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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욱] 포퓰리즘 덫의 결과
 
2006-12-05 17:44:26
 
 
 임동욱(한반도선진화재단 홍보실장, 충주대 교수·행정학)
 
포퓰리즘 덫에 걸린 나라들

아르헨티나·브라질·체코·필리핀, 중진국 문턱 못 넘어
분배를 중시하는 선심성 정책 남발… 빈민 문제 해결 못하고 국력만 오히려 쇠퇴

 
현재 전 세계에는 220개가 넘는 국가가 있다. 이들 국가를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인 1945년을 기준으로 보면 선진국과 그렇지 않은 나라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미국과 유럽으로 대표되는 선진국은 1945년 이전에도 선진국이었다는 점이다. 역으로 1945년 이전에 중진국 혹은 후진국이었다가 현재 선진국인 나라는 불행히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의 경우는 제2차 대전 이전에 중진국이었다가 지금은 선진국으로 보는 견해도 없지 않으나 일본을 명치유신 이후에 근대화에 성공한 선진국으로 간주해도 큰 무리는 없다.

중진국까지는 국가건설에 성공한 뒤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다가 좌절하고 만 사례는 의외로 많다. 지금은 축구만 선진국이 되어버린 자원대국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동유럽 상징의 하나였던 체코, 지금은 나라가 갈라진 구 유고연방,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아시아의 맹주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필리핀과 미얀마(옛 버마) 등이 이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선진국 후보였다가 계속 중진국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있지만 후진국으로 추락한 후 유명무실해진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나라가 없어진 경우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세계화의 덫’이 있는 것처럼 ‘중진국의 덫’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마저 든다. 이처럼 적지 않은 나라가 중진국의 덫에서 허우적거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진단이 나와 있다. 다양한 진단 중에서 포퓰리즘은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요인 중 하나이다.

포퓰리즘이 현대정치의 암적 요소로서 나라 발전의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흔히 포퓰리즘의 전형으로 간주되는 페로니즘(Peronism)이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브랜드가 되어버린 것은 포퓰리즘의 해악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박세일 서울대 교수의 지적에 따르면 ‘국가 전체로 보면 정책 실패이나 소수 정파로 보면 정책 성공이 되고, 전체에는 큰 손실이 되나 부분에는 이익이 되는 것’이 바로 포퓰리즘의 가장 큰 해악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시장과 자본이 무한경쟁을 벌여서 나라가 세계문명표준(global standard)에 부합하도록 법과 제도와 질서를 변화시킬 것을 요구하는 시대이다. 과거의 잣대와 패러다임으로는 승자가 될 수 없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승자가 되기 위해 변혁기에 나라가 변화하게 되면 당연히 누군가는 손해와 피해를 보고 국민은 단기적으로는 불편과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물론 변화의 과실은 달콤하고 나라의 수준과 질은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미래의 일이고 조금은 장기적이다. 그러다 보니 단기적으로 현재의 불편과 고통은 견디기 싫어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포퓰리즘이라는 암적 요인이 사회 시스템에 버젓이 자리를 잡고 활개를 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미래와 현재, 장기와 단기, 그리고 안주와 변화라는 틈새에 있다.

이 틈새를 그릇된 정치 지도자와 그를 둘러싼 집단이 비집고 들어가 대중의 마음을 잡기 위해 잘못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정치지도자가 단기적이고 정파적인 이해 때문에 불편과 고통을 표출하는 대중의 지지와 인기를 얻기 위해 결과적으로는 그릇된 길로 나라를 이끄는 것이 바로 포퓰리즘의 실체인 것이다. 주요 국가의제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도록 설계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중을 조작하면서 결정되는 경우 이는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광풍(狂風)이 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르헨티나다. 1940년대까지 손꼽히는 경제대국이었던 아르헨티나엔 사회의 질적 전환을 통해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산업화의 그늘에 있던, 생계가 걱정인 대중은 즉각적인 실리(實利)와 일자리에 집착했다. 게다가 엘리트에 대한 반감,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등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포퓰리즘의 확대재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민족주의와 결합된 친(親)노동정책과 분배중시의 정책기조는 지금도 남미 포퓰리즘의 주요 특징이 되고 있다.

