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전자정부의 교훈
황성돈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화싱크탱크 팀장,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수 년 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 갔었을 때 경험한 놀라운 일이 하나 있다. 스타츠콘토렛(Statskontoret)이라고 하는 스웨덴 정부 혁신을 총괄하는 기관의 초청으로 전자정부에 관한 국제 비교 연구를 위해 간 것이었다. 이 기관에서 전자정부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의 안내로 스톡홀름 이 곳 저 곳에 위치한 여러 정부기관을 방문하던 도중 차안에서 그 직원에게 스웨덴의 개인정보보호 정책에 관해서 물었다. 그랬더니 그 직원은 대답 대신 나에게 자기 차 옆을 지나가는 아무 자동차의 번호판에 적힌 번호를 불러보라고 했다. 나는 의아해 하며 마침 옆을 지나가던 자동차 하나를 지목하여 그 차 번호판의 번호를 읽어 주었다. 그는 어디론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더니 그 번호를 입력하고는 이따가 자기 사무실로 돌아가 보면 팩스가 하나 도착해 있을 것인데, 그 팩스를 읽어보면 스웨덴의 개인정보보호 정책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다른 기관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치고 그의 사무실로 돌아와 확인해 보니 정말 팩스 하나가 그의 팩스기에 도착해 있었다. 아까 전화하고 난 후 불과 5분 정도 지나고 난 다음에 자동 회신된 것이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 팩스에 적인 내용이었다. 거기엔 그 차 주인의 이름, 나이, 성별, 주소, 혈액형, 그 차의 취득일, 사고 경력 등등 그 차 주인의 개인 정보들이 소상히 적혀있었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 사생활 침해니, 개인정보 유출이니 하며 온갖 항의와 비판, 관련자 문책 여론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을 일이다. 그런데 스웨덴은 그 날 너무도 조용했다. 한 나라에서는 큰 뉴스거리가 될 일이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이 상황에 나는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아 그 직원에게 다시 물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가 하고. 정부가 남에게 공개해선 안 되는, 즉 보호의 대상이 되는 개인의 사적 정보와 개인에 관한 정보라 하더라도 정부가 남에게 공개할 수 있는 공공정보를 구분하는 법적 기준이 매우 독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직원의 답이었다. 즉 스웨덴에서는 아무리 개인의 사적 정보라 하더라고 그 개인이 정부 기관으로부터 서비스를 받기 위해 정부에 제출하는 정보는 `정부'라는 공적 영역에 자신의 정보를 내 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 정보는 더 이상 개인 소유의 정보가 아니라 스웨덴 사회라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공동 소유가 되어 모두에게 공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날 팩스를 통해 내가 확인할 수 있었던 어느 자동차 주인의 각종 개인 정보들은 그가 자동차를 등록하기 위해 신청서에 기입하여 자동차등록사업소에 제출했던 것들이었다.
그의 이 답은 또 다른 질문을 촉발시켰다. 어째서 영미권 국가들을 비롯해 세계의 많은 나라들과는 달리 스웨덴에서는 이런 법률이 성립 가능한 것인지. 다시 말해서 다수의 스웨덴 사람들은 자신의 사생활이 공개되는 것을 합법화하는 이 법률을 받아들이고 사는 것인지. 그 직원은 이에 대해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내가 스웨덴에 머무르는 동안 그가 내게 빌려주었던 그의 아파트에서 생활해 보면서 나는 그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었다. 그 답은 문화였다.
그의 아파트는 이른바 스톡홀름의 구 도시 지역에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시절에 지어진 5층짜리로 마차 하나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을 가운데 두고 또 다른 5층짜리 다른 아파트와 마주하고 있었다. 낮에는 몰랐는데, 밤에 보니 바로 앞집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그대로 훤히 들여다보였다. 어느 집도 창에 커튼이 전혀 없었다. 그들이 자는 모습. 이야기하는 모습, 사랑하는 모습을 서로 바로 눈앞에서 보여주며 사는 것이 아닌가. 그제 서야 내가 공동체적 삶을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 국가에 와 있는 것임을 확연히 느꼈고, 어째서 스웨덴에선 그런 개인정보보호 정책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시행하게 된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공동체를 지탱해 주는 핵심 축은 바로 구성원들 서로에 대한 신뢰이고, 이 신뢰는 서로에 관한 정보의 공유로부터 싹트는 것이다. 스웨덴에서 정부는 바로 그런 정보 공유의 열린 장이고 정직한 연계자로 역할해야 할 것이 요구되는 되는 것이다. 실제로 스웨덴에서는 사기 사건이 드물다고 한다. 중고 자동차 매매에서 사고 여부를 둘러싸고 속고 속이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젠 인터넷으로 그 차량의 번호만 입력하면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고 하니까.
정부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개인의 사생활 침해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개인정보의 공유나 공개를 무조건 범죄시해서는 안 된다. 스웨덴의 전자정부 구현 노력에서 보듯이,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신뢰 증진을 위해 필요한 개인 정보는 공유, 공개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 지혜로운 세심한 선별 노력과 관점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 글은 2007년 2월 1일자 디지털타임즈 [DT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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