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 성균관대 교수·행정학, 前 기획재정부 장관
우여곡절 끝에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 구도가 확정됐다. 집권 2년을 갓 넘긴 시점에 벌써 서너 번째 새 장관과 수석비서관을 맞는 부서가 적지 않다. 이처럼 국정의 핵심 인물들이 자주 바뀌다 보니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헷갈릴 뿐만 아니라, 아예 이들의 이름조차 모르는 국민도 많다.
더욱이 이번 내각에는 국회의원이 6명이나 참여하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감안하면, 겸직 각료들은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물러날 것으로 점쳐진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진행 중인 후보들은 서둘러 임명돼도 임기가 10개월 정도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신임 국무총리는 국무위원들을 연 2회 평가해 미진하면 해임건의권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그러자면 충족해야 할 전제가 있다. 평가자인 총리나 평가를 받을 겸직 장관들이 내년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평가와 인사의 연계는 구두선에 그칠 수밖에 없다.
박근혜정부만 그런 것은 아니다. 대통령 단임제 이후 교체 빈도가 더 잦아졌을 뿐 역대 정부들도 비슷한 인사 행태를 답습해 왔다. 임기 1년 남짓의 단명 장관이나 수석비서관이 성과(成果)를 남기기는 어렵다. 임기가 짧으면 장기 비전을 세우거나 시간이 걸리는 개혁 과제를 추진할 엄두를 낼 수 없다. 오히려 단기 현안, 실속 없는 보여주기 또는 전임자와의 차별화에 몰두하게 된다.
여기에다 우리 국민이 변화를 선호하는 경향까지 가세해 정책의 변경, 폐기와 신설이 되풀이된다. 심지어 콘텐츠는 같은데 이름이나 무늬만 바뀌기도 한다. 성과, 교훈과 노하우가 축적될 리 만무하다. 시행착오와 학습비용, 불확실성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흐름을 간파한 관료들도 최선을 다하기보다 그저 대과(大過) 없이 지내거나 줄 대기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출석을 부르면 대답은 하지만, 앞장서서 깃발을 드는 것은 꺼린다. 열심히 해본들 정권이 바뀌면 수포로 돌아가거나 오히려 반대파로 낙인찍히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부작용을 줄이려면, 장관과 수석비서관은 가급적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974년부터 18년 재임한 서독의 한스디트리히 겐셔 외교장관은 독일 통일의 일등공신이 됐다. 공과를 둘러싼 논란이 있으나 미국 연방수사국(FBI) 존 후버 국장은 무려 48년 동안 재직하기도 했다.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은 각료들을 수시로 교체했다. 필자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22개월 재직하는 동안 카운터파트인 재무상을 4명이나 맞았을 정도다. 그런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이런 관례와 선을 그은 듯하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재무상만 해도 이례적으로 2년 넘게 재임 중이다.
굳이 멀리서 사례를 찾을 필요도 없다. 고(故) 남덕우 전 총리는 1968년부터 10년 넘게 경제사령탑으로 고도성장을 이끌었다. 정권을 뛰어넘어 5년 넘게 총리 행정조정실장을 지낸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 9년 재임한 김정렴 전 대통령비서실장, 8년 재직한 오원철 전 경제2수석비서관 등은 격변기 한국 경제의 도약에 크게 기여했다.
중앙정부의 정무직 인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자치단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나아가 단명 인사 시스템은 어느덧 공공기관장, 국책은행장, 대학총장, 검찰과 군(軍) 간부, 국책연구기관장, 외교사절 등 고위 공직 전반의 불문율이 됐다. 지금껏 서울대 총장을 연임한 사례는 한 차례도 없다. 총장의 영(令)이 설 리가 없고, 총장을 존중하는 풍토가 만들어질 수도 없다. 외국 저명 대학 총장들이 종신 또는 10년 이상 재임하는 경우와 대별된다.
포스코가 공기업이면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원동력의 하나는 고 박태준 회장의 24년 장기(長期) 재임이었다. 공기업은 주인이 없어 방만 경영에 빠지기 쉽지만, 당시 포스코 임직원들은 주인이 있다고 여겼기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초대 원장을 맡았던 김만제 전 경제부총리도 11년이나 재임하면서 오늘날 KDI의 초석을 다졌다.
공공기관장, 대학총장 등도 신상필벌을 적용해 일 잘하는 사람은 연임시켜야 한다. 성과와 무관하게 기관장을 바꾼다면, 뉘라서 열심히 일할까. 민영화는 됐지만 여전히 주인이 없고 그래서 아직 정부 입김이 미치는 KT나 국민은행 등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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