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담당대사는 한반도선진화재단 대외정책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제정 로마 전성기의 황제들은 자신의 대를 이어 로마를 가장 잘 이끌어갈 만한 인재를 찾아 양자로 영입한 후 친자식 대신 후계자로 임명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황제들이 권력을 집안의 배타적 기득권으로 여기고 황위를 자식에게 유산으로 넘기면서부터 로마의 몰락이 시작됐다.
그간 말도 많고 구설도 많았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경질되고 후임으로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내정됐다. 우리 외교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갖기보다는 더욱 깊은 좌절감을 느끼는 건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번 외교장관 인사는 지난 수년간 많은 국내외 외교안보 현안 앞에서 존재가 사라져 유명무실해진 외교부의 재건과 한국 외교의 정상화를 기대해 오던 많은 사람에게 두 가지 깊은 좌절감을 안겨준다.
첫째는, 외교부 장관 교체의 배경에 관한 것이다. 지난해 6월 김여정 북한 노동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 방조를 비난하면서 “사죄와 반성, 재발 방지”를 요구한 지 2주 만에 통일부 장관이 사퇴했다. 또, 같은 달 김 부부장 휘하의 김영철 당중앙위 부위원장이 비난 담화를 내놓은 지 2개월 만에 국방부 장관도 경질됐다.
그 후 지난달 김 부부장이 강 장관의 북한 코로나 방역 관련 발언을 한 걸 두고 “주제넘은 망언”이라며 “정확히 계산해야 할 것(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맹비난한 이래 ‘김여정의 데스노트’에 오른 강 장관의 교체 여부는 외교가의 큰 관심사였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최대의 가상적국인 북한이 우리 외교안보 장관들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게 사실이라면 그 후임 장관들은 대체 어디를 향해 충성을 바치게 될지 우려스럽다.
둘째는, 외교장관 후임 인선이 의미하는 정책적 지향성에 관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인사가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등 변화에 맞춰 외교 라인에 활력을 불어넣고 재정비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 대외 정책의 일대 변화가 예고되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맞춰 과거의 전략적 오류들을 수정하고 새로운 정책 대안을 모색하려는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주선한 두 차례 미·북 정상회담의 기본 전제가 된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김정은 위원장에 의해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또, 북한은 지금도 연일 ‘핵무력 강화’와 대남 군사력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이미 실패가 입증되고 북한마저 외면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는 허상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모양새다. 그 집요함은 경제 분야의 소주성 정책이나 부동산 정책과 닮은꼴이다.
20일 취임한 바이든 미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톱다운 방식 협상을 비판하고 실무적 비핵화 협상을 우선시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명백히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매개로 동맹국들과 협력해 대중(對中)·대북(對北) 압박 외교를 추진할 방침임을 예고해 왔다. 이처럼 급변하는 외교 환경 속에, 동맹국과의 협력을 기피하면서 한·미 공동의 가상적국인 북한과 중국의 환심을 사는 데 매진해 온 문 정부의 기형적 외교정책이 설 땅은 더욱 좁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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