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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열] 북 핵실험에 날아간 남 정체성
 
2006-11-23 15:46:43
 유호열(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화싱크탱크 남북문제팀장 고려대학교 행정대학원장)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지 10여일이 지났다. 북한의 무모한 행태에 대해 유엔 안보리는 신속하게 대북 제재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 북한은 핵무기를 폐기하고 6자회담에 복귀하든가, 아니면 지속적으로 핵무기를 개발·보유함으로써 국제사회와 대결하든가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당장 북한 핵실험의 직격탄을 맞은 것은 남한 사회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남한 사회는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으며 괄목할 만한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독일이 통일될 당시만 해도 남한은 한반도의 미래를 밝게 선도할 21세기 주역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난 9년 동안 햇볕정책에 대한 신앙과도 같은 맹신과 무분별한 자주화로 인해 분단 반세기 동안 힘들게 이룩한 기적과 같은 성장과 발전의 과실은 여물지 못했고, 북한과의 민족 공조에 함몰된 채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되는 순간 남한 사회의 정체성은 혼돈 속에 황폐화되고 있다.
 
북한은 핵을 보유하면 강대국이 될 수 있다는 과대망상에 빠져 있다. 세계 최빈국에 속하는 북한이 김정일의 호언대로 최단 기간 내 자주적인 강성대국이 되는 유일한 길은 핵 보유에 올인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김정일 자신을 비롯한 전체 인민 모두가 자기 최면상태에서 저지른 무모한 최후 도박이다. 한마디로 핵 보유국 북한은 극도의 공포 속에 김정일 무오류성의 과대망상을 안고 낭떠러지로 마구 달려가는 브레이크 없는 고물차와 같다.
 
반면 과도한 햇볕에 방치되었던 남한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면서 생존권과 자주권을 모두 잃어버리게 되었다. 무력 도발은 절대 불용하겠으며 북한 핵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햇볕론자들은 선군정치가 남한을 지켜주고 북한 핵보유가 한반도와 세계 안전에 기여했다는 북한의 황당한 궤변에 속수무책이 되었다. 유엔에서 대북 제재안이 잇따라 결의되는 상황에서 어쩡정하게 방황하는 것도 모자라 북한의 도발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국제사회의 제재 방침에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냐며 반발하기도 하였다. 가히 전쟁 공포증을 만천하에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햇볕정책 하의 안보 불감증을 넘어 북한의 핵 공갈에 사시나무 떨듯 오금을 펴지 못하고 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며 미국의 대북 강경책을 비판하던 현 정부는 미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 유럽연합이 가세한 새로운 역학관계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무력공갈 시위에 공포감만 앞세운 전형적인 유화정책의 재판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과정에서 남한의 순진하고 무모한 자주정책은 든든한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 북한을 실패한 정권이라 규정하고 남북한의 군사력이 경제력만큼이나 벌어졌으니 북한의 군사력은 결코 겁낼 것 없다던 정부이다. 안보 걱정 없으니 미국의 핵우산도 필요 없고 전시작전권을 조기 환수해 주권을 회복하겠다던 오만스러운 정부였다.
 
지난주 북한에서 핵실험이 있던 기간 칠레에서 남미 주요국가들의 한반도문제 전문가들이 모여 국제학술회의를 가졌다. 지구 반대편에서 북핵문제로 인한 한반도 장래 문제를 다루면서 남과 북의 정체성에 대해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북한은 유엔 안보리의 제재안에 대해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불행하게도 남한 사회는 햇볕정책을 내세워 남북화해와 민족공조를 주창하다 피해망상과 과대망상 사이를 오가는 북한의 모습을 어느새 닮아버렸다. 한반도의 대재앙을 초래할지도 모를 핵실험을 서슴없이 강행한 북한에 대해 유화적 자세를 넘어 정체성의 동일시 현상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말 우리 사회가 반세기 동안 역경을 딛고 구축했던 강인하고 열린 마음의 정체성은 실종되고 말 것인지 만시지탄의 심정으로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 글은 2006년 10월 19일자 세계일보 통일논단에 실린 칼럼입니다. [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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