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자원은 한정… 고품질, 수많은 사람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기본주택은 중산층 이하 서민들을 위한 주택이라고 홍보되고, 그 재원 조달이 불투명함에도 불구하고 2022년 대통령선거의 핵심 공약으로 급부상했다. 기본주택의 달콤한 미래는 ‘뉴욕 맨해튼의 성공한 도시재생, 배터리파크 시티’로 홍보됐으나, 사실 배터리파크 시티는 실패한 공공주택 모델이다.
1960년대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위해 마련된 배터리파크 시티는 토지는 정부 소유, 건물만 임대하는 형태로 시작했고 그 배경에는 뉴욕시장 선거가 있었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정의로운 주거 모델’ 정도는 하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러나 배터리파크 시티는 결국 재정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민간에 넘겨져 현재는 뉴욕에서 최상류층이 누리는 고급 주거지가 됐다.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위한다는 정의로운 제도들은 이타심으로 가득한 선량한 시민들을 현혹하기는 쉽지만,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지 않는 이상, 지속 가능할 리 없다. ‘고품질 주택을 저비용으로 수많은 사람에게 공급’한다는 것은 부유층 일부의 표만 포기하고, 중산층 이하 모든 이들의 표를 긁어모으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뿐이다.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고품질’을 포기하거나 ‘수많은 사람’을 포기해야 한다. 자원은 한정돼 있는데 두 가지 모두를 고집한다면, 재정 파탄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러나 정치인이 표를 끌어모으려면, ‘수많은 사람’ 그 자체가 득표수이니 포기하기 어렵고. ‘저품질’은 유권자를 유혹하기 어려우니 그 또한 망설여질 것이다.
재정이 파탄 나거나 말거나 선거에 이겨야 하니 일단 실행하겠다며 고집을 피우는 순간, 미국 배터리파크 시티의 경험을 그대로 답습하게 될 것이다. ‘저소득층과 중산층’은 그곳에서 밀려나고, 공적 자원이 투입된 그곳을 ‘부유층’이 점유하게 된다.
그야말로, 처음의 의도와는 전혀 반대의 결과를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배터리파크 시티는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해 처음에 약속한 저렴한 임대료를 유지하지 못했고, 상승한 임대료는 저소득층을 그곳에서 밀려나게 만들었다. 입주해 처음 몇 해는 모두 행복했으나 몇 년 지나지 않아 거리로 내몰린 것이다.
이러한 미국 배터리파크 시티의 사례는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는 법은 없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저소득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하겠지만, 오늘 하루 따뜻한 방에서 재우고 그 방 서까래 뽑아서 아궁이에 넣어 불 때는 바보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 표를 받고, 내일 그들의 집을 무너뜨린다면 그게 그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기본주택의 재원 조달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의문을 제기해왔다. 그러나 과열된 선거 기간 동안 그 문제의 해법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재정적인 면이 확실치도 않은데 이를 강행할까 염려스러운 것은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시대의 위인들은 빈곤한 사람들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세상의 변화를 갈망하고 해법을 찾으려 고뇌하고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지금 필요한 것은 낭만적인 공상가가 아니라 냉정한 정책가다. 더는 표를 의식해 수혜 대상을 마구 늘려서는 안 된다. 정부 지원 없이는 주거를 영위할 수 없는 사람들을 찾아서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우리 모두 정책가가 돼 재정위기 없는 복지사회 건설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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