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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위한' 정계개편
정치지도자들이 정계개편에 대한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 모두 내년 대선을 목표로 한 노력이다. 나는 어차피 있을 정계개편이라면 정치인을 위한 이합집산이 아니라 ‘국민과 국익을 위한 정계개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계개편은 대중적 인기를 가진 특정인을 후보로 내세우고, 그를 위해 기존정당을 ‘1인 중심의 정당'으로 바꾸거나, 아니면 ‘신(新)정당'을 만든 후 지역연합, 지역 간 권력야합을 통해 정권획득에 올인하는 것이었다. |
그 결과 정계개편 중심에는 ‘국가비전과 국정철학'에 대한 고민과 토론은 거의 없고, 항상 인물중심의 ‘이미지정치와 지역주의'만 판을 쳤다. 그래서 국민들은 후보가 어떤 이념과 정책을 가지고 국가경영을 할지 잘 모르는 상황 속에서 투표를 해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 많은 기대를 주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국민을 실망시키고 결국 총체적 불신의 대상이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6·25를 경험한 나라에서 국민들은 노정부가 등장하자마자 국가보안법을 아예 없애려고 달려들 줄은 몰랐다. 대한민국 역사를 ‘오욕의 역사'라고 폄하하며 16개나 되는 과거사위원회를 만들어 각종 ‘역사 전복(顚覆)'에 나설 줄도 몰랐다. 수도분할, 170여 개 공공단체의 강제이전, 언론법과 사학법의 개악, 교육평준화, 코드인사, 한미동맹과 한일관계의 훼손, 원칙 없는 대북정책, 부동산 조세폭탄, 양극화 선동 등 역사 발전에 정면으로 역주행하는 국정운영의 일탈과 혼란이 너무 많았다. 결국 우리는 노정부가 어떠한 이념과 노선, 어떠한 철학과 국정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국가최고지도자를 뽑은 셈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대통령과 국민이 함께 실패하는 역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을까?
우선 정치인을 위한 정계개편이 아니라 국민과 국익을 위한 정계개편이 일어나야 한다. ‘인물과 지역' 중심이 아니라 ‘국가비전과 국정철학' 중심의 개편이어야 한다. 즉 이념과 노선, 비전과 전략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야 한다. 크게 보아 보수와 진보, 범(汎)우파와 범(汎)좌파, 두 그룹으로 모이는 개편이 바람직하다. 극좌와 극우를 제외하고 ‘합리적 좌파'와 ‘개혁적 우파'로 나누는 것이 좋다. 그리하여 좌(左)에서는 한국판 ‘제3의 길(The Third Way)'이나 ‘뉴 데모크래트(New Democrats)'의 철학을, 우(右)에서는 한국판 ‘대처리즘(Thatcherism)'이나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 정도의 철학, 아니 최소한 ‘리콴유 수상 정도의 비전과 소신'을 가지고 나와 경쟁해야 한다. 19세기적 좌와 우가 아니라 세계화시대에 걸 맞은 21세기적 좌와 우의 철학을 가지고 나와야 한다. 그래야 정치와 정책의 미래에 대한 국민예측이 가능하고 국민도 자신의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투표할 수 있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에는 사회적 분열과 갈등, 사상과 가치의 혼란이 극심했다. 이제는 지역구도에 기초한 후보의 개인적 인기, 업적 혹은 이미지경쟁 정도로는 이 나라의 어려움을 구할 수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위하여 국민을 하나로 묶고 다시 뛰게 하려면 엄청난 ‘정신력과 사상의 힘'이 필요하다. ‘사상과 철학'을 가진 정당이 필요하다. 즉 대한민국 역사를 어떻게 계승 발전시킬 것인가, 21세기 문명 변화를 어떻게 읽고 세계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확고한 답을 가진 정당이 나와야 한다. 이러한 ‘역사관 정당' ‘세계관 정당'이 나와야 이 시대와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계개편은 대선 후보들 중심의 이합집산이 아니다. 국민을 위한 정계개편, 국가발전 철학과 사상,비전과 전략을 만들기 위한 개편이어야 한다.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박세일(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법경제학)
♣ 이 글은 2006년 7월 15일자 조선일보 「 아침논단」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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