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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영]누가 통일세력인가?
 
2007-03-07 10:41:47

 

  •    김일영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 외교안보통일위원)
     
     
     
     
    통일에 관해 우리 사회에는 큰 오해가 있다. 진보는 통일세력, 보수는 분단세력이라는 잘못된 등식이 그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진보 진영은 더 이상 통일세력이 아니다. 그들은 말로는 통일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김정일 정권과의 공존을 지상 목표로 하는 세력으로 전락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승만 중심의 건국세력과 박정희 중심의 근대화세력은 모두 2丙?통일론을 표방했다. 이승만은 ‘선(先) 건국, 후(後) 통일’을, 박정희는 ‘선 건설, 후 통일’을 주장했다. 이들은 목표로서의 통일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먼 훗날의 목표로 설정했다. 남한이 북한에 경제와 군사 면에서 뒤진 상태에서는 통일보다는 국가 건설이나 경제 발전이 먼저라는 게 이들 주장의 요체였다.

    반면 민주화세력은 통일을 최우선 과제로 전제했다. 통일 없이는 경제 발전도 민주화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통일우선론자들은 건국 및 근대화세력의 2단계 통일론을 통일회피론이자 반(反)통일론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통일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입장이 뒤바뀌고 말았다. 냉전이 자본주의 진영의 승리로 끝났고, 정치·경제 발전 모두에서 남북한 사이의 우열관계가 역전되었다는 사실이 배경요인으로 작용했다. 과거 2단계 통일론을 주장하던 보수세력은 통일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봉쇄를 강화해 북한을 더욱 고립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붕괴를 통한 통일을 이루자는 주장도 등장했다. 이러한 붕괴·흡수론은 1990년대 중반 북한이 심각한 경제 위기에 봉착했을 때 힘을 얻었고, 북한이 핵 도발을 지속함으로써 아직도 그 추진력을 잃지 않고 있다.

    하지만 보다 합리적인 보수세력은 급속한 통일 추진이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해 점진적인 통일 방안을 선호하고 있다. 그들은 북한 붕괴까지 고려하고 있지는 않지만 김정일 정권의 성격을 ‘정상화’시키지 않고는 북한에 어떠한 의미 있는 변화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김정일 정권과의 무조건적 화해·협력보다는 그것의 취약점인 민주주의와 인권문제 등을 꾸준히 제기해 정권의 성격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남북한 사이의 우열이 뒤바뀌자 통일우선주의를 주장하던 진보세력은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남한이 압도적 우위에 선 상태에서 통일 우선을 계속 주장하는 것은 자칫하면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론에 동조하는 것이 되고, 그렇다고 자신들이 계속 주장해오던 통일의 깃발을 하루아침에 내릴 수도 없었다. 이에 그들은 구호로서의 통일은 계속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통일은 나중 문제이고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을 통한 장기 공존이 우선이라는 ‘선 공존, 후 통일’의 2단계 통일론으로 돌아섰다. 이러한 변신의 완성이 ‘햇볕정책’이다.

    진보세력은 이러한 변신을 감추고 합리화하기 위해 자신들의 노선을 ‘민족공조론’이나 ‘평화론’으로 포장하고 반대(보수) 논리를 ‘친미사대론’이나 ‘전쟁론’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진보는 두 가지 점에서 좀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우선 그들이 내세우는 ‘선 공존, 후 통일’론은 내용은 다르지만 논리구조 면에서는 건국세력의 ‘선 건국, 후 통일’이나 근대화세력의 ‘선 건설, 후 통일’론과 같은 2단계 통일론이라는 점이다. 세 주장은 통일에 앞선 선결(先決) 과제를 설정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다만 선결조건의 내용이 건국, 건설, 공존으로 서로 다를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진보는 자신들이 더 이상 통일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사실, 더 솔직히 말하면 공존을 위한 공존, 공존 자체가 목적인 공존이 자신들의 궁극 목표임을 고백해야 한다.

    최근 정치권에서 보수, 진보, 중도의 의미를 둘러싸고 논의가 분분하다. 특정 정치인의 이념적 성향을 따지는 일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겠지만 그 중요한 척도의 하나가 대북정책이나 통일정책인 것은 분명하다. 정치인이 표를 얻으려 진보로 다가서는 거야 말릴 수 없지만 그것이 통일을 위하는 길이란 착각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 이글은 2007년 2월 9일자 조선일보 [시론]으로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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