 
당시 페론 대통령 부부는 개혁이라는 명분하에 무한정의 선심성 물량공세를 퍼부었다. 부자에겐 야멸차고, 손을 벌리는 모든 이에게 사랑을 베풀고, 배고픈 사람을 조건없이 도와주었던 에바 페론은 아르헨티나의 성모(聖母)가 되었다.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이며 단기적인 이익에 급급한 정책의 결과는 참혹해 나라는 점점 어둠의 늪 속에 빠져버렸고 아직도 이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1년 태국 총리에 취임한 탁신 역시 포퓰리스트로 지적되고 있다. 그는 의료비 감면과 부채탕감을 추진하여 농민과 빈곤층에 큰 지지를 받았다. 빈곤층을 위한 탁신의 여러 경제정책은 사회 다른 계층의 소외를 불러왔고 중산층과 지식인이 강하게 반발하였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진원인 태국은 사회의 질적 전환과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기에 무분별한 선심성 정책을 펼침으로써 국민은 정부 보조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었고 국가는 발전하지 못한 채 혼란만 계속되었다. 결국 탁신 총리는 올 9월 19일 군부의 쿠테타로 물러났다.

포퓰리즘이 한 나라의 경제에 치명상을 입히는 과정은 대동소이하다. 포퓰리즘에 입각한 정책은 가난한 사람에게 결코 달성할 수 없는 잘못된 기대감을 심어준다. ‘부자로부터 부(富)를 빼앗아 나눠주겠다’거나 ‘임금을 올려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순간, 가난한 국민은 자신의 열악한 상황이 법과 정책으로 개선될 수 있고 개선되어야만 한다는 기대를 갖게 된다.

가난한 국민은 동질성을 갖는 정치적 집단이 되면서 점점 더 많은 것을 정부에 요구하는 과정을 밟게 된다. 법과 절차는 무시되고 많은 요구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의 결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적대감은 더욱 커진다. 가난이 개선될 수 있다는 환상에도 불구하고 결국 포퓰리즘 정책이 남기는 것은 저(低) 성장과 자본의 투자 회피로 인한 가난의 고착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정 정책에 대해 포퓰리즘적인 정책결정이라는 비판이 본격적으로 세간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문민정부 이후로 기억된다. 그 이전의 권위주의적 정부 시절에는 선동과 동원은 있었지만 대중의 의사나 인기에 반하는 정책결정과 집행이 오히려 많았다. 민주화 이후 나라가 열리고 언로(言路)가 트이면서 국민주권이 실천되는 장이 넓어지면서 포퓰리즘이라는 독소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은 것이다.

국민의 표와 선택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이는 불가피한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포퓰리즘의 만연은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민주주의를 뇌사상태로 만드는 포퓰리즘을 그냥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포퓰리즘이 나라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치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특정의 결정이나 행동이 포퓰리즘이냐 아니냐를 판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의제에 대한 결정이나 행동이 포퓰리즘인지 아닌지를 판정하는 기준은 궁극적으로는 역사다. 지금 내린 결정과 행동이 초래하는 결과가 잘못되었을 경우라도 미래의 어느 날 “포퓰리즘 때문에 나라가 잘못 되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보면 포퓰리즘만큼 작위적이고 혼란스러운 용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인기에 지나치게 영합하면서 국고와 재정의 압박을 초래하고 나라를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만드는 포퓰리즘의 일반적인 속성에 천착한다면 이의 식별은 의외로 쉬울 수도 있다. ‘대중이 아닌 국민’ ‘너와 내가 아닌 우리’ ‘오늘이 아닌 내일’을 생각하며 선택하고 행동하면 포퓰리즘은 예방할 수 있고 진단할 수 있다. 
 
이글은 2006년 12월 5일 주간조선 1932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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