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0 14:14:32
◆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의 칼럼입니다.
두 번 미뤄진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오늘 열린다. 그 사이 이 사안은 큰 파장을 일으키며 어지럽게 전개됐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대한법학교수회는 법치가 훼손됐다고 꼬집었고, 외부 인사로 구성된 법무부 감찰위원회와 서울행정법원도 절차의 흠결을 지적했다. 검사들이 들끓으면서 법무부 차관과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 물러났다. 검찰총장이 헌법소원을 내고 징계 절차를 멈춰 달라는 가처분을 신청하자, 법무부는 직무배제 처분을 정지시킨 1심 판단에 불복해 즉시항고했다. 오늘 어떤 결론이 나도 이제 검찰총장 거취는 정국의 뇌관이 됐다.
검찰총장을 내치려는 이번 조치에 대한 세간의 눈초리는 싸늘하다. 검찰 개혁을 위한 고육책이라는 평가보다 검찰을 길들이려 양의 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파는 편법이라는 여론이 우세하다. 어느 편이 진실이든 일이 이렇게까지 꼬인 건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인 견제와 균형, 그리고 적정 절차를 너무 가벼이 여긴 탓이다. 신보수주의의 대부 어빙 크리스톨(전 뉴욕대 교수)의 일갈이 생각난다. “질서가 정의의 기초이지,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법무부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밑바탕에 깔린 과욕과 자만이다. 민주주의의 충분조건인 공화의 덕목(존중·인내·절제·숙의와 관용)은 오간 데가 없다. 이번만 그런 게 아니다. 총선 압승 후 기고만장해진 여권의 독주에 가속이 붙었다. 다수가 절대선인 양 거침이 없다. 기관장더러 “한 번 살려주십시오”라고 간절히 말해보라는 둥 언동도 방자하다.
민주화 이후 30년 넘게 이어진 관행을 깨고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여당이 독식해 버렸다. 인사청문회는 형식적인 통과의례로 전락했다. 월성 원전의 경제성 평가 의혹을 파헤치던 감사원장은 여당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야당 반대도 아랑곳없이 통과시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을 다시 바꾸자고 덤빈다. 아파트 공시가격의 지역별 상승률에 멋대로 차등을 두는 재량 남용도 서슴지 않는다. 문명사회의 가치와 부합하는 대북 전단 살포를 처벌하는 법까지 만들 태세다.
정부·여당의 이런 과속 일방통행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공식 기구는 사법부뿐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검찰총장을 복귀시킨 것도 서울행정법원 아니었던가. 18세기 말 건국을 앞둔 미국에선 제헌 논의가 한창이었다. 제임스 매디슨(제4대 대통령), 알렉산더 해밀턴(초대 재무장관), 존 제이(초대 대법원장)는 주(州)의 연방헌법 비준을 촉구하는 논고 85편을 차례로 펴냈다. 셋 다 미국의 국부로 추앙되는 위인들이다. 유달리 다수파의 지배를 경계했던 ‘헌법의 아버지’ 매디슨은 “야망은 야망의 통제에 쓰여야 한다”라는 명언으로 정부 안의 견제와 균형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입법권과 행정권이 한 사람이나 같은 부류에 쏠리면 자유는 사라진다”고 봤다. 사법부라도 중심을 잡아야 파국을 면할 수 있다. 해밀턴은 “사법부는 헌법 수호자다. 선출직에 맞설 연방 판사는 종신직이라야 한다. 입법부나 행정부의 헌법 위반·우회를 막을 판사에겐 불굴의 용기가 필수다”라고 썼다.
위정자에게 자만은 독약이다. 힘셀수록 절제하고, 일이 잘 풀릴수록 진중해야 한다. 1912년 초대형 호화 여객선 타이태닉호는 처녀항해 도중 빙산에 부딪혀 침몰했다. 1차 원인은 첨단선의 위용에 대한 승무원들의 과신이었다. 통신원들은 여러 차례 유빙 경고 메시지를 받았지만, 들뜬 나머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돛대 위 항로 관측자는 쌍안경을 빼놓고 근무하다가 다가오는 빙산을 뒤늦게 알아챘다. 기술적으론 (용접기술이 나오기 전) 배 철판을 이은 불량 리벳이 사고의 장본으로 훗날 밝혀졌다. ‘불침선’으로 불렸던 거함이 한낱 못 때문에 가라앉은 셈이다. 부품 하나, 일거수일투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때론 창업보다 수성(守城)이 더 어렵다. 고비를 넘기며 싹튼 자만심 탓이다. 미국 보수평론가 로스 다우덧은 ‘편안한 무감각’(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히트곡)은 독배라고 경고했다. 고 이건희 회장은 1995년 삼성 휴대전화 15만대를 몽땅 불태워버렸다. 선지자 요나가 악행을 일삼던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의 멸망을 예언하고, 5세기 훈족 아틸라왕이 로마 궁궐을 포위했던 건 그나마 다행이랄까. 경보시스템도 없이 혼계(混系)는 뿌리치고 동종교배의 우리에 머무르면, 그 앞날이 불 보듯 뻔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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