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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데일리] 재벌 개혁은 경제민주화가 아니다
 
2021-07-20 09:36:17

◆ 김상철 한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국가전략연구회 부회장을 맡고있습니다. 


경제민주화로 좌초 위기 빠진 한국 자본주의,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야


한국에서 경제민주화로 통용되는 경제민주주의는 원래 사회주의 노동운동에서 출발해 자본주의 소유권을 제한하고 자본의 경제적 권력을 노동자와 사회가 통제하자는 이념으로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시대에 나프탈리에 의해 체계화됐다.
 
나프탈리는 자본 권력에 의한 경제적 독재로 노동자가 노예와 같은 삶을 산다는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인용했다. 이러한 지배구조를 국가의 개입에 의한 계획경제, 핵심 기업의 국유화, 공공경제의 확장 등으로 공공이 통제하도록 바꾸는 경제의 민주화를 통해 사회주의를 건설한 후에 진정한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오늘날에는 경제민주주의는 구(舊)소련이 몰락한 후 중앙집권 방식이 아닌 사회주의 이행이나 반(反)자본주의 길 혹은 자본주의 안에서 노동자의 권력을 강화하는 다양한 시도를 총괄하는 사회민주주의 전략 혹은 신마르크스주의 전략으로 이해된다.
 
한국에서 좌파 진영은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이라 주장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시행하는 나라가 없는 시대착오적인 산물에 불과하다. 경제민주주의가 국가적 차원에서 도입 돼 전국적으로 실시된 나라는 구 유고와 베네수엘라 정도다. 대한민국의 좌파 진영은 차베스의 베네수엘라에서 실시됐던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민중교육에서 가져온 좌파 교육감의 혁신학교를 창의성을 기르는 가치중립적인 자율 학교로 둔갑시켰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사회주의 개념인 경제민주화를 좌파와 우파 모두가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의 흐름’ 혹은 ‘시대정신’으로 강변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이들 가운데 다수는 재벌의 탐욕으로 인한 사회 양극화와 소득불평등 심화가 한국의 근본적 문제라고 강조한다. 한국의 모든 문제가 재벌의 책임이라는 재벌 만악론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 경제의 발전을 위해 재벌 개혁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재벌과 중소기업, 대주주와 소액주주, 대기업 계열사와 골목상권이라는 강자와 약자, 갑과 을, 선과 악의 프레임으로 편을 나누고 한국 경제를 정의롭고 공정하게 이끈다는 감성적 개념으로 경제민주화를 포장해 끊임없이 정치적 동원을 시도했다. 그런데 경제민주주의는 이론적으로 재벌 개혁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다.
 
경제민주주의를 체계화한 나프탈리는 미국의 독점금지법과 독일의 카르텔 규제법인 경제력남용방지법(1923)은 모두 자유경쟁을 보호하고 자유경쟁을 제한하는 협정과 조직을 금지했지만 이는 경제의 민주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에 따르면 이는 본질적으로 한 기업의 다른 기업에 대한 자유를 보호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므로 독점적 기업의 이익에 반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그는 현대자본주의에서 자본의 집중화 속성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자유경쟁을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고 보았다. 따라서 나프탈리에게 핵심적인 것은 국가 권력 강화를 통한 국가의 통제와 노동자가 거대 독점 기업의 경영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나프탈리의 핵심 원칙은 오늘날에도 독일에서 경제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노조의 기본노선에 반영돼 계승되고 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이 주장하는 동반성장론 혹은 초과이익공유제도 경제민주주의와 관련이 없다. 경제민주주의는 자본과 노동자의 권력의 문제가 핵심인 것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갑과 을 혹은 적대적 관계로 상정하여 창출된 부의 분배 몫을 다투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제학자 크리스토프 부쉬가 밝힌 바와 같이 독일은 소위 ‘히든챔피언’의 나라로 불릴 정도로 중소기업이 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중소기업 진흥책과 경제민주주의는 관계가 없다.
 
