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선 칼럼

  • 한선 브리프

  • 이슈 & 포커스

  • 박세일의 창

[박세일]진짜 중도와 사이비 중도 구분법
 
2006-12-29 10:37:05

박세일 (한반도선진화 재단 이사장,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요즈음 정치권에 ‘중도 개혁’이니 ‘중도 실용’이니 ‘중도 통합’이니 하는 말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년에 들어가면 너도나도 ‘중도’라고 들고 나올 것 같다. 과연 중도란 무엇인가? 공자(孔子)께서 “올바른 정치란 이름을 바로잡는 데(正名)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이름과 내용이 서로 다르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진다. 예컨대 ‘반핵과 평화와 인권’을 주장하다가도 북한 핵실험이나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만 나오면 갑자기 침묵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사회는 혼란스러워진다. 왜냐하면 안과 밖, 말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올바른 중도를 세워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사이비 중도’들이 나와서 사회를 혼란시키고 국민을 오도한다. ‘진정한 중도’란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한쪽에 극단적으로 기울지 아니하고 두 가치의 조화 즉 자유와 평등, 성장과 분배, 개인과 공동체, 민족과 세계의 조화를 균형 있게 추구하는 입장이다. 좌와 우를 절대화하지 않고 상대화하여 국가 발전과 국리민복을 위하여 시대에 맞게(이를 시중〈時中〉이라고 한다) 적절히 조화하여 활용하는 입장이 중도이다. 따라서 중도는 사실 대도(大道)이고 ‘천하의 공도(公道)’이다. 이 대도인 중도의 길을 걸으려면 적어도 다음의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우선 사심(私心)이 없어야 한다. 중도는 나라 발전을 위하여 택하는 것이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택하는 길이 아니다. 중도는 시류에 영합하는 기회주의, 보신주의, 출세주의가 아니다. 우파의 시대에는 우파에 박수치고, 좌파가 득세하면 좌파에 박수치다가 정권 말기가 되면 재빨리 중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이비 중도’이다. 군사정권시대에도 출세하고 좌파정권시대에도 출세했던 사람들이 어느 날 “내가 본래 중도”라고 주장한다면 역사와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옛날부터 중도는 대도이기에 군자(君子)가 걷는 길이지 소인(小人)들이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라고 했다.
 
둘째, 중도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말이야 무슨 말을 못하랴. 말과 행동이 다르면 제대로 된 진보도 보수도 될 수 없거늘 어떻게 대도인 중도가 될 수 있는가? 균형 발전이란 허구 아래 추진하는 ‘수도 분할’, ‘공기업의 지방 이전’이 얼마나 국가 이익을 해치는지를 스스로 잘 알면서도 침묵하고 박수를 쳐주던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중도가 될 수 있는가?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천하의 이익’을 버린 사람들이 어떻게 ‘천하의 공도’인 중도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
 
셋째, 중도는 보수가 득세하면 진보적 가치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진보가 득세하면 보수적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중도이다. 우파 보수의 시대에는 평등과 복지의 가치를 강조하고, 좌파 진보의 시대에는 자유와 성장의 중요성을 주장해야 한다. 그것이 나라 전체의 ‘균형과 조화’라는 대도를 추구하는 올바른 중도의 모습이다. 그래서 중도는 항상 시대의 대세에 역류하면서 바른 소리를 내서 그 시대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다.
 
군사 독재 시절에는 감옥 가면서도 독재를 비판하고, 좌파정권하에선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전정한 중도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인들은 그렇게 주장하지 않지만 김진홍, 서경석, 안병직, 장기표 같은 분들이 이 시대의 진정한 중도이다. 자기 이익을 위해 말로만 하는 중도는 많으나 나라를 위해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적다.
 
내년에는 너도나도 중도라고 나설 것이다. 특히 좌파 진보정책에 영합해 앞장섰던 사람들일수록 더욱 더 큰 목소리를 낼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의 전복(顚覆)을 꿈꾸는 ‘일심회’ 같은 간첩들이 버젓이 활보하고 있는 우리 현실을 두고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자고 아우성치던 사람들이 누구인가? 어떻게 그들이 하루아침에 중도가 될 수 있는가? 이들 ‘사이비 중도’에 국민들이 또 속으면 안 된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정말 어려워진다. 국민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옥과 석을 가려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 이 글은 2006년 12월 26일자 조선일보 <아침논단>에 실린 칼럼입니다.

 
  목록  
번호
제목
날짜
66 [모종린]실용적인 조기유학정책 07-02-14
65 [나성린] 인적자원 활용 2+5 전략 07-02-12
64 [황성돈]스웨덴전자정부의 교훈 07-02-12
63 [이홍구]외교대국만드는 대통령 07-02-08
62 [김영봉]큰 정부와 시장경제 07-02-07
61 [이인호] 노골적 인사독재 07-01-31
60 [박세일]더 이상 포퓰리스트 허용해선 안돼 07-01-30
59 [이두아] 국민 탓하기 전에 07-01-29
58 [임동욱]새대통령잘뽑아야 07-01-23
57 [조순]위험한 '올인'정책 07-01-19
56 [이홍구]부적절한 개헌논의 07-01-17
55 [김영봉]무용한 부동산정책 07-01-17
54 [강경근]문제는헌법이아닌정치 07-01-11
53 [이인호]진정한 나라의 주인 07-01-10
52 [나성린] 2007 대결전을 준비하며 07-01-10
51 [나성린] 희망의정치를 고대하며 07-01-08
50 [나성린] ‘분양원가 공개’ 정치적 협박 말라 07-01-08
49 [나성린] 공무원연금 개혁 07-01-08
48 [나성린]제조업침체 막아야한다 06-12-30
47 [박세일]진짜 중도와 사이비 중도 구분법 06-12-29
121 122 123 124 125 126 127 128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