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년 동안 우리 경제에는 기업의 투자 회피, 인력의 노동 회피, 경쟁 없는 교육, 고물가·고임금 구조 등 온갖 비효율 요인이 누적돼 왔다. 이것이 지금 삼성과 같은 주력 기업의 수익률 악화, 새 성장산업의 부재, 기업의 해외 탈출, 소비의 해외 탈출 같은 병세(病勢)로 하나하나 드러나는 과정이다. 경제 전반에 얽히고설킨 이들 요인의 인과관계를 간추리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그 근원을 따져보면 역시 정부의 방종과 시장의 무시에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현 정권은 아주 다르게 해석한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가 매긴 자신들의 성적표에 따르면 가장 잘한 분야가 경제행정으로 92.3점이나 받았다.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체질은 탄탄하고 “시장이 못하는 일을 정부가 대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낙관주의 만능정부 철학이 반영된 일례가 일자리 창출 정책이다. 정부는 올해에도 2조2700억원을 풀어 20만개의 사회 서비스 일자리를 지원할 예정이다. 그러나 정부는 고용하는 데가 아닐 뿐더러 지나친 고용 개입은 잘 활동하던 고용의 수요자나 공급자를 왜곡시켜 시장을 망치기 일쑤다. 예컨대 정부가 월수 150만원의 일자리를 만들면 근로자들은 140만원 받던 서비스업체를 기피할 것이다. 민간 업체들은 정부와 임금 경쟁을 해야 하고 그 일부는 도태하고 그만큼 일자리가 시장에서 사라진다. 결국 정부의 20만개 일자리는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다른 사업체에서 뺏은 것이 되기 쉽다.
더욱이 이런 일자리는 정부가 지원을 중단하는 즉시 기업주도 고용을 중단한다. 따라서 내년부터는 기왕에 만든 일자리 유지를 위해 해마다 2조여원을 써야 한다. 그러나 정권은 일자리도 만들고 국민의 ‘사회적 서비스’도 제공한다는 명성을 얻는다. 그러므로 만약 새 정부가 들어와 이 지원을 중단하면 이는 일자리도 없애고 국민의 후생도 챙기지 않는 인정 없는 정권이 된다. 이렇게 무책임한 정부가 내지르고 간 정책은 차기 정부와 국민 대대로 치울 수도, 남길 수도 없는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최근 필자는 가족과 함께 1인당 90만원에 4박5일의 패키지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어떻게 맞췄는지 일급 호텔에 먹는 것과 서비스 모두 아주 만족스러웠다. 온천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너무 친절하고 직업정신도 투철하기에 월급을 물어보니 하루 4시간 근무에 8만엔, 우리 돈으로 64만원이란다. 한국인들이 왜 1인당 국민소득이 2배가 넘는 일본이 더 싸다고 골프나 주말여행을 물밀듯 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큰일 한다는 우리 정부는 그동안 계속 돈을 뿌려대서 주거비와 임금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한껏 올려 놓았다. 국수(國粹)적인 농업 보호 덕분에 쇠고기 등 식품 값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되고, 다른 나라처럼 임시직을 쓰기 어려운 사정 때문인지 호텔비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 2월 유엔이 책정한 서울의 하루출장수당(DSAR)은 368달러로 뉴욕(347달러), 도쿄(273달러)보다 높다. 2001년에는 도쿄(301달러)보다 서울(244달러)이 훨씬 낮았다.
따라서 일본은 싼 가격으로 시장에서 서비스 수요와 일자리를 창출하고, 우리는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고 소비는 일본에 가서 한다. 국민이 이런 상황을 만드는 정부를 허용하는 한 앞으로 폭삭 주저앉는 한국경제의 모습을 보는 데 4∼6년을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 이 글은 3월 13일 문화일보 '오피니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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