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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성] 책임지는 정당의 자세
 
2006-12-05 17:54:11
 

   이수성(한반도선진화재단 고문, 전 국무총리)
  정치는 바른 것이라고 했다. 성현들의 말씀이다. 바르게 선택하고 바르게 선택받는 게 정치다. 명품 백화점이 왜 명품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진열된 상품이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바로 그 상품의 참모습이다. 소비자는 상품이 모조품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전혀 하지 않고 선택을 한다. 백화점이 상품의 진위를 가려서 진열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정치의 세계는 명품백화점 같아야 한다. 유권자가 걱정 없이 정당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겉과 속이 다른 정당, 겉과 속이 다른 후보 앞에서 유권자의 선택은 걱정이고 두려움이다. 후보자나 정당의 실체가 보이는 그대로와 같을 것이라는 믿음을 정치 소비자가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정치가 좋은 정치고 잘 되는 정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최선이나 차선보다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를 맞는다. 일차적으로 정당의 책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정치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세계의 기적인 것처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도 겉으로는 괄목할 만큼 성장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여전히 지나친 화장술의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당의 존재 가치에 대한 회의마저 들고 있다. 자기 정체별?본색을 저 깊은 곳에 숨겨두고 겉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국민에게 나타나는 정치, 이래 가지고는 유권자가 정당을 바르게 판단할 방법이 없다.
 
  요즘 어떤 정당은 신장개업을 두고 갑론을박이다. 언론은 그걸 정계 개편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1백년 가는 정당이 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게 3년 전이다. 불과 3년 만에 그 정당이 추구하는 목표와 그 정당을 구성하는 사람과 그 세력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바꾸는 건 아무 것도 없는데 신장개업이라고 하거나 간판만 바꿔 통합신당이라고 한다면 당당하지 못하다.
 
  정당은 국민에게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 정치는 정당의 의무다. 정당은 자기가 한 일을 자기의 이름으로 심판받아야 한다. 그게 바른 정치다. 지금까지 한 일은 자기가 한 게 아닌 것처럼 꾸미는 화장은 그만 두는 게 좋다. 떳떳하게 일을 했지만 방법론의 과오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거든 당당하게 패배해라. 그러나 결코 정체성은 잃지 마라. 그것이 집권을 못해도 정치를 바르게 세우는 반듯한 길이다. 반듯한 길을 걸어가서 유권자의 바른 선택을 받아야 하는 것이 국민을 위하고 정치를 위한 길이다.
 
  일부 당에서는 또 오픈 프라이머리를 두고 신경전이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우리말로 완전 개방형 국민경선제다. 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국민이 직접 참여해 뽑게 한다는 취지다. 말은 근사한데 이것 또한 무책임한 행태다. 정당은 자기 정체성에 맞는 후보자를 내세워 다른 정당의 후보자들과 경쟁하여 최종적으로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 공적인 책임조직이다. 그 경쟁에서 승리한 정당의 후보자가 자기 정체성과 노선으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봉사의 성과에 대해서는 다음 선거에서 또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런데 오픈 프라이머리는 정체성이나 노선과 상관없이 가장 인기가 많은 후보를 찾겠다는 것이다. 정당은 인기인을 관리하는 엔터테인먼트 기획사가 아니다. 정당의 존재 이유는 정체성과 노선을 합의한 책임있는 당원들이 자기 색깔의 공직 후보자를 뽑아 국민 앞에 선보이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픈 프라이머리는 당원이 해야 할 일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무책임 정치의 표본인 것이다. 이는 또한 당원에 대한 스스로의 불신을 전제로 하고 있다. 대중에 영합해 인기인을 공익의 수호자로 내세우겠다는 포퓰리스트 정치는 언제나 위험을 수반하고 떳떳함을 잃는다.
 
  이런 오픈 프라이머리에 나서는 후보자들은 수만 명, 수십만 명의 선택을 받기 위해 짙은 화장으로 자기 본색을 감추기 바쁠 것이다. 이런 화장술 정치에서 국민들은 얼마나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명품 정치가 되려면 화장술 정치가 없어져야 한다. 유권자의 바른 선택을 방해하는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정당은 제 모습 그대로 심판을 받아야 하고 당원들은 애국심과 경륜과 신의와 사랑을 지닌 인물을 스스로 찾아내어 책임지고 당당하게 후보로 내세워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올바르게 책임지는 정당의 자세다.  
 
이글은 12월 5일자 매일신문 [계산논단]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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