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지식의 세기라 한다. 지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터넷에서 나오는 ‘정보’가 아니고, 사물의 본질을 논리적으로 추리하고, 이성적 감성적으로 분별하며, 도덕성으로 그 가치를 판단할 줄 아는 능력, 즉 지력(知力)을 말한다. 지력은 활자로 된 책에서 나오는데 이 나라 사람들은 책읽기를 싫어한다고 한다. 사실이 그렇다면, 나라의 장래는 암담하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왜 이렇게 책을 멀리 하는가. 몇 가지 원인을 들 수 있다. 첫째, 나라 전체가 정보매체에 너무 깊이 매몰된 것을 들 수 있다. 인터넷에서는 오직 정보만 나올 뿐, 좋은 인성도, 좋은 지혜도, 독창적인 지식도 나오지 않는다. 한국은 산업화에서는 선진국에 뒤졌지만, 정보화에서는 선진국을 이긴다는 목표를 가지고 정보화에 올인해 왔다. 그 발상부터 잘못이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젊은이들이 좋은 글과 사상, 그리고 인성을 접할 기회를 상실하여,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즉석에서의 쾌락만 추구하기 때문에 성질이 거칠어지고 남을 배려하는 생각도 없어진다. 따라서 쓸 수도 없게 된다.
인터넷은 물론 매우 필요하고, 정보화시대에 잘 활용하면, 아주 좋은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나는 나이를 먹었지만, 인터넷을 어느 정도 알고 잘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부터 어떤 좋은 글, 좋은 사상, 좋은 지혜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정보매체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동안, 나라는 부지불식간에 오늘날 보는 바와 같은 수준 낮은 정치, 저질 문화, 그리고 추락하는 경제를 맞게 됐다.
-한글전용·정보화 매몰 지나쳐-
둘째, 한국의 후진들이 가정, 학교, 그리고 사회에서 그릇된 교육을 받아 온 것을 들 수 있다. 교육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책을 잘 읽고, 글을 제대로 쓰고, 바른 생각을 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옳은 일을 실천하는 인재를 기르는 데 있다. 그러나 한국의 학부모들은 유치원에서부터 어린이에게 온갖 방종을 다 허용하면서, 대학입시 합격을 위해, 부모는 맹목적으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참으로 잘못된 교육이다. 이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책 읽을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된다. 좋은 소질을 타고난 아이들이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일생을 망친다.
셋째, 책은 쏟아져 나오지만 읽을 만한 책은 많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나는 30세가 된 해에 미국대학에 들어가서, 학부과정을 마친 바 있다. 거기서는 1학년 영어(그들의 국어)가 가장 어려운 과목이었는데, 그 목적은 우선 무엇보다도 읽고 쓰고, 말하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을 위주로 하고 엄청나게 많은 독서를 강요한다. 한국의 대학에서는 그런 국어과목이 없다. 한국에는 우선 좋은 책이 없고 좋은 선생도 적다. 좋은 책을 읽지 못하니, 대학에서 지성·감성·덕성 등의 계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좋은 인재가 나오기 어렵다.
이 나라에서 좋은 책이 나오지 못하는 결정적인 원인은 한글전용에 있다. 나라 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이 나라에서 한자를 무시하고 한글만을 쓰자니 나라 말이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 말은 인간의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도구이다. 인간은 말을 통하지 않고는 생각과 사상을 표현할 수 없다. 한글밖에 모르는 이 나라 후진들은 차원 높은 인문학 분야의 책을 읽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고, 쓸 수는 더더욱 없다. 선진국이란 말이 풍부한 나라를 말한다. 말이 부족한 나라에서 수준 높은 책이 나올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양서읽고 지헤·知力 높여야-
이 나라에 한글전용을 도입한 사람들의 애국 동기는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분들이 바라는 것과는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 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축에 근접하고 있는 시대에, 이 나라에서는 정치 문화, 경제 수준이 갈수록 저하하고 있다. 나아가 한글 자체가 망가지고 있다. 인터넷이나 거리의 간판을 보면 한글전용의 결과가 어떤 문화를 낳고 있는가를 금방 알 수 있다. 한자의 도움 없는 한글만으로는 좋은 사상을 전달하고 만들어내기 어렵기 때문에 한글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
좋은 책이 없는 나라에서 아무리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소용이 없다. 그것은 영양 없는 음식을 주면서 영양보충을 위해 먹으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 이 글은 2007년 3월 22일자 경향신문[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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