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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대북전단금지법은 ‘북한체제보위법’… ‘한국=문명국’ 인지 의구심 불러
 
2020-12-28 16:09:20

◆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담당대사는 한반도선진화재단 대외정책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대북전단금지법과 인권

文정부 법 강행 땐 ‘韓 인권시계’ 독재시절로 되돌려… 30여년 만에 글로벌 인권운동 타깃 전락
인권은 국내문제 아닌 인류 보편적 현안… 국제사회 개입을 ‘내정간섭’ 논리로 거부 못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을 살포하거나 대북 확성기 방송 등을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대북전단금지법’이 국회와 국무회의를 통과해 공포를 앞두고 있다. 지난 6월 북한 노동당 김여정 제1부부장의 ‘엄중 경고’에 따라 서둘러 추진됐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이 법안은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별명까지 붙어 있다.

국회 절대 의석을 가진 여권이 다수의 힘으로 법안들을 통과시키는 일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의 경우는 파장의 차원이 좀 다르다. 그 충격파가 국제사회로 파급되고, 그 여파로 한국이 ‘국제인권운동의 타깃’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북전단금지법은 북 정권의 뜻에 따라 대북 인권 개선 활동을 봉쇄하려는 ‘북한체제보위법’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이는 미국 등 자유진영과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문명국가인지에 대한 근본적 의구심을 부른다. 인권 문제는 ‘내정간섭’이라는 논리로 국제사회의 개입을 거부할 수 없는 인류 보편적 현안이다.

◇국제인권운동 타깃 된 한국

과거 1970∼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던 범세계적 ‘민주주의와 인권’ 캠페인의 주요 타깃이었다. 휴먼라이츠워치(HRW), 국제사면위원회(AI)와 같은 국제인권단체들이 한국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운동을 벌였고, 미국 의회에서는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톰 랜토스 상원의원, 토머스 폴리에타 하원의원 등이 빈번하게 한국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청문회, 결의안, 연서 서한 등으로 한국 정부를 압박했었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를 계기로 그들의 관심은 점차 한국에서 떠났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나라가 됐고, 한국의 인권은 더 이상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국회의 대북전단금지법 채택을 계기로 그들이 30여 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조짐이다. 초점은 민주주의의 토대이자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랄 수 있는 ‘표현의 자유’와 ‘인권’ 문제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최근 성명을 통해 “대북전단금지법이 한국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인도주의와 ‘인권’을 위한 활동을 범법 행위로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토마스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한국 정부가 표현의 자유에 기초한 행위를 범죄로 간주해 처벌하려는 시도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국제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랜토스 상원의원을 기리고자 미 의회에 설치된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는 내년 1월 대북전단금지법 등에 관한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등 선진국의 정치권도 깊은 우려와 관심을 내보이고 있다.

◇인권은 국경 넘는 보편 현안

17세기 유럽에서 베스트팔렌조약으로 근대 주권국가체계가 형성된 이래 국가 주권은 절대적인 것이었고 아무도 타국의 국내문제에 개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내문제 불간섭에 대한 단 하나의 예외가 생성됐다. 그것이 국제적으로 공인돼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바로 인권문제다. 인권문제는 국경을 초월하는 인류 보편적 현안으로서, 유엔은 물론 여러 인권 협약에 의해 국제사회의 개입이 허용된다. 인권문제에 관한 한, 국가는 국내문제 불간섭원칙을 원용해 타국이나 국제기구의 개입을 거부할 수 없다.

