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준 명지대학교 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치개혁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명수 대법원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등 5부(府) 요인과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대통령과 5부 요인이 국정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만나는 건 바람직하다. 문제는 회동 시점과 발언 내용이다. 그날, 문 대통령이 재가한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2개월 처분의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법원의 첫 심문이 있었다. 윤 총장 측은 집행정지 신청을 “대통령 처분에 대한 소송”이라고 밝혔다. 또, 자신에게 정직 2개월을 내린 검사징계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법원과 헌재에 제기된 윤 총장 관련 소송들의 당사자다. ◆ 칼럼 원문을 보시려면 아래[칼럼원문보기]를 클릭하세요.
그런데 그 당사자가 판결을 내리는 법원과 헌재의 수장을 불러 놓고 “요즘 권력기관 개혁 문제로 여러 가지 갈등이 많다. 각별히 관심을 갖고 힘을 모아 달라”고 했다. 어떻게, 무슨 힘을 모아 달라는 건지 궁금하다.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법원과 헌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만한, 대단히 부적절한 행동이다. 묵시적 청탁이나 사법농단으로 비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하라”고 주문했다. 윤 총장의 죄라면 한 치의 정무적 판단도 없이 문 대통령의 명을 충실히 수행한 것밖에 없다. 울산시장선거 개입 의혹 사건,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 등 권력 비리 수사에 몰입했다. 그러자 대통령과 여권은 돌변했다. 윤 총장은 검찰개혁을 방해하는 ‘찍어내기’ 대상으로 전락했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칼을 빌려 윤 총장을 죽이는 ‘차추살윤(借秋殺尹)’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의 화룡정점은 아마도 대통령과 5부 요인과의 전격 회동이라 할 수 있다. 책임 윤리가 투철하고 제대로 된 대법원장이나 헌재소장이라면,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사법부와 헌재 독립성 차원에서 단호하게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 사법부와 헌재는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이기 때문이다. 권력이 사법부를 장악하면서 발생하는 ‘사법의 정치화’는 민주주의를 흔드는 적(敵)이다.
2018년 11월 존 티거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방법원 판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반이민 행정명령의 중지 판결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가 “제동을 걸었다”고 맹비난했다. 이에 존 로버츠 연방 대법원장은 “우리에게 오바마 판사, 트럼프 판사는 없다. 오직 법 앞에 호소하는 사람에게 공정하고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헌신적인 판사들이 있을 뿐”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맞섰다. 대통령 발언으로 ‘사법부 독립성’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을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용기 있게 행동한 것이다.
미국의 이 사례는 정파적 이해를 넘어 ‘독립적인 사법부’를 지키는 게 대법원장의 책임이고 소명임을 일깨워 줬다. 더불어 “어떤 정치적 압박에도 ‘견제와 균형’이라는 대원칙을 지키는 게 민주주의의 힘”이라는 사실도 보여줬다. 촛불 민주 정권이라고 자부하는 현 정권에서 과거 권위주의 정부 때 만연했던 독립적인 헌법기관들을 정권 하수인 취급하는 제왕적 관행들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사법부와 헌재의 독립성이다.
번호 |
제목 |
날짜 |
---|---|---|
1832 | [데일리안] 정직하지 않는 군대로는 국민을 보호할 수 없다 | 21-02-08 |
1831 | [서울경제] 우리 사회 기생충은 누구인가 | 21-02-08 |
1830 | [한국경제] 이익공유제 법제화, ISD 부른다 | 21-02-04 |
1829 | [국민일보] 안전가옥엔 미래가 없다 | 21-02-04 |
1828 | [문화일보] ‘北 원전 방안’ 누가 왜 만들고 지웠나 | 21-02-03 |
1827 | [뉴데일리] 文 정부의 안보‥ 오답만 선택하는 공부 못하는 학생 | 21-02-03 |
1826 | [스카이데일리] 한국의 외교적 고립, 한·일관계 개선으로 탈피해야 | 21-02-03 |
1825 | [문화일보] 한미훈련 미적대는 軍수뇌부 죄책 | 21-02-03 |
1824 | [아시아경제] 노동당 8차 당 대회 이후의 과제 | 21-02-02 |
1823 | [주간한국] 야권은 ‘후보단일화’만이 살길…원칙 지켜야 | 21-02-01 |
1822 | [서울경제] 미국 프로스포츠 리그 따라하기? | 21-02-01 |
1821 | [데일리안] 지정감사제 수술해야 하는가? | 21-01-29 |
1820 | [여성신문] ‘피해자다움’이란 결코 없다 | 21-01-28 |
1819 | [스카이데일리] 북핵 대응, 미국에 미루지 말고 현 정부가 나서야 | 21-01-27 |
1818 | [문화일보] 망국적 퍼주기 3法과 나약한 기재부 | 21-01-26 |
1817 | [데일리안] 북핵 위협: 미국에 의존하는 대신 정부부터 직시해야 | 21-01-25 |
1816 | [서울경제] 쿤데라씨의 질문 | 21-01-25 |
1815 | [국민일보] 조세정책은 정당성 못지않게 국민 수용성 뒷받침 필요 | 21-01-25 |
1814 | [서울경제] 인식과 기조 바꾸면 소통 시작된다. | 21-01-22 |
1813 | [문화일보] 北 데스노트 뒤 장관 줄줄이 바뀐 나라 | 21-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