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선 칼럼

  • 한선 브리프

  • 이슈 & 포커스

  • 박세일의 창

실패와 성공의 갈림길에서 / 이홍규
 
2008-12-16 17:17:29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세계는 자본주의의 만세를 불렀다. 그로부터 17년 후 세계 자본주의의 하늘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검은 구름으로 뒤덮여 있다. 금융거품이 만들어낸 후유증이다. 왜 우리는 New Millenium의 축배를 채 내려놓기도 전에 이 위기에 봉착했는가? 아마도 그 이유의 일부는 내재적 요인 때문이고, 일부는 정책의 실패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는 금융거품으로 인해 과열(boom)과 파국(bust)을 번갈아 경험하고 있다. 현대경제의 정보화, 세계화는 이런 금융위기의 변동성과 전염성을 더욱 더 심화시키고 있다. 이번 금융위기로 사후에 새로운 주목을 받게 된 Hyman P. Minsky 교수는 금융거품이 ① 전이(displacement)와 ② 호황(boom)을 거쳐, ③ ‘묻지마 투자’를 부추기는 도취(euphoria)와 ④ 비관확산, 자산가치 급락, 시장탈출이 시작되는 이익선취(profit-taking)를 지나, ⑤ 신용경색과 안전자산의 떨이매각이 일어나는 경제위축(contraction)의 5단계로 진행된다 하였다. 세계는 지금 제5단계에 진입해 있다. 정책 실패도 위기의 원인이다. 자본주의에서 정부 실패의 문제는 이미 오래된 이슈이다. 지금 우리가 다시 위기의 폭풍우 한가운데 빠진 것도 1997년의 위기에서 제대로 교훈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시스템의 실패(system failure)에 의해 초래되는 위기는 4가지 실패, 즉 인식, 제도, 정부, 리더쉽의 실패에 의해 일어난다고 본다. 우리의 1997 외환위기도 마찬가지였다(월간 Next(2007.1) 졸고 참조). 지금 미국, 한국이 겪는 위기의 근저에도 그런 실패가 있다. 2000년대는 저금리에 따른 유동성 과잉, 투기 열기의 메카니즘이 지배한 시대이다. Susan Strange가 말한 ‘카지노 자본주의’를 보인 시대이다. 유동성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의 신화에 매달린 정부, 그 신화가 불러온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에 빠진 투자가들. 도덕적 해이에 물든 금융기관들이 있다. 금융의 종주국인 미국이 저금리에 대한 경고를 무시하고, 파생상품의 문제를 경시하였으며, 리스크를 막아줄 정보의 대칭 문제에 둔감하였다. 우리 또한 예외는 아니다. 늘어나는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경기부양이란 정치적 고려에 금리는 올리기 어려웠고, 폭발적으로 늘어만 가는 가계대출, [외화 단기차입, 원화 장기대출]이란 늪에 빠져드는 은행의 행태에 정부의 대응은 미흡하였다. 그러다 시장의 낙관이 한 순간에 비관으로 흐르면서 모두가 공포(panic)에 빠져 들었다.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외환위기, 신용위기에 대한 효과적 대응책은 무엇인가? 불이 발등에 옮겨 붙었으니 최대한 빨리 끄는 것이 상책임은 물론이다. 그래서 정부가 외화유동성 공급, 금융/재정지원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위기상황은 쉽사리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 유동성 함정의 지속, 실물경기로의 위기전이에, 외환수급에 대한 외부의 의심도 쉽게 걷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 하였다. 발등의 불을 끄는 것이 아무리 급하다하더라도 정부의 고민이 이에만 그쳐선 안 될 것이다. 그 고민을 앞서 말한 4가지 측면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식의 실패가 없어야 한다. 정부는 지금 유동성 함정을 피하려 돈맥을 찾는데 급급하고 있다. 그러나 돈을 풀더라도 장기적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되게 하는 심려가 필요하다. 돈이 안돈다고 유동성이란 휘발유를 끼얹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그것이 결국 위기의 불길을 더 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World Bank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 위기에서도 단기 안정화 조치들이 장기적 성장동력을 회복시키는 조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대규모 유동성의 투입은 불가피하지만, 그것이 더 큰 새로운 버블을 만든다면 경제의 파국은 더 심할 수 있다. 보다 정교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제도의 실패를 교정해야 한다. 남의 위기를 그렇게 쉽게 우리에게 불러 드린 것은 우리의 금융 제도가 갖는 문제 때문이다. 어설픈 대형은행 유도정책과 미국 투자은행을 닮으려는 행태가 오늘의 위기를 자초하였다. 이미 현재의 금융 시스템이 잘못 작동된다는 것이 보여졌으니 앞으로 어떤 금융 시스템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셋째, 정부의 실패가 없어야 한다.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부실금융/기업의 구조조정 속도와 범위에 대한 고민이다. 구조조정은 관료로서는 가능한 피하고 싶은 부분이다. 그러나 ‘충분하고도 선제적인 대응’이란 실로 구조조정에 적용되어야 한다. 경제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는 금언이 있다. 유동성 공급이 부실의 연명이 아니라,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수단이 되어야 위기의 원인이 치유되고 도덕적 해이도 막을 수 있다. 구조조정이 충분하지 못하면 부실의 전염이 계속 일어날 것이다. 자율조정이라 하더라도 정부가 책임을 지는 자세(big brother)를 보이지 않는다면 위기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낭비할 것이다. 또한 재정지출의 효율성에 대한 심려도 필요하다. 위기수습과 취약계층의 지원을 위한 재정지출은 불가피하지만, 효율성이 떨어지는 SOC투자는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 1929년의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행한 재정지출이 결국 실패였으며, 이 실패가 불황을 더 오래 끌고 갔다는 분석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SOC투자를 하더라도 물류, 서비스, IT인프라와 같이 경제효율의 향상에 보다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부문에 투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공공부문의 개혁 방법에 대한 심려가 필요하다. 공기업에 감원 바람이 불 것이라는 보도가 있다. 물론 공공부문의 개혁은 빠르고 과단성있게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실업 대란이 우려되는 이 시점에 공공부문이 ‘사람 짜르는 개혁’에 앞장서서는 안될 일이다. 기업보고는 ‘사람 짜르지 말라’하고 정부가 사람 짜르는 일에 앞장 설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이 시점의 공공부문 개혁은 불요불급한 비용을 줄이고 내부 프로세스를 개선해 효율을 높이는 효율성 위주의 개혁이 되어야 한다.


