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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칼럼] 공수래공수거는 잘못된 말
 
2014-01-15 17:34:42

1. 허무주의자들의 노래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는 허무주의자들의 노래다.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야 할 허무한 인생, 그럴 바엔 일생 모은 재산 차라리 살아 있을 때 남 주고 가자는 뜻이니까 말이다. 그런 정신이라면 그리 대단한 것이 못 된다. 기왕 버릴 물건 남 주는 정도이니까. 허긴, 인간의 탐욕은 그런 허무 앞에서도 사그라지기는커녕 왕성하게 불붙어 오를 뿐이니 실제로는 허무마저도 벗어나지 못하고, 그 허무 속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허둥대며 살다가 어느 날 예고 없이 속절없이 떠나간다. 베푸는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남을 위한다는 자비심이 앞장서고, 자신은 복을 짓는다는 분명한 자기정신이 있어야 비로소 인간의 도리, 자기 일, 자기 인생이 되는 데도 인간의 무지는 도무지 아랑곳조차 없다.

사실, 사람은 태어날 때도 한 짐 잔뜩 지고 왔고, 갈 때도 더 보탠 짐을 또 지고 간다. 올 때는 다겁생(多劫生)의 업(業)을 지고 왔고, 갈 때는 금생에 지은 업까지 더 얹어서 지고 가야 하는 것이 대개의 인생살이다. 그런데 그걸 모르는 육체중심의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무턱대고 공수래공수거라고 노래한다. 무책임이 안타깝고 허무의 노래가 애달프다.

머나먼 윤회의 인생, 그러나 금생에 다시 태어나서 성공적으로 밥값 한 사람은 지고 온 짐[業]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가는 사람이고, 밥값은커녕 와서 남에게 신세만 끼친 사람은 자신이 지고 온 짐에 더 얹어서 지고 가는 사람이다. 진정한 자신을 모르고 무턱대고 겉껍데기 육신만 자기인줄 알고 거기 매달려 줄곧 살아서다. 알고 보면 인간은 남의 덕에 사는데 그걸 모르고 온통 자신, 자신의 육신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니 결과가 그런 거다. 남의 은혜를 갚고 남을 돕고 남을 위해서 산다면 정신이 충실해질 텐데도, 도무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 채 오로지 육체의 노예가 되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속절없이 산다. 그야말로 죽으면 순식간에 허물어질 겉껍데기 육신에 사로잡혀서 그 노예로 산다.

인간의 육신이 껍데기라면 정신은 알맹이다. 매사를 ‘관계와 협력’에 기준하여 정신적으로 잘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여 산다면 인간의 삶은 진리의 해탈이다. 욕망의 속박에서 해탈한 도인은 오고감에 공래공거(空來空去)가 맞다. 공(空)에서 왔다가 공으로 간다. 그러나 범부중생의 공수래공수거는 아니다.

2. 허무주의는 퇴폐

대개 사람은 한 번에 밥 한 그릇을 먹는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아무리 맛이 있어도 한 그릇 이상 먹기가 힘들고, 비록 열흘을 굶은 사람이라 해도 고작 두 그릇 먹으면 나가떨어진다. 배부른 건 고픈 것보다 더 고통스러워 안절부절못한다. 기껏 이런 걸 가지고 곳간에 수 백 수 천 그릇을 쌓으려고 평생 안달로 보내다가 결국 병들고 늙어죽게 된다. 베풀어서 남 도우는 자기정신은 방치한 채. 육신은 의학이 발전해 천년을 산다 해도 그 끝은 역시 죽음일 뿐이다. 쪼그라진 육신을 남에게 오래 보임은 수치가 아닐까, 정말, 자존심도 없나!

그러나 한 번에 자신이 백 그릇을 먹진 못하지만 백 그릇 먹는 것과 똑 같은 효과, 그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훨씬 효율적인 재산관리고 증식방법이기도 하다. 날고뛰는 경제학자들도 여기까진 까맣게 모른다. 그건 백 명분의 밥을 지어서 자신이 한꺼번에 다 먹을 수 없으니까 배고픈 백 명을 불러 모아 그들에게 대신 먹게 하는 것이다. 굶주린 사람들이 밥을 먹으면 우선 죽지 않는다. 우선 안도와 기쁨을 얻고, 장차 희망을 가지고 뭔가 일을 하여 보답을 한다. 결국 그들의 그 보이지 않는 힘은 죽지 않게 밥 준 처음 원인에게로 돌아간다. 산더미 같은 돈과 재산을 저승으로 가져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건 결코 공수거(空手去)의 허무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죽지 않을 것처럼 욕심을 부리는 건 주인공의 삶이 아니고 진정한 자존(自尊)의 존재감도 아니다. 아무리 쌓아도 기쁘지 않다는 거다. 되레 두려움만 커가고 숱한 의심만 늘어갈 뿐이다. 심지어 부모형제 사이에서도 의가 사라져가고 다툼이 인다. 벌써 살아서부터 고통, 지옥으로 점점 빠져든다. 그 선상에서 죽음의 향방이 어딘가는 명약관화로 뻔하다.

바르게 살아서 남을 고통에 빠뜨리지 않아야 한다. 자신이 진리인 자신을 바로 보아 스스로 남을 도울 수 있어야 하고 의도적으로 정신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 사실을 깊이 알아야 하고, 그 사실 앞에서 의연해야 한다. 이 분명한 과학기술문명의 시대에 주인공으로써 불자의 삶은 육신에게나 물질에게나 사로잡혀 구속받지 않는 초월적이어야 한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집착하거나 허망한 생각을 갖지 않아야 한다.

3. 희망은 깨달음의 실천이다

어떤 경우에도 ‘망할 놈의 세상’이라고 자신이 욕하거나 남들을 욕하게 해서는 안 된다. 성공적으로 산 사람, 자신이 가지고 온 짐을 줄인 예를 보자. 구름 잔뜩 낀 하늘에 청풍이 불어오는 것처럼 상쾌하다. 저 햇빛 낭랑한 푸른 하늘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저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이제 떠날 준비를 거의 했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합니다.” KAIST는 정문술(76) 전 이사장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개척할 인재를 양성하고 뇌 과학 분야 연구를 하는 데 현금 100억 원과 115억 원 상당 부동산 등 총 215억 원을 기부한다고 2014년 1월 9일 밝혔다. 정 전 이사장은 이광형 KAIST 미래전략대학원 교수를 통해 밝힌 글에서 “‘부를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하루에도 12번씩 마음이 변하더라”며 “나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다”고 밝혔다.

보라! 분명, 인생은 공수래공수거가 아니지 않은가. 허무한 인생이 아님을, 공수래공수거의 인생이 아님을 정문술 옹은 죽을힘을 다해 지켜냈다. 그리곤 전세방에서 산다고 한다. 그는 무소유의 진정한 도인, 세간의 도인이다. 불세출의 대장부다. 아, 불교 밖에서도 도가 역력하고 혁혁히 밝기만 하다. 이게 바로 위없는[無上] 도(道)임을 큰 소리로 오래 동안 외치고 싶다.

불기 2558(2014)년 1월 12일
안성 도피안사 내원에서
송암지원 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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