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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대만 비밀 核개발 전모
 
2018-01-10 17:46:26

◆최창근 대만 전문 저술가(한국외국어대 박사과정)는 현재 위공 박세일선생 평전 집필가로 활동 중입니다. 

 

최단 3~6개월 내 핵무기 개발 수준 도달
SRBM 독자 개발 천마계획(天馬計?) 수립
CIA 포섭 核개발 책임자 미국 도주·비밀 폭로
‘대만의 배신자’ 장셴이 “나는 평화주의자”


1988년 1월 장징궈(蔣經國) 대만 총통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78세. 1978년 총통이 된 지 10년째 되던 해다. ‘중화민국헌법’에 따라 사법원장(司法院長) 린양강(林洋港) 앞에서 부총통 리덩후이(李登輝)가 총통 취임 선서를 했다.  

장징궈 사망 후 대만 정국은 요동쳤다. 장제스(蔣介石)-장징궈 2대 ‘장가천하(蔣家天下)’는 종지부를 찍었다. 후계 구도는 확립되지 않았다. ‘명목상’ 후계자 리덩후이의 권력 기반은 약했다. 리덩후이가 장징궈 유고(有故) 시 뒤를 이을 부총통이 된 것은 이변(異變), 의외의 사건이었다.  


권력은 행정원장 위궈화(?國華), 입법원장 니원야(倪文亞), 사법원장 린양강, 국민당 비서장 리환(李煥) 등 중국 본토파 대로(大老)들 수중에 있었다. 당이 국가를 영도하는 당-국가 체제(黨國體制·Party-state system)하에서 국민당 내 리덩후이의 입지는 없다시피 했다.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宋美齡)도 리덩후이를 미덥지 않아 했다. 

실질 권력자는 참모총장(參謀總長·한국 합참의장과 유사) 하오보춘(?柏村)이었다. 하오보춘은 1981년 12월 참모총장 취임 후 7년째 자리를 지키며 ‘영원한 참모총장’으로 불렸다. 하오보춘은 장씨 가문의 신임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황푸군관학교(黃?軍官學校) 포병과 12기 졸업·임관 후 승승장구해 일급상장(一級上將·대장)으로 진급했다. 방위 최일선인 진먼(金門) 방위사령관, 총통부 시위장(侍衛長·경호실장), 육군 총사령 등 요직을 역임했다. 하오보춘은 국민당 본토 출신 원로·소장파 지지하에 권력을 장악했다. 대만지구(臺灣地區)에는 계엄령이 선포됐고, 군에는 비상대기령이 하달됐다. 계엄사령관은 하오보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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