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한국민족주의 그리고 신(新)신간회
金 鎭 炫
(民世 安在鴻先生 記念事業會 會長,
前 科學技術部 長官, 서울市立大 總長)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신간회 창립 80주년 기념식을 갖는 감회와 뜻은 남다른 것입니다. 1927년 오늘 신간회를 창립하신 선구자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숨결을 다시 고르고 그 어른들의 고통스러운 일생과 마지막 순간들을 회상하면 오늘 우리들이 있게 한 역사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값진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자리 우리 모두가 개척해 가야할 새 역사의 길은 21세기 新幹會의 길이어야 함을 다지게 됩니다.
이상재 선생님, 안재홍 선생님, 조만식 선생님, 한용운 선생님, 신채호 선생님, 홍명희 선생님, 신석우 선생님, 김병로 선생님, 허 헌 선생님, 이승복 선생님, 백관수 선생님, 조병옥 선생님 ... 그 한분 한분들은 조국의 운명이 그러하듯 개인으로서는 고통과 신산(辛酸)의 불행한 일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선구자들이 모여 만드신 신간회는 민족정신 함양과 비타협 항일운동, 기회주의 배격의 기치로 가혹한 일제식민통치하의 이 땅에 가장 큰 횃불이 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일어난 최대의 항일민족운동단체였습니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단체로서의 생명은 불과 4년간의 짧은 것이었으나 신간회의 좌우합작 ․근대주의․ 반(反)자치․ 철저항일의 유산은 오늘까지 우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신간회는 전국 120-150개 지회와 약 4만 명의 회원으로 뭉친 명실 공히 일제하 최대인원이 참여한 독립운동의 구심체였으며 국내외에 걸친 수많은 항일운동단체 중 최대의 준 정부자치 NGO였습니다.
한반도에 사는 한민족의 인구가 1500여만에 불과했던 당시 4만 회원이라는 숫자는 그것도 당시로서는 가장 개명한 정치계, 문화계, 종교계, 언론계, 교육계 인사들로 구성된 것이니 사실상 친일파와 자치파를 제외한 조선인 지도자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큰 독립운동의 횃불이 가능했습니까. 그것은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결집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용어로는 좌우가 합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간회의 우익인 민족주의 세력과 신간회의 좌익인 사회주의 세력은 오늘의 좌우익과는 다른 면이 있습니다.
신간회에 참여한 좌익과 우익은 항일민족독립이라는 대의에 일치했을 뿐 아니라 운동방식에도 비타협, 비폭력, 기회주의 배격이라는 높은 도덕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인간과 민족에 대한 높은 사랑과 경건함이 서려있었습니다. 문명의 발전과 역사의 진운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신간회의 우익은 오늘의 사이비 우익과 같이 부패하지 않았고 현실에 안주 않았고 기회주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신간회의 좌익은 오늘의 사이비 좌익과 같이 외부지령에 맹목하지 않았고 비인간, 반 생명, 반 문명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 땅에는 사이비 좌익, 사이비 우익들이 판치고 있습니다. 한국역사에서는 물론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김일성 김정일 부자 독재를 찬양하는 친북 가짜 민족주의가 어찌 사회주의 좌익이라 할 수 있습니까. 대통령이 청와대에 앉아 4천억씩 받아 챙기는 부패를 용서하는 보수가 어찌 나라를 지키는 보수라 할 수 있습니까. 불법과 폭력을 조장하는 진보가 어찌 하늘을 우러러 민족과 민중을 말할 수 있습니까. 뻔뻔스런 친일거물자손들의 염치없는 땅 찾기가 이제 노무현 정부에 와서야 겨우 제동이 걸리니 지난날의 이른바 우익보수가 진정 이 나라의 주류입니까.
대한민국은 지금 위대한 기회와 절명한 위기의 갈림길에 있습니다. 세기적 희망과 세기적 절망의 교차점에 있습니다. 1945년 이후 한국인의 잠재력이 폭발하여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오천년 한국통사(通史)에서 있어 본 적이 없는 ‘한국문명’의 시대를 열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가 왔습니다. 그러나 안으로는 국가공동화, 사회해체, 대한민국 부정(否定)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 2의 한말(韓末)과 같은 또는 남북분단으로 인하여 19세기 말보다 더 힘든 주변 국제관계 관리에 실패하는 경우 북한만이 아니라 남한까지 붕괴할 가능성마저 엿보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지난 2세대 60년 동안 근대화, 해양화 발전에서 ‘근대화의 세계화’, ‘해양화의 세계화’, ‘자유와 민주주의 세계화’, ‘교육과 과학기술의 세계화’, ‘시장과 서비스와 거주이전의 세계화’ 라는 인류문명의 주류로 올라섰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해방 후 독립한 140개 가까운 비(非)서양국가들 중 정치민주화, 시민자유, 근대경제성장, 교육과 과학기술선진화, 개방과 세계진출에 있어 완벽한 성공을 거둔 ‘유일한’나라입니다.
