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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왜곡된 마셜플랜 교훈
 
2007-02-20 17:40:20

反공산화 마셜플랜 vs ‘올인’ 北지원 

 

 
 
 
 
 
 
 
 
 
 
 
 
 
 
 
 
(한반도선진화재단 통일정책팀장,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1947년 추진된 마셜플랜(Marshall Plan)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경제를 일으키고 나아가 소련에 의한 공산주의 확대를 저지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이 계획에 의해 유럽 16개국은 공동 자립 기반을 구축하는 유럽경제협력기구(OEEC)를 구성했다. 유럽의 경제 부흥은, 소련의 전폭 지원을 받았으나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공산당 일당 독재의 모순으로 뒤떨어진 동유럽국들과 대조를 이뤘다. 마셜플랜의 교훈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우월성이다. 그런데 한국정치에서는 그 진의가 왜곡, 회자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탈리아 방문중 “우리가 (북한이) 달라는 대로 다 주고 문제를 해결해도 남는 장사다. 북한 경제를 살려 가면 미국의 마셜플랜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특유의 거침없는 파격 발언을 했다. 대규모 대북 지원을 예고하는 메시지로 보인다. 이미 정부는 대북 지원의 로드맵을 짜느라 실무자들이 책상 위에서 다양한 그림을 그린 바 있다.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이 지난해 9월 공개한 ‘포괄적 구체적 경협 계획안’에 따르면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경우 정부는 39조∼74조원 규모의 대북 지원을 제공한다는 마스터플랜을 작성했다.


마셜플랜과 노 대통령이 언급하는 대북 신(新)마셜플랜은 기본이념과 목적이 천양지차다. 마셜플랜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기본원칙으로 했다. 이 정책은 히틀러라는 유럽의 독재자가 퇴진하고 피폐화된 유럽에서 각국의 경제 발전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신마셜플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선군정치에 기초한 북한이 수혜 대상이다. 마셜플랜은 히틀러 못지않게 서구의 위협이었던 스탈린에 대항하기 위한 국제정치 전략이었다. 정부가 공산주의 체제 지원의 당위성을 언급하면서, 이 계획을 발표한 조지 마셜 당시 미 국무장관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무지다.


한편 정부의 섣부른 대규모 지원 구상 발표는 오히려 북한으로 하여금 비핵화 이행을 주저하게 할 것이다. 북한은 2·13 합의 이후 조선중앙통신에서 선군정치 덕택에 미국이 양자대화를 비롯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수용해주었다는 비법을 선전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과잉 발언은 단계별 ‘행동 대 행동’이라는 북핵 합의의 기본원칙을 무너뜨려 역설적으로 북한이 핵 폐기 일정을 지연시키게 할 것이다.


국내 정치가 고립무원인 상황에서 오랜 만에 북핵 합의가 나온 데 대해 청와대가 흥분한 측면이 있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6자회담의 국제 공조 수준을 남북 당국간 회담 속도가 추월해서는 안 된다. 특히 이번 합의는 북한의 과거, 현재 및 미래의 핵 문제 가운데서 현재의 핵만을 60일간 동결·폐쇄하는 데 주력했다. 기존의 핵무기와 고농축 우라늄(HEU) 무기 등은 미제 사항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3월 베를린에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지원을 발표하더니 그해 6월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시간이 별로 없는 노 대통령 역시 전임 대통령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로드맵을 임기 내에 실천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것이다. 인기가 바닥을 치는 노 정부로서는 남북관계 올인으로 그나마 치적을 쌓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대북정책 추진은 국민 여론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성급한 대북 지원 구상은 국제사회의 균등 재정 부담 원칙을 스스로 깨고 한국의 ‘독박’을 자초할 것이다.


또한 북한으로서는 채찍은 없고 당근만 있는 정부에 구태여 관심을 보일 리 만무하다. 북측은 조바심에 찬 남측의 정상회담 요청에 대해 침묵만이 최고의 대남 전술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있다. 향후 북한의 비핵화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여정에 들어서는 가운데 정부의 초단기적인 포괄적 대북 지원이 구체화하면서 남남갈등만 심해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북한의 대남전략은 역시 우리의 머리 위에 있다.

 
 

이 글은 2007년 2월 20일자 문화일보에 실린 <포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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