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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모병제를 논의할 상황이 아니다.
 
2014-10-29 14:27:40
한국은 현재 ‘휴전상태’라는 남북한 대치로 인하여 징병제(conscription)를 채택하고 있다. 대규모 군대 유지를 위한 모든 국민들의 공평한 병역의무 이행, 이를 통한 국민적 일체감 형성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징병제는 총력전(total war)이 일상화되면서 대두되었고, 안보위협이 클 때 채택한다. 냉전시대에는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징병제였고, 지금도 유엔에 가입되어 있는 193개국 중에서 66개국이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34개 OECD 국가 중에서 10개국이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물론이고, 이스라엘, 터키, 그리스 등 이웃국가들과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의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최근 동북아시아의 세력각축이 첨예화됨에 따라 징병제 도입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모병제: 실현가능성부터 점검
지난 6월 전방 22사단에서 있었던 임병장 총기난사 사건, 지난 8월 28사단에서 불거진 윤일병 구타 사망사고와 같은 악성 병영사고를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최근 모병제로의 전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군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군대를 가도록 하면 부적응 병사들은 없어질 거라는 논리이다. 
관건이 되는 것은 현재의 안보상황이 모병제를 거론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사일에 탑재하여 공격할 정도로 ‘소형화·경량화’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고, 북한수뇌부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에서 급변사태 등이 발생할 경우에는 더욱 큰 규모의 군대가 필요하다고 한다. 
주변국들을 한번 둘러보자. 중국은 수년동안 두자리 수로 국방비를 증대시키면서 군사력을 현대화하고 있고, ‘방공식별구역’의 일방적 선포에서 보듯이 공세적인 성향을 노골화하고 있다. 일본도 이에 대응하여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으로 팽창적인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다수의 학자들은 한말(韓末)에 있었던 강대국들의 세력각축이 한반도에서 재현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모병제 전환을 논의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더욱 현실적인 문제로서 현재의 상황에서 모병제로 병사들을 모집할 때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군대를 지원할까? 모병제를 주장하는 사람은 자신이 병사로서의 인생을 선택하거나 자신의 자식에게 병사로서 평생 군대에서 근무하도록 추천할 것인가? 
보수만 충분히 약속하면 상당한 지원자가 있을거라고 말한다. 그러면 얼마 정도의 봉급이면 젊은이들이 병사로서의 직업을 선택할까? 상병을 기준으로 150만원이면 지원할까? 200만원이면 지원할까? 300만원이면 지원할까? 우리 스스로는 얼마의 봉급을 보장받으면 나 자신이나 내 아들이 병사로서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대만의 사례
최근 모병제로 전환하고자 하는 대만의 경우를 한번 보자. 모병제는 군대의 전문성 향상을 명분으로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선고공약으로 내세운 사항이다. 그리하여 2011년부터 모병제 전환을 시도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모병목표를 단 한 차례도 달성한 적이 없다. 2013년의 경우 28,000명이 모병목표였는데 8,603명을 모집하는 데 그쳤다. 결국 대만은 2015년 1월부던 모병제 전환 일정을 2017년 1월로 연기하였. 
대만은 병사들과 하사관들에게 최대 4,000 대만 달러(미화 133 달러)에 이르는 수당을 추가로 지급하고, 복무 중 학업을 지속하도록 보장하며, 제대 후 취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약속하는 등 처우를 대폭적으로 개선함으로써 2014년에는 모집 목표를 달성하였다. 병력규모도 과거에 500,000명 정도였던 것을 지금은 250,000명 정도로 줄였고, 향후 5년간 20%를 다시 감축하여 170,000 – 190,000명 선을 유지하겠다고 한다. 
결국 대만은 모병제를 위하여 병력을 감축하고, 군사대비태세의 약화를 감수하고 있는 셈이다. 병사들에게 약속한 대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국방예산이 필요하여 국방세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벌써 징병제로의 복귀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유럽의 사례
유럽에서 최근에 모병제로 전환하였거나 전환여부를 검토한 국가는 러시아, 독일, 스위스이다. 
