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08 15:28:00

3년 전만 해도 각종 정책과 사업·연구 계획서에는 ‘녹색’이 단골로 등장했다. ‘녹색 분식’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그러더니 어느새 ‘녹색’은 자취를 감추고 ‘창조경제’와 ‘남북통일’이 약방의 감초가 됐다. 자원 개발은 또 어떤가.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 가까이 치솟자 정부는 자원외교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유가가 고점 대비 3분의 1로 급락해 자원 개발 최적기인 지금은 애써 확보한 해외자산마저 내다 팔기에 급급하다. 정부가 바뀐 점을 고려해도 오락가락 쏠림이 지나치다.
최근엔 격차가 줄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승용차나 PC 등 내구재 교체 주기가 선진국보다 훨씬 짧다. 아무리 명품이라도 유행이 지나면 찬밥 신세가 되기 일쑤고, 웬만한 젊은이들에게 성형수술은 어느덧 필수 스펙이 됐다. 연말연시면 정치인들이 보내오는 성가신 휴대전화 메시지 홍수도 정상은 아니다. 쏠림의 씁쓸한 단면들이다.
물론 쏠림이 빚어내는 응집력의 순기능도 무시할 수는 없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과 2002년 붉은악마의 거리 응원전은 온 세계를 놀라게 했다. 따지고 보면 쏠림과 동조화는 지난 반세기 압축 산업화와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 수준의 근로시간이 상징하듯,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치열한 동조화는 국력 신장의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이제는 단선적인 쏠림과 동조화 문화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무엇보다도 쏠림 문화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지향하는 핵심 가치와 배치된다. 기존 질서에 순응하고 유유상종(類類相從)과 집단사고를 부추기며 ‘따라 하기’에 열중하는 속성은 자율과 창의, 개방과 혁신을 저해한다. 대량생산에는 적합했을지 몰라도 선진경제 진입에는 걸림돌이다.
한목소리보다 딴 목소리, 동조화보다 차별화를 독려해야 한다. ‘예스맨’이 아니라 ‘악마의 대변인’을 우대하고, 눈치파가 아니라 소신파를 존중해야 한다. 주관이 뚜렷한 외톨이가 자칫 눈치 없는 ‘왕따’로 전락한다면 창조경제도 꽃을 피우기 어렵다. 2008년 이후 세계 경제의 ‘대침체’에도 외롭게 선전하는 미국 경제가 그 방증이다.
나아가 도전과 실패, 자성(自省)과 재기를 북돋아야 한다. 실패나 잘못의 정도에 비해 가혹한 십자포화를 퍼붓는 쏠림의 ‘질타 문화’부터 고쳐야 한다. 오죽하면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공직자들이 줄을 잇겠는가. 실패야말로 성공의 어머니요, 성자마저 과거가 있고 죄인에게도 미래가 있는 법이다.
질타 문화가 엄존하는 한 공직자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해 아예 민간의 손발을 묶고 피난처에 안주하는 이른바 ‘최소극대화(maxi-min)’ 전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 카드 사태와 세월호 참사 등을 수습하며 혼쭐이 난 공직자들은 굳이 규제를 풀어 화를 자초할 수도 있는 모험에 나설 야성을 잃어버렸다. 항구에 정박해 있으면 조난을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서슬 퍼런 엄명에도 낡은 규제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까닭이다.
하루아침에 문화를 바꾸긴 힘들다. 특히 지금처럼 다수의 선택이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 함정’에 쏠리면 어지간한 요법으론 관성을 이겨낼 수 없다. 소수자 우대정책처럼 소신파가 늘어나 변곡점에 이를 때까지 과감한 정책을 꾸준히 펴야 반전시킬 수 있다. 물론 국민 개개인도 힘을 보태야 한다.
지난 연말 교수신문은 말(馬)의 해였던 갑오년을 함축한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선정했다. 올 연말엔 쏠림의 외화내빈(外華內貧)을 뜻하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이나 양질호피(羊質虎皮)가 을미년 대표선수로 뽑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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