이 성공의 과정에서 많은 고통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산업근대화과정에서 농민들의 희생, 경부고속도로건설에만도 100여명의 생명이 그리고 전태일로 상징되는 노동자들의 눈물어린 희생이 있었습니다. 재벌로 상징되는 한강의 기적영웅들은 이런 고통의 퇴적층위에 서있는 것입니다. 정치민주화와 시민자유가 선진국 상위수준에 이르는데 민주운동 인사들의 열의와 희생이 컸습니다. 4.19, 6.29와 광주항쟁이 이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근대화혁명의 성취와 실적은 이벤트와 상징들로만 규명되고 정의될 수도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가최고지도자였던 이승만, 박정희 등의 실용적 민족주의, 열린 민족주의 즉 민족자주와 가난극복 국리민복이라는 시대적 명제를 주어진 국제여건, 주어진 인력과 자원의 재약조건 속에서 최선으로 활용하여 근대화혁명의 하부구조와 상부구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구축하였습니다. 대한민국 각계 지도자들의 교육 과학기술의 창조적 개혁, 종교와 문화의 다양성지향의 노력과 일반국민들의 양식 있는 인내와 노력이 합쳐져 단군 이래 가장 찬란한 대한민국 근대화혁명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제도적 개혁과 가치관의 변화에는 외국의 영향도 컸습니다.
한국역사전체를 통틀어 이만한 Global Elite를 배출한 적이 없습니다. 백남준, 반기문, 조수미, 김동훈, 박영석, 박청수, 비... 21세기 한국의 Global Elite들은 한때 잠깐 비추고 소멸될 그런 존재들이 아닙니다. 세계 유일하게 4대강국에 존재하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한국교포와 더불어 ‘지구촌의 한민족 네트워크’로 영원할 것입니다. 한민족사상, 처음으로 한민족의 세계화, 지구촌화라는 기록을 축적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체제와 능력의 산물입니다. 대한민국의 체제와 능력이 있음으로서 단군이래 최대로 많은 4900만 명의 한인(韓人)들이 역사상 최초로 권력의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절대빈곤으로부터 해방된 복지, 종교이념 가치의 폐쇄적 유일체제로부터의 개방, 지구촌 전체를 무대로 한 Global Elite의 진취를 향유하고 있습니다. 이 자유, 이 복지, 이 개방, 이 진취를 7500만 한민족전체,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와 일본에 흩어져있는 한인(韓人)한민족까지 향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대한민국의 중심, 거점, 허브(Hub)를 더욱 튼튼히 하는 것 이것이 21세기 한국민족주의 과제입니다.
이 대한민국 근대화혁명의 성공으로 인하여 한민족통일의 구심점과 거점은 필경 대한민국일 수밖에 없습니다. 민족 민주 자유 전통 복지 발전 행복 그 어느 이름과 기준으로도, 인간 자연 문명 역사 그 어느 이름과 기준으로도, 학문 예술 문화 스포츠 외교 그 어느 이름과 기준으로도 대한민국이 7500만 한민족통일과 평화의 구심점이고 거점입니다. 해외교포 600만의 구심점 귀향점 그리고 북한동포 2200만의 전통과 미래의 구심점, 귀향점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근대화혁명에 맞닿아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인구가 많아서가 아니라 자연스러움 인간다움 아름다움 그리고 행복이라는 인간의 본원적, 보편적 바람에 가장 가까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한민족의 중심과 거점이 대한민국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진실, 통계적 진실, 국제비교의 진실이 모두 그러합니다.
부패와 비리와 기회주의의 가짜보수가 날뛰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거부하는 것이 진보인 것처럼, 백성을 굶어 죽이는 북한의 반인권을 눈감아주는 것이 민족주의인 것처럼 착각하는 가짜진보의 역풍이 일고 있습니다. 반(反)진실, 반(反)이성, 반(反)인간, 반(反)생명, 반(反)문명, 반(反)자연의 언어와 권력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 역풍을 막지 못하면 북한도 대한민국도 같이 붕괴합니다.
