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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봉]행정수도공약 필요한때
 
2007-02-20 15:23:43
 

             대선주자 행정수도 의견 밝혀야

 

 
김영봉(한반도선진화재단 지도위원,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후한(後漢) 말 유비는 익주(益州)를 차지하자 군사(軍師) 제갈량으로 하여금 익주를 새로 다스릴 법령,곧 '촉과(蜀科)'를 제정하게 했다. 이에 익주의 구신(舊臣)이었던 법정은 한고조 유방이 관중을 점령한 뒤 약법삼장(約法三章)을 발표해 백성들에게 관용을 베푼 일을 상기시키며,"지금 새로 나라를 차지했으니 은혜를 베풀 생각을 하라,형법을 느슨하게 하여 백성을 위로해 주었으면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공명은 단호히 말한다.


"그대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지난날 진(秦)나라는 법을 가혹하게 써서 백성들이 모두 원망하고 있었기에 고조가 그 법을 줄인 것이다. 그러나 익주는 군주 유장이 암약(暗弱)해서 덕치도 못하고 형벌도 위엄이 없는지라 나라가 어지러워졌고 그 때문에 망한 것이다. 나는 이제 법령으로 위엄을 세워 백성으로 하여금 그것을 지키는 게 오히려 은덕이 됨을 알게 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 4년간 우리나라는 말할 수 없이 진창길에 들어섰다. 오늘날 여당이 조각나고 그 대선(大選) 주자들의 지지율이 2∼3%에 그치는 것은 국민이 이들에게 얼마나 실망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금년에 민심의 방향처럼 정권이 바뀐다면 이 정권 아래서 저질러진 난장(亂場)부터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당연한 순서다.


 

그런데 지금 한나라당의 유력 주자들은 새로운 국가사업이나 복지시혜,성장목표 같은 "은혜 베푸는 일"만 공언하고 다닌다. 그러나 새 사업과 약속은 후에 따져볼 일이고,성장률은 그들이 나라를 잘 이끌면 저절로 나올 결과물이다. 이보다는 현재 어질러진 쓰레기(mess)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공약이 필요하다. 이것이 무엇보다 국민들이 알고 싶은 일일 것이며,국민의 이해(利害)와 직결된다.


 

현 정권 아래 쌓인 쓰레기들은 무수히 많다. 불법에 대한 온정주의,반(反)시장 반미 반기업 정서의 확산,편가르기,무제한의 국가사업 확대,국토 개발,복지 확대,정부 비대화,기업규제,평등화 일변도 교육,무분별한 부동산세제,북(北)정권 지켜주기 지원 등,이들은 한결같이 국법 질서를 어지럽히고, 국민경제의 성장활력을 죽이고, 국민생활을 불안하게 하고, 미래세대의 부담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 정권이 바뀐다면 당연히 재검토될 사안이므로 대통령이 되려는 이들은 이것 하나하나에 대해 언젠가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러나 기다릴 수 없는 것이 행정수도 이전(移轉)에 관한 공약이다. 이것은 이미 추진 중인 사업이므로 하루가 더 진척될수록 돌이키기 어려워진다. 만약 처음 잘못 낀 단추라면 계속 끼울수록 무리를 쌓아 점점 회복비용을 증대시키고 관계된 국민들의 고통을 증대시킬 것이다. 각 후보자들은 이 행정수도 이전사업을 끝까지 완결할 것인지,아니면 앞으로 궤도수정을 해서 다른 용도로 살릴 것인지 빨리 말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 각자나 공직자가 합리적 예측을 통해 비용을 최소화하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수도 이전은 원래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판정이 난 사업이다. 당초 2130만평으로 계획했던 이 수도건설을 정권은 오히려 2210만평으로 늘려 '행정복합도시'로 둔갑시켜 건설하는 것이니,국민부담의 측면에서는 헌법판정을 위작(僞作)한 바나 다름없다. 또한 행정수도 이전,또는 '수도분할'이 가져올 국가적 낭비와 행정의 비효율은 이미 수없이 지적된 바 있다. 결국 이 도시에는 과천공무원의 81.5%가 서울의 집은 안 팔고 자기만 달랑 가겠다고 한다. 이렇게 행복도시는 인구분산과 국토균형개발의 원래 목적을 살리기는커녕 이제는 "만들어 놨으니까 살리기 위해" 서울 공무원을 출퇴근시킬 기차나 만드는 본말전도(本末顚倒)의 기막힌 사업이 돼가고 있다.


이 사업은 원래 충청도 표 때문에 출발한 정치행사였던 만큼 표만 의식하는 대선주자는 언급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그만큼 유권자들에게는 누가 정말 소신을 가진 지도자이고 누가 기회주의자인지를 판별할 절호의 기회가 된다.

 
 
 이 글은 2007년 2월 19일자 한국경제신문 [다산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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