이행조치 이후 2단계 불능화조치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이루어지고 종전선언과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관한 다양한 구상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바야흐로 한반도 정세는 북에서 부는 철이른 봄바람으로 급속히 녹아내리고 있는 듯하다.


대선을 불과 9개월 앞둔 국내 정치권이 대선 방향을 가늠할 신북풍을 비켜갈 수는 없을 것이다. 햇볕정책을 추진했던 정부·여당과 이를 비판해온 한나라당으로서는 2·13 합의를 필두로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 등 각종 정세 변화가 연말 대선에서 어떤 작용을 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대책 마련에 애쓰고 있다. 북핵 해빙기를 환호하는 정부·여당은 햇볕정책의 성과를 주장하며 정국 판세를 평화 대 반평화, 통일 대 반통일 구도로 나눠 절대 열세인 현 상황을 단번에 대등한 양자대결 국면으로 바꾸어놓으려 하고 있다.


여권 대선 예비 후보자들뿐만 아니라 전·현직 대통령까지 나서서 남북 정상회담에 매달리고 북한에 대한 각종 지원과 교류협력사업을 최고조로 독려하고 있다. 여권 의원들이 평양과 개성, 금강산으로 몰려가는 것도 모자라 베이징 등 해외에서 북한 당국과 선을 대려는 움직임이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탈당 통합신당파, 민주당, 민노당 등이 소위 평화세력으로 연합해 북한과의 민족공조를 통해 한나라당 집권 저지에 총력을 경주한다면 머지않아 한나라당에 대한 여론 지지도는 약화하고 연말 대선에서 여야가 팽팽한 접전을 치러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의 현실 인식은 안이하고 대응 방식 역시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대북정책을 당 차원에서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발상도 문제이지만 재검토의 대상이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기정사실화하는 정책이나 북한에 대한 대규모 경제지원 등 단계를 뛰어넘어 결론부터 성급하게 공개하는 미숙함도 문제다. 대선을 앞두고 유력 후보들이 신북풍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당이 앞장서서 차단막을 세우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지만 정통보수정당으로서 핵심적인 대북정책의 진로를 2·13 합의 하나로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 있다는 인식과 또 그렇게 바꾸려는 태도는 결국 공당으로서 정책적 신뢰도를 훼손하는 것이며, 결국 핵심 지지자들의 이탈을 막지 못할 것이다. 대북정책과 같은 중요 정책은 정당의 정강 개편과 같이 중대한 상황 변화가 있을 경우에 한해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2·13 합의는 북핵 해결의 시작에 불과하다. 정치권은 이 같은 합의가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위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길 기대하면서 어렵고 힘든 미래의 상황에 신중하게 대비해야 한다. 2·13 합의 이후 급박하게 돌아가는 대내외 정세에 관해 국회에서 제대로 된 청문회 하나 개최하지 못하는 정당, 정치인들이 대선만을 염두에 둔 지극히 정파적이고 정략적으로 대북정책을 농단한다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구축하기는커녕 극심한 국론 분열과 극도의 정치 혐오증만 양산하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세계일보 3월 29일자 [통일논단]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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