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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북한의 정상국가화 왜 필요한가
 
2007-03-15 11:55:57

                   북핵 해결돼도 개혁ㆍ개방의 과제 남아

 


이교관(한반도 문제 평론가․한반도선진화재단 사무부총장)

 

북한주민이 고통받는 정치ㆍ경제 체제 지속될 경우 국제사회 반발에 부딪힐 것

 

  군대 없는 국가는 있을 수 없다는 영국의 역사가 존 키건(Keegan)의 말에 오늘날 가장 적합한 나라 중 하나를 꼽는다면 단연 북한일 것이다. 아니, 지난 10년 간 모든 국가 운영에서 군(軍)을 우선 시하는 선군(先軍) 정치를 펴 오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은 차라리 군대가 곧 국가인 유일한 나라일지 모른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통해 수령결사옹위 체제를 고수해 온 것도 군부 총정치국 중심의 선군파(先軍派)가 국정을 주도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 북한이 2.13 합의에 서명하고 3월 들어 급속한 북미 관계 정상화 추진에 나서고 있다. 이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진심으로 선군정치와 핵무기를 포기하려는 것인지 여부에 온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월 13일 6자회담에서 향후 60일 이내에 모든 핵시설을 신고하기로 한 합의에 서명한 직후 나타나고 있는 북한의 평화 공세는 현란하다. 하이라이트는 지난 3월 6일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부상 간 1차 북미관계정상화회담일 것이다. 여기서 북한은 먼저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문제 해결 의향과 함께 조속한 수교 희망 의지를 밝혔다. 이에 따라 북한이 2.13 합의의 마감 시한인 4월 13일 이전까지 모든 핵시설을 신고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선군파가 핵무기 없는 김정일 체제를 수용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북한이 핵시설에 관해 미국이 만족할만한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4월은 북한에게 잔인한 계절을 넘어 죽음의 계절이 될 것이라는 게 하영선 교수(서울대․국제정치학)의 전망이다. 반대로 북한이 미국을 만족시켜주는 신고를 할 경우 4월부터 북한의 정상국가화가 북한에 관한 주요 의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북핵 문제가 풀린다면 한국과 국제사회로서는 북한의 정상국가화, 즉 북한의 개혁․개방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93년 1차 북핵 위기에 이어 2002년 2차 북핵 위기가 발발한 뒤 한국과 국제사회는 북핵 해결에만 집중해 왔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북핵 문제가 마치 북한 문제의 전부인 듯이 여기는 ‘신화(myth)’가 만연해 있다. 그러나 북핵 문제가 풀린다고 해서 북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북핵 문제는 북한이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이후 고수해 온 수령제 사회주의와 계획경제라는 비정상적인 정치․경제 체제로 인한 여러 문제 중 하나일 뿐이다.

   김정일 정권이 이런 비정상 체제를 고수해 온 탓에 북한 주민들이 겪는 최대 고통은 한국과 국제사회의 지원이 없으면 먹고 살기 힘든 식량난이다. 한국에서 쌀을 지원하면 북한이 이 쌀을 군대로 보내고 옥수수가루 등 군대 식량을 주민들에게 배급해 왔다는 것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북한 식량난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열심히 일한 사람이나 게을리 한 사람이나 수확물을 균등하게 나누는 협동농장이라는 비정상적인 농업 생산 방식이다. 농민들은 이미 1990년대 이후 협동농장에서 배당 받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농민들은 집 주변 땅에 일군 뙈기밭이나 산기슭에 나무를 베고 일군 밭에서 일해 자신들만의 농산물 재배에 정성을 쏟고 있다. 장마 때 산사태가 빈번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수백여 명의 주민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발했다. 북한의 비정상 체제로 인해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기도 하고 산사태로 죽기도 하는 비극이 반복되는 것이다.

   북한이 일삼아 온 마약 밀매, 외화 위조, 그리고 외산 담배 위조 및 밀매 등 불법 행위도 따지고 보면 계획 경제라는 비정상적인 경제 체제에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북한이 이들 불법 행위를 계속해 오고 있는 목적은 외화 벌이에 있다. 이는 곧 북한이 외화를 벌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획 경제라는 낡고 병든 체제를 고수하다 보니 북한은 정상적인 상품 수출에 의한 외화 벌이는 꿈에도 꿀 수 없게 돼 버렸다는 것이 전 북한 기업인 출신인 김태산 씨의 증언이다.

