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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8년에 8조… 그 참담한 실패의 이유
지난 8년 반 동안 우리나라 대북정책의 기조는 햇볕·포용정책이 었다. 햇볕정책의 목적은 햇볕을 쪼여 북한을 정상국가(正常國家)로 만드는 데 있었다.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오게 하는 것 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8조원 이상의 대북지원과 200차례 이상의 남북회담을 했다. 그러나 햇볕정책은 참담히 실패했고 핵실험까지 한 북(北)은 세계를 향해 핵 위협을 시작하고 있다. |
왜 햇볕정책은 실패했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햇볕정책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북이 왜 핵을 개발하려 했는지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잘못되어 있었다. 북의 핵 개발은 결코 대미(對美)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협상용’이 아니다.
북의 핵 보유 염원은 6·25 때부터이고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한 지도 이미 25년이 넘는다. 북의 핵 개발은 기본적으로 ‘체제 유지용’이고 ‘대남 통일용’이다. 6·25 직후 김일성은 “우리가 핵을 보유하고 있었으면 미국은 전쟁에 개입하지 못했고 통일은 달성됐을 것이다”라고 한탄했다.
1975년 5월 월남 패망 후 북이 추진하던 남침계획을 “만일 북한이 남침하면 핵을 사용하겠다”는 미 국방장관의 발언이 좌절시켰다. 김정일은 1992년 한·중 수교 시에 “믿을 것은 핵폭탄 밖에 없다”고 했고, 최근에도 “개혁이니 개방이니 하는 것은 모두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자들의 수작이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한마디로 북은 개혁개방으론 김정일 체제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체제에 대한 내부 도전은 탄압을 통해 통제가 가능하지만 외부 도전은 핵이 있어야 극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핵만이 ‘체제생존의 수단’이고 통일대업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햇볕정책이 실패한 두 번째 이유는 정치 지도자의 사심(私心) 때문이었다. 본래 북한의 변화가 목적이고 햇볕정책은 수단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본래의 목적이 없어지고 수단이 목적이 되었다. 당근을 주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퍼주기’가 되어 버렸다. 왜 그랬을까? 북의 지도자 를 만나고 회담하고 파티하고 사진 찍고 하는 것만으로 개인적 정치적 목적이 충분히 달성되기 때문이다. 상(賞)도 타고 민족 화해의 지도자로서 이미지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간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졌는가, ‘북의 정상국가화’에 실제로 기여했는가는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러니 4억5000만 달러의 뒷돈을 주면서도 만나는 것 자체를 서둘렀던 것이다.
대북정책에 있어 여야(與野)를 막론하고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유사한 포퓰리즘적 행태를 보여 왔다.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민족의 사활이 걸린 통일과 안보 문제를 자신의 사익(私益)이나 국내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솔직히 너무나 반(反)통일적이고 반(反)민 족적이다. 먼 훗날 민족의 역사 앞에 무엇이라 변명할 것인가?
햇볕정책의 실패에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배워야 한다. 첫째, 북은 결코 김정일 체제 자체의 생존이 위협받지 않는 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핵 보유로 인해 오히려 체제유지 자체가 불가능해져야 비로소 다른 살 길을 찾을 것이다. 따라서 북핵은 반대하나 포용정책은 지속돼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문제의 본질을 모르는 공허한 주장이고 무책임한 인기 영합이다. 북핵을 진정으로 용납하지 않으려면 김정일 체제 자체의 생존을 압박하는 것이 정도(正道)이다.
둘째, 정치 지도자들이 다시 포퓰리즘적 유혹에 빠져 남북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려 든다면, 북핵과 북의 개혁개방문제는 절대 풀 수 없다. 우리의 대북정책이 설익은 감상주의에 빠지지 말고, 민주, 인권, 시장, 세계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원칙’을 굳건히 지켜 나갈 때, 남북문제의 해결은 보다 빨리 온다. 이 두 가지 교훈은 특히 다음 대선주자들이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박세일(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법경제학)
♣ 이 글은 2006년 10월 30일자 조선일보 「 아침논단」에 실린 칼럼입니다. [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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