러시아의 경우 푸틴 집권 이후 2002년부터 모병제 전환을 추진하였지만, 아직도 병력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러시아는 48만 명 중 40% 정도를 모병제로 선발하고 있는데, 공수부대, 전략미사일군, 잠수함 병사들의 경우 대부분을 모병제로 선발하기 때문에 일반 부대들의 모병제 비율은 훨씬 낮다. 우수 모병인력 확보를 위해 출퇴근 보장, 3년 근무 시 대학입학자격 부여, 근무기간 연장 시 주택구입자금 장기대출 등 다양한 유인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장기적인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독일은 2011년 모병제로 전환하였다. 독일연방군의 병력을 185,000명으로 감소시키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통일과정에서 소련이 250,000명에서 300,000명 정도의 병력만 유지할 것을 요청하였음에도 독일은 370,000명을 유지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는데, 그것을 포기한 셈이다. 그래도 통일 이후 20년 이상 징집제를 유지해왔다는 점을 오히려 주목해야할 것이다.  
스위스의 경우 2013년 9월 징병제 폐지를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였다. 결과는 국민들의 73.2%가 징병제 유지를 지지하였다. 징병제 덕분에 200년 이상을 외침을 받지 않았고, 국민적 통합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병영 사고예방을 위한 모병제 논의는 곤란 
징병제냐 모병제냐의 여부는 그 국가의 위협정도, 경제 및 인구 측면의 상황, 정치 및 사회적 여건, 국민여론 등을 신중하게 고려하여 결정해야할 사안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 모병제가 거론되고 있는 것은 총기난사, 구타, 자살과 같은 악성 병영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다. 사고예방을 명분으로 국가안보의 근간을 흔들어서는 곤란하다.  
현실적으로 모병제를 선택한다고 하여 사고가 예방될까? 모병제가 병사들의 복무동기를 강화할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동기가 높다고 하여 악성 병영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모병제가 되면 더욱 엄격한 서열이 형성될 것이고, 고참병들은 하급자를 더욱 적극적으로 지도해야할 것이며, 그러한 와중에서 구타나 가혹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은 더욱 높을 수 있다. 징병제는 2년 미만만 참으면 되지만 모병제는 수년을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차원에서 고참병의 폭력에 대하여 하급자는 더욱 속수무책일 수 있다.  
모병제의 경우 군대 내부의 문제가 더욱 은폐되거나 곪을 수 있다. 징병제의 군대에 비해서 모병제의 군대는 더욱 폐쇄적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떤 병사가 군대 전체의 입장과 다른 말을 할 경우 그 병사는 바로 공적(公敵)으로 간주될 것이고, 내부적으로 어떤 린치를 당할 가능성도 높다. 군대에서 발생하는 제반 문제가 은폐될 가능성도 현재보다 높아질 것이다.  
악성 병영사고 예방을 위하여 모병제 전환을 주장하는 것은 그의 원인이 우리 모두에게 있음에도 제도의 잘못으로 전가하면서 힘든 노력은 하지 않겠다는 심리일 수 있다. 징병제가 그 원인이라고 말함으로써  가정교육과 학교교육 등 우리가 잘못한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동기로 보인다는 것이다.  

모병제 전환에는 충분한 예산 확보가 필수 
한국이 현재 상황에서 모병제를 선택한다면 대폭 인상된 인건비를 부담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를 위한 충분한 국방예산이 확보될까?  
지난 2014년 3월에 발표된 ‘국방개혁 기본계획(2014-2030)’에 의하면, 한국은 병력을 2012년 636,000명에서 단계적으로 114,000명을 감축하여 2022년에는 522,000으로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이 정도의 병력을 모병제로 유지하고자 한다면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까? 비용을 감당할 수 없으면 병력을 줄일 것인데, 그렇게 되면 대만처럼 모병제를 위하여 군사대비태세를 약화시키는 본말전도(本末轉倒)의 현상이 대두될 것이다. 
한국은 현재 11만 6000명 정도인 부사관을 15만 2000명으로 3만 6000명을 증대시키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지만, 이미 예산부족으로 인하여 이러한 계획의 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3년의 경우에도 3000명의 부사관을 선발해야 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1500여명을 선발하는 데 그쳤다. 2008년부터 특수한 분야를 중심으로 유급지원병제를 적용해오고 있지만, 이에 따른 예산부담도 적지 않다. 