   북한 주민들을 더욱 질곡으로 내몰고 있는 비정상적인 체제는 수령제 사회주의라는 억압적이고 전제적인 정치 체제이다. 수령제 사회주의의 핵심 이론은, 김정일이라는 ‘수령’으로부터 사회정치적 생명을 부여 받지 않은 주민들은 사회주의 건설의 주역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다. 즉, 김정일로부터 정치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북한에서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요덕수용소 등 숱한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는 북한 주민들의 죄목이란 김정일을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신(神)으로서 받들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로 대표되는 한국의 햇볕정책 세력은 북한 주민들의 이 같은 고통을 외면해 왔다. 지난 9년 간 북한 주민들이 이 같은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유도하기보다는 김정일 정권과의 평화 공존을 추진한다는 미명 하에 대북 지원에만 집착해 왔다. 노 대통령은 심지어 대북 지원은 남는 장사라고까지 했다. 북한이 정상국가로 바뀌어야만 북한과의 진정한 평화가 가능하고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평화통일도 가능하다는 것을 햇볕정책 진영은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 것으로 검증될 경우 김정일 정권은 곧 바로 이들 비정상적인 체제로부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21세기문명표준들(global standards)로 이행하느냐 마느냐는 선택의 기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 정권이 단순히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북미 관계 정상화와 경제․에너지 지원만 이끌어내기만 하면 현 체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긴다면 그 것은 오산이다. 수령제 사회주의와 계획경제 체제를 빨리 개혁하지 않을 경우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언제 어떻게 김정일 정권을 뒤엎는 봉기(蜂起)로 이어질 지 알 수 없다.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할 경우 한국과 국제사회에 의한 압력도 심화할 것이다. 북한이 주민들을 정치적으로 억압하고 경제적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체제 개혁을 단행하지 않을 경우 대북 인권 개선 노력과 인도적 지원에 막대한 비용을 계속 지불해야 하는 한국과 국제사회로서는 궁극적으로 김정일 정권 교체까지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김정일 정권이 개혁․개방을 담당할 능력이 있느냐 여부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김정일이 지금 북한을 통제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일부 국내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해 7월 5일 미사일 발사에 이어 10월 9일 지하 핵실험을 연이어 강행한 데는 주민들의 체제 불만을 미국과의 긴장을 높여 진화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식량난에다 미국의 대북 금융 압박에 따른 경제난까지 심화하면서 체제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한 주민들로 하여금 미사일과 핵무기 보유라는 자긍심을 갖게 해주려 했다는 해석이다.

   주민들과 일부 엘리트층의 체제 불만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으나 노동당 중앙위 조직지도부 이용철 부부장과 군 총정치국 현철해․박재경 대장 등 선군파를 앞세운 김정일의 당․정․군 통제력은 별 이상 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김정일이 북한의 개혁․개방을 담당할 수 있는 통제력을 유지하고 있다면 한국과 국제사회가 김정일 정권에 제시할 수 있는 북한의 정상국가화 과정은 3 단계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별첨한 북한 정상국가화 3단계 일람표 참조).

   1단계의 경우 정치․군사 분야에서는 핵무기 폐기, 대남 적화 노선 폐지, 정치범 수용소 철폐 등이 김정일 정권이 취할 수 있는 조치들로 평가 받는다. 경제 분야는 기업 부문과 농업 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기업 부문의 경우 외국 투자기업의 북한 노동자 직접 관리 허용을, 농업 부문의 경우 각 가구 별로 일정 토지를 대여한 뒤 수확물 일부만 국가에 헌납하게 하는 호별청부제(戶別請負制) 를 채택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이 식량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덩샤오핑이 1978년 채택한 호별청부제 덕분이다.

   2단계의 경우 정치․군사 분야에서는 세습에 의한 권력 승계가 아니라 노동당 내 민주적인 방식에 의한 권력 승계를 추진함으로써 중국 수준의 정치 민주화를 달성하는 조치가 요청된다고 볼 수 있다. 경제 분야에서는 중국식 특구 개방을 본격화하고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필요한 개혁 조치들이 필요하다.

   이들 두 단계를 거치고 나면 비로소 북한은 정치적으로는 다원주의로, 경제적으로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이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아직도 공산당 1당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등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 점에서 북한도 노동당 내 민주적 권력 승계를 실현하는 것만으로는 정치적 다원주의와 자유시장경제가 이루어지는 3단계의 정상국가화 과정을 달성하기까지는 많은 고통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어떻게 김정일 정권이 이들 3단계에 걸친 21세기적인 정상국가화 과정을 밟도록 만드느냐는 것이다(부속 기사 참조). 그러나 그 전에 한국과 국제사회가 북한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북한의 정상국가화라는 의제에 공감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 이 글은 2007년 3월 19일 주간조선 특집 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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