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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범죄수사 현실도 못 본 수사권 조정안
 
2020-08-05 11:37:21
◆김종민 법무법인(유한) 동인 변호사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사법개혁연구회 회장 · 프랑스연구포럼 대표로 활동 중입니다.
                   

김종민 변호사 前 대검 검찰개혁委 위원

순천지청장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특수 전담 검사가 어느 중견 건설 업체에 대해 압수수색하겠다는 보고서를 들고 왔다. 관내 대규모 아파트단지 개발사업 과정에 위법 소지가 있다는 감사원 수사 의뢰 사건 내사 도중 비자금 계좌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정기인사가 임박한 시점이라, 계좌추적 등 최대한 내사를 진행한 뒤 후임 수사팀에 인계하도록 했다. 결국, 검찰은 1000억 원대의 비자금을 밝혀냈고, 오너 일가가 구속됐다. 전 광주지방국세청장 등 다수의 전·현직 공무원이 뇌물수수 등으로 기소돼 처벌됐다.

검찰 수사는 이런 것이다. 위 사건에서 수사 단서가 된 감사원 수사 의뢰에는 비자금 계좌나 뇌물에 관한 내용이 없었다. 검찰이 치밀한 내사와 추적 끝에 비자금 계좌를 찾아냈고, 수사에 성공했다. 대형 범죄들은 대부분 사소한 경찰 송치사건이나 고소·고발장 같은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1994년 20대 7명이 5명을 연쇄 살해한 지존파 사건도 당시 남원지청 검사였던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승용차 추락 단순 교통사고로 보고된 변사사건에 의문을 품고 경찰에 보완 수사를 지시해 밝혀낸 것이다.

수사권 조정 방안이 실제로 시행되면 검찰은 위와 같은 기업 비자금 사건이나 권력형 범죄 수사를 할 수 없다. 수사를 해 봐야 뇌물액수가 3000만 원이 넘는지, 횡령·배임 금액이 5억 원이 넘는지 알 수 있는데, 시작도 못 하기 때문이다. 일선 수사 현장에서의 대혼란도 불가피하다. 수사를 하다 보면 추가로 인지(認知)되는 사건이 적잖은데, 검찰·경찰·공수처의 수사 관할이 겹치면 사건을 분리해 관할 수사기관으로 이송해야 한다. 공범이나 참고인 수사의 차질은 물론 엄청난 비효율과 형사사법 비용이 증가한다.

지금까지 검찰과 경찰은 상호 어떤 제한도 없이 모든 범죄를 수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검찰은 4급 경찰 공무원을 제외한 경찰 비리 수사를 할 수 없고, 공직자 부패범죄 수사에서 손을 떼야 한다. 지역 토호 세력과 유착된 토착 비리 수사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고위직과 하위직 공무원이 연결된 단일한 뇌물사건을 검찰·경찰·공수처가 각각 나눠 수사해야 하는 일도 생기게 된다. 국가나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결과적으로 검찰의 무력화, 경찰만을 위한 수사권 조정이 돼 버렸다.

형사사법의 최우선 목표는 범죄로부터의 사회 방위다. 좋은 형사사법 제도는 효과적이어야 한다. 범죄 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전문화된 수사 인력과 예산을 집중시키고 수사 수단을 강화하는 저비용 고효율의 제도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수사권 조정 방안은 그런 점에서 개혁 취지에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다. 검찰청법에 6대 범죄는 제한 없이 수사하도록 규정해 놓고, 근거 없이 시행령에서 수사 범위를 다시 제한하는 것은 법률이 헌법에 위반될 수 없듯이 위법하다는 점도 꼭 지적돼야 한다.

형사사법 제도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이자 국가의 미래다. 2019년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법체계의 효율성 45위, 사법부의 독립 69위, 규제 개혁에 관한 법률적 구조의 효율성 부문 67위를 기록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에서도 39위를 기록해 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가 진정 공정한 사회와 일류 국가를 지향한다면, 전 세계에 유례가 없고 범죄 수사의 위축, 형사사법의 대혼란이 예상되는 이번 수사권 조정안을 전면 재검토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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