넷째, 리더쉽의 실패가 없어야 한다. 소통이 계속 현 정부의 숙제가 되고 있다. 리더쉽의 핵심은 소통의 기술이다. 소통의 핵심은 경청에 있다. 자신의 말을 아끼고 상대가 말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지도자가 할 일이다. 더구나 진실한 말은 듣기에 아름답지 않고 거친 법이다. 지도자란 그런 듣기 어려운 말을 찾아 들어야 하는 것이다. 정적과도, 야당과도, 위기의 극복을 위한 힘을 모아야 한다. 상대의 마음이 움직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리더쉽이다. 위기일수록 지도자는 천하의 인재를 모으고 천하의 지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자세이다.


나라가 다시 실패와 성공의 갈림길에 서 있다. 세상의 일이란 우리의 앎과 마음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결국 자기가 아는 만큼 세상을 보고, 자신의 마음만큼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낙관도 비관도 정답이 아니다. 그 둘을 조화시킬 수 있어야 정답이다. 차가운 머리가 없는 뜨거운 가슴은 사회를 위험으로 밀어 넣을 것이고, 뜨거운 가슴이 없는 차가운 머리는 미래를 만들 힘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러나 비관보다는 낙관을 이야기 하자.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우리는 항상 밝은 빛을 보고 있으니까-.

  목록  
번호
제목
날짜
26 안민정책포럼 주최 [선진화 토론회] 발제문 요약 06-11-23
25 [박세일/시론] 대한민국의 추락은 막아야 한다 06-11-23
24 [유호열] 햇볕정책 실패 인정 빠를수록 좋다 06-11-23
23 [유호열] 북핵해법을 위한 선택 06-11-23
22 [나성린] 기업 '해외 엑소더스' 걱정된다 06-11-23
21 [이창용] 외환위기, 북핵위기 그리고 경제 06-11-23
20 [이홍구] 시험대 오른 미국의 리더십 06-11-23
19 [유호열] 북 핵실험에 날아간 남 정체성 06-11-23
18 [이수성] 교육에 대한 단상 06-11-23
17 [이홍구] 블레어 정권 10년의 교훈 06-11-23
16 [이인호] 통일지상주의는 현실 외면한 복고주의 06-11-23
15 2009년 신년 메세지 / 박세일 09-01-15
14 실패와 성공의 갈림길에서 / 이홍규 08-12-16
13 [이용환]내우외환의 한 해를 보내면서 08-12-15
12 [2008 묵시록-7] 2030까지와 2050이후 / 김진현 08-12-15
11 [2008 묵시록-6]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환경과 중국 문제군 폭발 / 김진현 08-12-15
10 [2008 묵시록-5] 인류사회-자유시민의 세계화 전개 / 김진현 08-12-15
9 [2008 묵시록-4] ‘중산층에 의한 뉴 마르크시즘'의 예방 / 김진현 08-12-15
8 [2008 묵시록-3] 금융과 안보의 역리(逆理)를 가능케한 ‘로비’라는 부도덕 08-12-15
7 [2008 묵시록-2] 빚은 갚아야 한다는 기본을 어긴 역리(逆理) / 김진현 08-12-15
121 122 123 124 125 126 127 128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