모병제 전환을 위해서는 막대한 국방예산을 보장하든가 아니면 첨단의 무기체계를 구입할 예산을 인건비로 전환하는 수밖에 없는데, 한국의 현 상황은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다. 경제활성화 및 복지향상을 위한 예산으로 인하여 국방예산의 증가율을 억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고,  F-35 전투기, PAC-3 탄도탄 요격미사일, 이지스함 등 첨단의 장비를 구입해야할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모병제의 추가 위험성 
상무(尙武)의 전통이 깊은 미국에서도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모병제를 실시할 경우 군대가 빈곤층의 자제로 채워질 가능성이 무척 높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부모가 자식을 병사로 평생 근무하도록 허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군들의 경우에도 시민권과 연금을 확보하고자 하는 소수민족이나 빈곤층에서 충원된 군인들이 많다. 결국 모병제의 군대는 금전적으로 궁해진 젊은이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용병(傭兵)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군대의 정치적 중립이 손상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모병제의 군대는 군대 스스로의 이익에 충실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군대 전체의 이익이 위협받고 있다고 할 때 모병제의 군대는 이등병에서부터 대장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할 가능성이 있고,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그들의 이익 증진을 위하여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병제로 전환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하자. 대만처럼 지원자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봉급을 더 올릴 것인가? 그래서 일시적으로는 지원자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또 몇 년 후에 지원자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지원자가 없으니 군대를 축소시킬 것인가? 아니면 다시 징병제로 전환할 것인가? 이렇게 되었을 때 그 부작용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고, 그것을 수행하는 주된 세력은 바로 군대이다. 따라서 군대가 중점을 둬야할 것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튼튼한 안보를 보장하는 것이고, 제도의 개선도 그러한 범위 내에서 시행되어야 한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모병제 장점 수용은 필요 
자발적인 복무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모병제의 장점도 적지 않고, 이것은 가급적이면 수용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한국군의 경우 간부들은 모병제에 의하여 모집되기 때문에 간부들의 사명감과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배가할 필요가 있다. 우수한 젊은이들이 병사보다는 간부직을 선택하도록 복무기간을 조정하거나 간부들의 자존심을 고양하며 적재적소 보직으로 군복무가 사회에서 경력으로 인정받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부사관들에게 분명한 역할을 부여하고, 첨단 무기 및 장비의 운영에 관한 확실한 전문성을 갖도록 하며, 자긍심을 갖도록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여군 부사관을 증대시키는 것도 효과적인 방안일 수 있다. 여군들이 행정이나 지원분야에 근무할 경우 이동과 진급의 부담이 적은 부사관 신분이 편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군이 행정이나 지원분야에서 남군들을 다수 대체해주면 그 분야에 종사하던 남군들을 전투분야로 전환시킬 수 있고, 따라서 전투분야를 보강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현재의 병사들에게 충분한 자율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병사들을 보호 및 통제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책임있는 시민(citizen in uniform)으로 존중하고, 동시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하였던 문제점이 노출될 수도 있지만, 계속되면 병사들의 책임의식이 커질 것이고, 주도적인 병영생활을 해나갈 것이다. 한국군 병사들은 세계에서 가장 학력이 높고, 서양군대의 병사들과 같은 자율권만 가지면 세계에서 최고의 병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병사는 동일한데 모병제면 자율권을 줄 수 있고, 징병제면 안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단방약은 없다
국민들은 최근 빈발하고 있는 악성 병영사고를 예방하는 단방약을 찾고 있다. 모병제를 거론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동기지만, 이것이 단방약도 아니고, 단방약도 없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병영문화를 쇄신해 나가고, 싸우는 군대로 바꾸어가며, 초급간부들의 질을 비롯하여 군 간부들의 전문성을 향상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노력할 때 점진적으로 선진군대로 전환되어 나갈 것이고, 악성 병영사고도 줄어들 것이다. 
국방대학교의 안보문제연구소에서 매년 실시하는 범국민안보여론조사를 보면, 2012년의 경우 일반국민은 70.7%, 전문가는 71.7%가 징병제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아직도 국민 대부분  은 징병제를 지지하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글/ 박휘락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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