이 갈등과 혼돈과 위기에서 극진하고 경건한 자정(自淨)의 눈물과 땀을 통하여 새로운 주류가 나와야 합니다. 새 중심를 세워야 합니다. 80년 전 신간회의 주류를 오늘에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21세기 신간회’가 나와야 합니다. 대한민국근대화혁명성공에도 불구하고 21세기 한민족 앞에 닥친 도전은 또한 20세기 못지않게 많습니다. 북한동포의 인간미니멈(minimum)충족, 국내 60만 외국인노동자의 인간적 대우, 한반도 평화와 통일, 북한핵과 세계적 핵위협, 중국과 일본의 19세기적 역사왜곡의 지속, 중국과 미국을 넘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창조, 지구온난화, 에너지와 물 부족, 소비가 미덕인 시대의 종언 등이 그런것입니다. 이런 인간적 시민적 민족적 인류지구촌적 과제를 풀어가고 접근하는데 있어 개성과 자유를 우선하는 입장도 있고 평등과 공동체를 우선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그런 좌우의 입장은 대한민국 땅에서 얼마든지 논의하고 논쟁하고 싸우고 타협할 수 있습니다.그런 이성적 논리적 갈등을 거처야만 대한민국의 정통성 정체성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모범으로 승화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한국의 민족주의는 안으로 대한민국 근대화혁명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더욱 확장 발전시켜 대한민국을 매력 있고 국격(國格)높은 나라로 만드는 것입니다. 밖으로 중국과 일본조차 넘볼 수 없는 결정적 선진첨단의 힘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과 세계를 넘는 새로운 지구촌질서와 체제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기초, 거점, 중심이 있음으로서만 가능합니다. 대한민국에서의 좌 우 논쟁 보수 진보 논쟁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의 발전이라는 공통분모, 공동표준위에서 뛰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은 통일의 기반, 한인민족주의 거점을 허무는 것이고 반(反)통일의 논리입니다. 신간회의 좌와 우, 우의 민족주의 진영과 좌의 사회주의 진영 모두 항일민족독립의 대의에 일치했다면 21세기 한국의 진짜 우와 좌는 대한민국정통성 정체성 확장발전위에서의 한민족 통일이라는 대의여야 합니다.
80년 전 비타협 기회주의배격 비폭력의 도덕성을 견지했듯 오늘의 21세기 신간회는 그 어떤 권력, 그 어떤 명분으로도 부패와 폭력 안일과 독선에 대한 비타협과 기회주의를 배격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보수이되 개혁적이고 진보이되 현실적이고 보수이되 부패하지 않고 진보이되 폭력을 거부하고 우익이되 이기주의를 거부하고 좌익이되 아집을 거부하고 우익이되 경제 제1주의를 탐익하지 않고 좌익이되 이념에 안주하지 않고 기성세대이되 이상을 놓치지 않고 젊은 세대이되 독선에 매몰되지 않고 좌.우.보수.진보 모두 사회공동선 국가공익 보편윤리에 충실하고 이를 위하여 기꺼이 자기를 희생하는 그런 엘리트군, 그런 주류입니다. 지금 이 자리 우리가 할 일은 이들을 발견하고 키우고 조직화하는 것입니다.
광복 60주년을 지내고 경제 제1주의와 민중 민족 제1주의라는 극단의 독성을 이겨낸 진짜 우익과 진짜 좌익, 진짜 보수와 진짜 진보가 나올 때가 되었습니다. 진짜들은 합작할 수 있습니다. 국익, 공익, 인류의 공동선에서 합작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열린 민족주의, 21세기 지구촌지향 한국민족주의, 인간 시민 인류사회를 아우르는 지성과 지사가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4278(서기 1945)년 동안 대륙 국가였고 해방 후 60여 년 동안의 대한민국은 해양화만 줄달음쳐 왔습니다. 우리의 지리는 반도이나 우리는 한번도 대륙과 해양을 아우르는 반도적 국가의 모습을 가져 본적이 없습니다. 21세기 지구촌은 ‘근대화의 세계화’, ‘해양화의 세계화’가 난숙하게 됨으로서 그 반동은 극열하고 궁극에서는 ‘지구적 반도성’을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가장 철저한 대륙화와 가장 철저한 해양화를 경험한 한국이 21세기 한반도의 ‘반도성’을 완성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 한국민족주의의 지구적 완성일 것입니다.
그것이 21세기 신간회입니다. 21세기 신(新)신간회의 탄생을 80년 전 신간회 선구자들께 고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정성을 모으고 옷깃을 여밉시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2007년 2월 15일 "80주년 신간회 기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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