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27 09:44:10

올해엔 큰 선거가 없다. 미래를 위해 꼭 해내야 할 여러 개혁 과제가 표심에 왜곡되지 않고 추진될 수 있는 적기다. 마침 정부도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구조 개혁을 추진한다니 기대가 크다.
그런데 최근 이어지는 정책 혼선과 당·정 엇박자를 보면 과연 개혁이 순항할지 걱정이다. 정부가 핵심 정책을 발표한 뒤 하루 만에 꼬리를 내리는가 하면, 여당은 자신들이 통과시킨 법을 소급해 백지화했다. 사학연금과 군인연금 개혁, 세액공제 전환과 연말정산,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 건강보험료 개편 등이 잇달아 번복되거나 되살아나는 등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당정의 맷집이 너무 약하고 여론 흐름에 일희일비하니 불안하다. 더욱이 누구도 구정물에 손을 담그지 않으려는 모습은 괘씸하기까지 하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누가 주도할지 당·정이 서로 미룰 때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어렵사리 여당이 총대를 메는가 싶더니, 특위 간사 선임을 놓고도 ‘폭탄 돌리기’가 한동안 이어졌다.
행정자치부 장관이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을 추진하자, 여당에선 야당 출신 자치단체장들 동의가 우선이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물론 ‘복지 디폴트’마저 선언했던 자치단체장들 중 아직 지방세 인상을 지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 지금도 자치단체는 상한세율이나 탄력세율을 적용하는 등 자구 노력을 기울이면 재정자립도를 꽤 끌어올릴 수 있다. 자치단체들이 허용된 과세 자주권도 행사하지 않으면서 중앙정부에 손부터 벌리는 행태는 무책임하다.
이처럼 정부와 여당, 중앙과 지방, 여당과 야당이 몸 사리기 꼼수에만 몰입하는 총체적 난국이다. 다들 ‘남 탓’으로 미루고 ‘너부터’ 욕먹을 일에 먼저 나서라고 떠밀면서 백년대계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이익이 특정 계층에 집중되지만 비용은 온 국민에게 분산되는 사안에는 미봉책과 대증요법이 난무한다. 세종시, 무상급식, 마트 의무휴업, 단말기 보조금 규제, 도서 정가제 등이 대표 사례다. 반대로 이익이 분산되고 비용은 집중되는 개혁 과제는 표류한다. 고속철도 노선 경쟁, 에너지·금융·공항 공기업 개방, 노동·교육·서비스산업·수도권 규제 개혁, 보조금 축소 등이 그러하다. 연금 개혁, 공공요금 현실화 등 이익은 나중에 나타나지만 비용은 즉시 부담해야 할 ‘허리띠 졸라매기’도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이대로 가다간 아르헨티나·그리스·일본처럼 정치 때문에 국력이 곤두박질할 수밖에 없다.
개혁은 고통스럽고 저항이 거세며 시간이 걸리므로 안착시키기 무척 어렵다. 따라서 개혁의 비전과 콘텐츠 못잖게 전략(戰略)과 실행계획, 경로와 일정을 치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기회의 창’과 뇌관, 여론의 임계점 등 전술까지 숙고해야 한다. 때론 시나리오별 우발계획, 경과조치, 시범 적용 방안이 필요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혁의 당위성과 방향을 설파하고 차분한 공론을 이끄는 창도(唱導·advocacy)의 리더십이다. 최근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소통이 강조되고 있지만, 소통은 개혁의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개혁 공감대를 넓혀 가려면 충분조건인 창도까지 더해져야 한다.
정치공학이 아닌 진솔한 정책 마케팅에 힘을 쏟아야 정론을 중론으로 만들 수 있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학교 무상급식 우유를 유료로 전환해 ‘우유 도둑’으로 비난받으면서도 ‘영국병’을 고치려면 “대안이 없다(TINA)”며 끝까지 버텼다. 문제를 솔직히 털어놓은 뒤 개혁의 논거와 효과를 제시하고 널리 의견을 구해 대안을 천착해야 한다. 사학연금과 군인연금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얼버무릴 일이 아니다. 과거 세 차례 직역연금 개혁의 전례를 꿰뚫고 있는 교사와 군인이 곧이 받아들일까.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꾼 세제 개편을 허둥지둥 거둬들인 것도 진중치 못했다. 일부 수정됐지만, 비슷한 취지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발표한 미국 ‘고등교육 세액공제(AOTC)’ 통합안은 골격이 유지될 전망이다.
지도자들이 국민 수준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 우리 국민은 창도에 박수 치고 공론에 나설 준비가 됐다. 이젠 성숙한 대의정치의 진면목을 보고 싶다. 고통 없이 얻을 수 없으며, 공짜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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