최근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거론하는 사례가 이스라엘의 복합기업(conglomerate) 해체다. 네이버 댓글 조작 혐의로 구속된 ‘드루킹’ 김모 씨도 이스라엘 식 재벌 개혁의 신봉자였다. 이스라엘의 재벌개혁은 2011년 7월 45만명의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시작됐다. 이스라엘은 다른 서구 나라들에 비해 사회적 불평등이 심한 편이고 빈곤율도 높다. 사회운동가이며 비디오 아티스트인 다프니 레프(Daphni Leef)라는 여성이 집에서 쫓겨나 길거리에 텐트를 치고 페이스북에 사정을 알리면서 시위가 시작돼 전국적으로 번져나갔다.
 
이러한 시위를 촉발한 원인으로 이스라엘의 부패와 정경유착이 지적됐다. 이스라엘 경제는 최첨단 기술 분야와 일반소비재에서 자동차 수입까지 장악한 독점유통업체의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그런데 정경유착으로 소수가 큰 부를 누리고 있었다. 당시 이스라엘 10대 그룹은 전체 상장사 시가 총액의 41%를, 6대 그룹의 매출액은 국내총생산의 25%를 각각 차지했다. 이스라엘은 80년대 말 경제위기를 계기로 국영기업을 민영화했다. 지주회사 아래 금융과 비금융 자회사를 동시에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해왔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민간기업들이 금융사를 무제한 소유하게 됐다.
 
시위에서 요구 사항은 임대료의 안정과 생필품 가격의 인하에서 사회정의로 변화했다. 이스라엘은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트라텐부르크(Tratenburg)위원회를 설치해 대책을 발표했다. 2013년 이스라엘 의회는 ‘경쟁 촉진 및 집중 감소를 위한 법률’이라는 공식 명칭인 집중금지법(Anti-Concentration Law)을 통과시켰다. 이 법을 통해 의회는 이스라엘의 부패와 높은 생필품 가격의 원흉인 거대 복합기업을 해체했다.
 
법의 주요 조치는 피라미드식 소유구조의 제한과 금산분리다. 법에 따라 신규 피라미드식 지주회사는 2단계 구조만 허용되고 기존의 기업집단은 4년 이내에 3단계의 구조로 축소되며 6년 이내에 2층의 피라미드 구조를 만들도록 했다. 또 기업은 자산이 400억셰켈(약 12조원) 이상인 금융기관과 매출 규모가 60억셰켈(약 1조8000억원) 이상의 비금융회사를 동시에 소유할 수 없게 된다.
 
이스라엘의 재벌개혁을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규제 강도가 더 세다고 하기 어렵다. 이스라엘의 경우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10대 그룹 이하의 기업은 은행 소유도 가능할 것이다. 한국 대기업과 이스라엘 대기업의 차이는 한국의 대기업은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비중이 높은 글로벌 기업인데 반해 이스라엘의 대기업은 대부분의 매출을 자국에서 올리는 토종 기업이라는 점이다. 이스라엘 기업 가운데 글로벌 100대 기업은 하나도 없다. 이스라엘은 제조업이 매우 취약하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의 경제 모델이 될 수 없다.
 
세계사적 보편성과 연관이 없는 기형적인 형태로 발전하였음에도 경제민주화 담론은 한국에서 진지전 승리를 쟁취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지난 35년간 한국 사회와 경제를 좀먹어온 암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칙에 위배되는 과다한 정부 개입과 규제로 경제의 활력은 감소했다. 기업의 투자는 위축됐고 공장은 해외로 이전했다. 중소기업의 과다한 보호는 구조 조정을 저해하여 좀비기업의 퇴출을 가로막아 기업생태계의 역동성을 떨어뜨렸다.
 
이는 일자리 감소, 경제성장률 하락과 미래 먹거리 산업의 국제 경쟁력 저하로 귀결됐다. 2003년 이후 일인당 국민소득에서 한국에 뒤진 대만이 2023년에는 재역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는 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 등 대만 기업들이 호성적을 거둔 덕분이다.
 
국가의 명운이 걸려있는 세계 반도체 전쟁에서 한국의 기업 총수는 정치재판으로 범죄자 신분이 돼 감옥에 있다. 세계에 유례없는 높은 상속세와 반기업 정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경제민주화로 한국 자본주의는 좌초 위기에 처해있다. 사회주의 포퓰리즘으로 망한 베네수엘라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시대착오적 산물인 경제민주화의 미몽에서 하루 빨리 깨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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