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0 12:05:22
◆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의 칼럼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개인의 존엄이 받들어지는 만큼 가정·마을·지역·나라에 대한 책임도 다해야 하며 각자의 권리와 자유는 공동체 발전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정치철학자 필립 페팃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자유의 핵심을 남에 대한 ‘비(非)간섭’, 공동체 유지의 기초를 다수의 소수에 대한 ‘비(非)지배’라고 했다. 곧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작동 원리는 개입·강요가 아니라 교육·자각·자율이다. 고(故) 박세일 교수가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자유주의”(공동체자유주의)를 강조한 배경이다.
18세기 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역작 ‘도덕 감정론’에서 자유로운 사회에서도 질서가 유지되는 까닭을 인간 본성인 공감 능력에서 찾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할 수 있기에 상대가 용인할 수준으로 이기심을 억누른다는 것이다.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엘리너 오스트롬의 공동체 거버넌스 이론도 그 결이 같다. 그녀는 주인 없는 공유지가 남용·고갈되는 비극을 막으려면 구성원 모두의 의사 결정 참여와 소통, 신뢰와 호혜성이 필수라고 설파했다.
오스트롬의 주장을 김홍우 서울대 교수는 이렇게 풀이했다. “어떤 제도의 성공은 ‘무엇’보다 ‘어떻게’에 더 좌우된다. 오스트롬의 용어를 빌리면 ‘자율적으로 제도를 설계하는 자유’가 중요하다. 제도를 수용한 사람들이 주축이 된 집단 내부에서 숙성된 제도는 성공하지만 외부로부터 강요되는 규칙에 바탕을 둔 정책은 실패하기 쉽다.” 그는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농노 해방이 실패로 끝났으나 미국 혁명과 노예 해방이 성공한 건 ‘주(州) 정부’라는 자치제도 덕분이라고 진단한다. 콜린 듀크 조지메이슨대 교수의 분석도 비슷하다. 그는 프랑스 러시아 중국에서의 혁명과 달리 미국 혁명은 개인의 존엄·자율과 절제가 중시됐고 성경도 영향을 미쳐 차분하게 진행됐기에 성공했다고 본다.
공동체자유주의 관점에서 사회적 동물의 일부가 인간보다 진화한 모습을 보이는 점은 흥미롭다. 제럴드 윌킨슨 메릴랜드대 교수가 관찰한 흡혈박쥐가 대표적인 예다. 흡혈박쥐는 누구의 간섭이나 단체 규율도 없이 자유롭게 먹이 활동에 나선다. 그런데 먹이 활동이 신통치 않아 굶주린 박쥐는 귀소(歸巢)한 뒤 포식한 동료가 토해 주는 피로 연명한다. 종종 배부른 박쥐가 불운한 동료를 찾아 헤매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흡혈박쥐의 먹이 공유는 ‘호혜적 이타성’에 따른 행태로 추정된다. 시혜자와 수혜자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상황에 따라 뒤바뀌기 때문이다. 종종 은전을 입은 박쥐가 도와준 동료의 털을 정성스레 골라주기도 한다. 보은하는 셈이다. 맨프레드 밀린스키 스위스 베른대 교수에 따르면 호혜적 이타성은 포식자에 노출될 위험이 커 척후병 역할을 번갈아 맡는 ‘실고기’에서도 포착된다.
사회적 동물의 표상인 꿀벌도 분업과 헌신에 힘입어 효율적으로 공동체를 꾸려나간다. 그러나 각 개체의 역할이 태생적으로 배정된 탓에 개체의 존엄과 자율은 무시된다. 더욱이 세습 여왕벌의 지배력이 막강해 꿀벌 공동체는 자유주의와 꽤 거리가 있고, 오히려 군주정이나 전체주의와 닮았다. 인간에겐 흡혈박쥐보다 더 친숙하고 유익한 꿀벌이지만 공동체자유주의 기준으로 보면 낙제점이다. 굳이 선택하라면 꿀벌이 아니라 징그럽긴 해도 흡혈박쥐로 태어나고 싶다.
의사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을 둘러싼 갈등이 한창이다. 가만둬도 인구당 의사 수가 2028년이면 선진국 평균을 추월할 터인데, 재정 부담만 늘리는 엇박자 정책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얼마 전 통과된 3차 추가경정예산과 ‘임대차 3법’은 민의의 전당에서 경청·토론·절충하는 핵심 과정을 사실상 건너뛰었다. 경제계가 반대해온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안,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원안대로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일사천리로 추진된 검찰 조직 개편과 그 후속 인사의 파장도 상당하다. 공동선 구현에 필요한 ‘비(非)지배’와 ‘자율적으로 제도를 설계하는 자유’를 간과한 사례들이다.