물론 중국이나 북한처럼 인권문제가 심각한 나라들은 타국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한국도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한반도 안보 정세의 특수성’을 내세워 인권 제한을 합리화하면서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개입에 저항했었다. 그러한 반박 논리의 개발은 독재정권에 대한 정치인과 공직자의 충성도를 평가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요즘 정·관계를 포함한 집권세력이 대북전단금지법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비판에 ‘내정간섭’이라며 대응 논리 마련에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 역사가 30년 이전으로 성큼 되돌아간 느낌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1990년대 초 소련과 동유럽 공산 국가들이 몰락한 이면에는 인권문제가 핵심 요인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1975년 동서 양 진영 35개국 사이에 체결된 헬싱키협정에 따라 서유럽 국가들은 점차 동유럽 공산권의 인권문제를 공식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헬싱키체제가 소련 진영 체제 붕괴의 매우 직접적 원인 중 하나가 됐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동·서독 통일도 서독 정부가 경제 지원의 대가로 동독 측에 이산가족 방문 허용, 서독방송 청취 허용, 정치범 석방 등 인권 개선을 강력히 요구해 관철했기에 가능했다.

내년 초 출범할 바이든 행정부 역시 ‘민주주의와 인권’을 대외정책의 최고 가치이자 목표로 추구할 전망이다. 미·중 패권 대결에서도 인권문제를 주된 무기로 동맹국들과의 연대 아래 홍콩 문제, 신장위구르 문제, 중국 민주화 등 문제에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문제도 핵 문제보다 인권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는 시점에 등장한 대북전단금지법 논란은 한국의 국가적 정체성과도 직결된 사안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제기되는 비판은 두 가지다. 첫째는 북한 주민들에게 북한 실상과 외부세계 정보를 알리는 수단인 전단·확성기·전광판 등을 모두 금지함으로써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적 대의에 역행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런 활동을 범죄로 간주해 처벌함으로써 한국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민주주의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北 체제보위법’이란 비판

정부는 지난해 11월 동해에서 나포된 북한 주민 2명을 판문점을 통해 강제 북송했고,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도 연이어 불참했다. 그런 정부가 대북전단금지법을 통해 거듭 보여주고 있는 북한 인권에 대한 일관된 거부 자세는 한국이 과연 미국 및 그 동맹국들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문명국가인지에 대한 근본적 의구심을 초래한다.

정부는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 자유가 아닐 뿐 아니라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남북군사합의를 통해 접경지역의 정찰활동과 방어훈련을 포기하고 남침 저지용 지뢰까지 제거한 정부의 변명으로는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대북전단금지법은 외부 정보 유입으로 인한 체제 동요를 우려하는 북한 정권의 뜻을 ‘받들어’ 대북 인권 개선 활동을 범죄로 규정하고 이를 봉쇄하려는 ‘북한체제보위법’이라는 국내외적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전 북핵 대사·외교부 차관보


■ 세줄 요약

국제인권운동 타깃 된 한국 : 청와대와 여당의 대북전단금지법 밀어붙이기는 민주주의의 토대이자 기본권 중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인권’ 침해 문제를 불러옴. 그 충격파가 국제사회로 파급되고, 한국이 ‘국제인권운동의 타깃’으로 부상함.

인권은 국경 넘는 보편 현안 : 인권문제는 국경을 초월해 작용하는 인류 보편적 현안이자 유엔 등 여러 인권 협약에 의해 예외적으로 국제사회의 개입이 허용되는 사안임. 인권문제에 관한 한 특정 국가는 ‘내정 불간섭원칙’ 논리를 내세우지 못함.

‘北 체제보위법’ 비판 : 대북전단금지법 강제 시행은 한국이 선진국과 가치를 공유하는 문명국가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부름. 이 법은 대북 인권 개선 활동을 범죄로 규정하고 이를 봉쇄하려는 ‘북한체제보위법’이라는 국내외적 비판을 면키 어려움.


■ 용어 설명

‘휴먼라이츠워치’는 인권 변호·연구를 수행하는 비영리 단체. 1978년 소련의 ‘헬싱키협약’ 위반을 감시하기 위해 설립한 ‘헬싱키워치’의 후신으로, 동구·개발도상국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음.

‘베스트팔렌조약’은 1648년 종교전쟁을 끝내고 영토국가를 국가체제의 초석으로 놓은 조약. 신성로마제국을 사실상 붕괴시키고, 주권국가 공동체인 근대 유럽의 정치구조를 출현시키는 계기가 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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