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내년도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12월 2일)을 목전에 두고 파행됐던 국회 예결위 예산조정소위가 속개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 지원에 대해 새누리당이 합의를 파기했다면서 모든 상임위 의사일정을 전면 보이콧한 지 이틀 만의 일이다. 이유야 뭐든 야당은 ‘사자방’(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산비리) 국정조사, 법인세 인상 등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 같은 위기감에 직면하자 국민과 국회를 볼모로 ‘나쁜 베팅’을 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연말 정국 때마다 반복되는 파행과 졸속의 구태 속에서 국회는 몇 가지 치명적이고 내재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첫째, 국회가 스스로 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 여당은 국회 파행의 핵심인 누리과정 예산 국고 지원에 대해 ‘우회 지원’ 방침을 정했다. 내년 한 해에 한해서 지방교육청에 무상보육과 무관한 다른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해결키로 했다. 시·도 교육청이 지방채를 발행해 누리과정 예산을 충당하되, 지방채 이자를 정부가 보전해주고, 대신 특성화고 장학금, 초등돌봄학교 등에 교육부 예산을 증액해 국고에서 반영키로 한 것이다.
이런 지원 방식은 근본 해결책이 아닌 1년짜리 한시적 미봉책에 불과하다. 부족한 교육 복지 재정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임시방편으로 예산 돌려막기를 했기 때문이다. 여당은 “법적으로 지방 사업으로 규정된 누리과정에 직접적인 재정 지원을 하지 않아 ‘예산 편성의 원칙’을 지켰다”고 강변했지만, 이는 분명 편법이고 기만이다.
둘째, 국회가 적기(適期)에 필요한 법을 만들지 않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30개 민생경제 법안의 처리를 국회에 간청했다. 최근에는 분양가 상한제를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주택법 개정안 등 주택시장 정상화 관련 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요청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더라도 정부가 요청하는 법안을 국회가 무조건 신속하게 처리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명분 없이 무작정 시간을 끌 수는 없다. 모든 일에는 골든타임이 있기 때문이다. 야당이 정략적으로 중요 법안에 대한 심의를 늦추고 반대를 위한 반대에 빠지게 되면 입법권을 방해한다는 비난과 수모를 당하게 된다. 한편, 여당이 무조건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 야당과의 협상을 꼬이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문희상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이 “새누리당이 청와대, 전(前) 정권, 법인세라는 3대 성역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정기 국회가 파행으로 치달으면 중대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셋째, 국회가 반드시 만들어야 할 법을 만들지 않고 있다. 가령, 부패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공직자가 일체의 금품과 향응을 받지 못하게 하고, 가액이 100만 원을 넘으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을 불문하고 형사처벌토록 한 ‘김영란법’은 지난해 8월 국회에 제출됐지만 여전히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이 이 법을 빈껍데기로 만들려고 한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또, 새누리당의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대해서 야당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그저 “사회적 대타협 위원회를 구성해 단일안을 만들어 통과시키자”고 맞서고 있다.
국회가 진정 국회다워지려면 스스로 법을 지키고 적기에 민생을 살리고 국가를 든든하게 할 법을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 불안과 절망에 빠진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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