2017년 취임한 닐 고서치 미국 연방대법관 글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정부가 작동하려면,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양보·인내해야 한다. 정치가 양극화된 지금은 상대에 귀를 더 기울여야 한다.” 정책을 뿌리내리려면 20년 집권을 꾀하기에 앞서 소통부터 늘리고 신뢰와 호혜성을 높여야 한다. 박쥐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 순 없지 않은가.
18세기 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역작 ‘도덕 감정론’에서 자유로운 사회에서도 질서가 유지되는 까닭을 인간 본성인 공감 능력에서 찾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할 수 있기에 상대가 용인할 수준으로 이기심을 억누른다는 것이다.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엘리너 오스트롬의 공동체 거버넌스 이론도 그 결이 같다. 그녀는 주인 없는 공유지가 남용·고갈되는 비극을 막으려면 구성원 모두의 의사 결정 참여와 소통, 신뢰와 호혜성이 필수라고 설파했다.
오스트롬의 주장을 김홍우 서울대 교수는 이렇게 풀이했다. “어떤 제도의 성공은 ‘무엇’보다 ‘어떻게’에 더 좌우된다. 오스트롬의 용어를 빌리면 ‘자율적으로 제도를 설계하는 자유’가 중요하다. 제도를 수용한 사람들이 주축이 된 집단 내부에서 숙성된 제도는 성공하지만 외부로부터 강요되는 규칙에 바탕을 둔 정책은 실패하기 쉽다.” 그는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농노 해방이 실패로 끝났으나 미국 혁명과 노예 해방이 성공한 건 ‘주(州) 정부’라는 자치제도 덕분이라고 진단한다. 콜린 듀크 조지메이슨대 교수의 분석도 비슷하다. 그는 프랑스 러시아 중국에서의 혁명과 달리 미국 혁명은 개인의 존엄·자율과 절제가 중시됐고 성경도 영향을 미쳐 차분하게 진행됐기에 성공했다고 본다.
공동체자유주의 관점에서 사회적 동물의 일부가 인간보다 진화한 모습을 보이는 점은 흥미롭다. 제럴드 윌킨슨 메릴랜드대 교수가 관찰한 흡혈박쥐가 대표적인 예다. 흡혈박쥐는 누구의 간섭이나 단체 규율도 없이 자유롭게 먹이 활동에 나선다. 그런데 먹이 활동이 신통치 않아 굶주린 박쥐는 귀소(歸巢)한 뒤 포식한 동료가 토해 주는 피로 연명한다. 종종 배부른 박쥐가 불운한 동료를 찾아 헤매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흡혈박쥐의 먹이 공유는 ‘호혜적 이타성’에 따른 행태로 추정된다. 시혜자와 수혜자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상황에 따라 뒤바뀌기 때문이다. 종종 은전을 입은 박쥐가 도와준 동료의 털을 정성스레 골라주기도 한다. 보은하는 셈이다. 맨프레드 밀린스키 스위스 베른대 교수에 따르면 호혜적 이타성은 포식자에 노출될 위험이 커 척후병 역할을 번갈아 맡는 ‘실고기’에서도 포착된다.
사회적 동물의 표상인 꿀벌도 분업과 헌신에 힘입어 효율적으로 공동체를 꾸려나간다. 그러나 각 개체의 역할이 태생적으로 배정된 탓에 개체의 존엄과 자율은 무시된다. 더욱이 세습 여왕벌의 지배력이 막강해 꿀벌 공동체는 자유주의와 꽤 거리가 있고, 오히려 군주정이나 전체주의와 닮았다. 인간에겐 흡혈박쥐보다 더 친숙하고 유익한 꿀벌이지만 공동체자유주의 기준으로 보면 낙제점이다. 굳이 선택하라면 꿀벌이 아니라 징그럽긴 해도 흡혈박쥐로 태어나고 싶다.
의사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을 둘러싼 갈등이 한창이다. 가만둬도 인구당 의사 수가 2028년이면 선진국 평균을 추월할 터인데, 재정 부담만 늘리는 엇박자 정책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얼마 전 통과된 3차 추가경정예산과 ‘임대차 3법’은 민의의 전당에서 경청·토론·절충하는 핵심 과정을 사실상 건너뛰었다. 경제계가 반대해온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안,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원안대로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일사천리로 추진된 검찰 조직 개편과 그 후속 인사의 파장도 상당하다. 공동선 구현에 필요한 ‘비(非)지배’와 ‘자율적으로 제도를 설계하는 자유’를 간과한 사례들이다.
2017년 취임한 닐 고서치 미국 연방대법관 글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정부가 작동하려면,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양보·인내해야 한다. 정치가 양극화된 지금은 상대에 귀를 더 기울여야 한다.” 정책을 뿌리내리려면 20년 집권을 꾀하기에 앞서 소통부터 늘리고 신뢰와 호혜성을 높여야 한다. 박쥐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 순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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